[마케팅 고수의 비밀노트] “나는 누구인가를 알면 길이 보인다”

황용택 현대카드 마케팅 실장

카드 업계에 대박 상품이 나왔다. 또 현대카드다. 현대카드의 플래티넘3이 출시 한 달 만에 가입자 수만 2만4000명을 넘어섰다. 월 카드 사용 금액은 1인당 평균 270여만 원. 가입자도 대다수가 20~30대다.

이는 4종의 카드가 7만 원(M3, H3)과 10만 원(R3, T3)이라는 만만치 않은 연회비를 지불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것이다. 새삼스럽지도 않다. 현대카드 마케팅실은 히트 카드 제조실로 유명하다.

단일 카드 최초로 700만 회원이 넘는 ‘현대카드M을 탄생시킨 곳이다. 연회비 200만 원에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가 디자인한 9999장 한정의 VVIP 신용카드인 ‘더 블랙(the black)’은 VVIP 마케팅의 우수 사례로 연구될 정도로 주목 받았다. 이 과정에서 경쟁사 마케터들을 깜짝 놀라게 한 기발한 마케팅 기법들을 수없이 선보였다.


플래티넘3 개발한 ‘히트 카드 제조기’

플래티넘3 개발 주역이자 현대카드 마케팅실을 이끌고 있는 이가 바로 황용택 실장(이사)이다. 황 실장은 1991년 삼성카드에 입사했고 2004년 현대카드로 옮겨왔다. 당시 현대카드는 업계 꼴찌를 맴돌았다. 2003년 6300억 원의 적자를 내며 바람 앞의 촛불 신세였다.

하지만 현대카드에는 M카드가 있었다. 그는 M카드의 미래를 믿었다.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독특한 기업 문화에도 마음이 끌렸다. 황 실장은 현대카드에서 프리비아(PRIVIA:여행·공연 등의 라이프스타일 서비스) 사업 실장을 거쳐 2008년 부터 마케팅 실장을 맡고 있다.

마케팅 실장을 맡은 후 T카드에 이어 내놓은 두번째 작품이 바로 플래티넘3이다. 플래티넘3의 성공 비결은 단순하다. 그들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에 들어가듯이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걸었다.

물론 새로운 길을 걷는 것은 두렵다. 모든 것이 안갯속처럼 부옇기 때문이다. 안개가 걷히면 어떤 모습이 나타날지 불안하다. 그래서 대다수는 남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 걷는다. 그는 두려움을 이겨냈다. 두려움을 이기는 것은 본인의 용기와 조직의 신뢰가 뒷받침돼야 한다. 당연히 시간이 필요하다. 준비 기간만 2년이 걸렸다.

무엇이 새로워졌을까. 플래티넘은 40~50대가 주 고객층이지만, 그는 20~30대에 주목했다. 소득이 많은 고연령대는 포인트 적립에 둔감하지만 젊은 층은 실용적이다. 뚜렷한 혜택이나 포인트 적립 등을 우선시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연회비를 받는 대신 그만큼의 혜택과 포인트를 적립해 준다는 콘셉트를 도입했다.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M3, H3, R3, T3 등 4가지로 나눠 서비스를 차별화했다. 디자인 개발에도 적지 않은 공을 들였다.

그 결과 플래티넘3은 하루 평균 신청 건수 1500장을 넘는 2010년 최고의 신상품으로 자리잡았다. 차별화된 마케팅으로 업계 꼴찌에서 2위까지 치고 올라온 현대카드의 마케팅실을 책임지고 있는 그로부터 몇 가지 마케팅 노하우를 들었다.

첫째,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하라는 것. 카드사 마케팅의 목표는 고객을 붙잡아 두는 것이다. 황 실장은 이를 ‘락인(Lock-in)’효과라고 표현했다. 그는 “(카드에) 꽂히면 5년은 도망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 어떻게 잡아 둬야 할까. 그는 “제조업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조업은 유형자산이 있지만 금융업은 무형자산이 있을 뿐이다. 금융업은 제조업과 달리 잘되고 못 될 때의 차이가 크다는 의미다. 올해 2조 원의 이익을 내도, 내년에 2조 원의 적자를 볼 수 있는 업종이 금융업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금융 마케팅의 핵심은 이런 진폭을 줄이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브랜딩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여기서 브랜딩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이라고 그는 정의했다. 현대카드가 알파벳과 숫자를 쓰고, 컬러를 백분 활용하는 것도 브랜딩의 일환이라는 설명이다.

둘째, 장점에 집중하라는 것. 황 실장이 현대카드로 옮겼을 때 M카드의 적립률은 2%로 상당히 높았다. 다른 회사 카드의 적립률은 기껏해야 0.2%였다. 그런데도 현대카드의 시장점유율은 3%에 머물러 있었다. 분석해 보니 약점이 눈에 들어왔다. 적립률은 높았지만 사용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다. 반면 다른 회사 카드는 적립률은 낮았지만 사용처가 많았다.

그렇지만 판매 영업을 잘하는 사람은 100가지 장점 중 한두 가지 장점에 집중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갖지 못한 것에 집중하지 말고 우리가 갖고 있는 것에 집중하면 길이 보인다”고 부서원들에게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그는 “적립률이 높다”는 것만 부각시켰다. 그 일환으로 가맹점의 일반 스티커를 떼고 그 자리에 ‘현대카드 적립률 2%’라는 카피의 스티커를 붙였다. 광고도 “최소한 평균 2% 적립된다”는 점을 앞세웠다. 그 덕분에 시장점유율이 2% 정도 상승했다.

한두 가지 장점에 집중한 마케팅이 효과 높아

셋째, 고정관념을 깨라. 카드사의 고민 중 하나는 일시불은 수익률이 낮다는 것이다. 가맹점 수수료가 보통 2%인데, 이것저것 떼고 나면 1%도 안 되는 수익이다. 따라서 할부 판매 비중이 늘어나야 하는데 고객은 이자 부담 때문에 할부를 꺼린다.

그는 고객·가맹점·카드사가 ‘윈-윈’할 수 있는 구조를 찾았다. 일반적으로 카드 회사의 프로세스를 보면, 회원이 6개월 할부로 물건을 사면 가맹점에는 2~3일 내에 지불하고 회원에게는 6분의 1씩 나눠 6개월간 청구한다.

그는 국내 최대 오픈 마켓인 G마켓 등과 손잡고 6개월 할부의 경우 3개월 뒤 돈을 한꺼번에 지불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앞의 3개월 이자는 가맹점이 부담하고, 뒤의 3개월 이자는 현대카드가 부담하는 방식이었다.

가맹점은 할인하지 않고 물건을 팔 수 있기 때문에 3개월 이자보다 더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고 현대카드도 6개월간 고객의 이자 부담을 3개월로 줄일 수 있게 됐다. 고객은 무이자 할부로 물건을 구입할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이처럼 어떤 현상이나 절차를 뒤집어보고 구조를 바꿔보면서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게 향후 계획을 물었다. 모범 답안이다. 고객들에게 “가족 같은 느낌, 따뜻한 느낌을 어떻게 줄 수 있을까 하는 게 고민입니다. 마케팅 잘하는 회사가 아닌 존경받는 회사가 될 수 있는 마케팅을 하고 싶습니다.” 현대카드의 1위 등극은 언제쯤 가능할지 물어봤다. 은근히 자신감을 보였다. “순위를 중시하지는 않습니다.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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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 후배들을 위한 Tip

“마케팅의 핵심은 고민”

황용택 실장은 후배들을 위한 팁(Tip)으로 3가지를 제시했다. 우선 “마케팅의 핵심은 고민”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집요하게 고민해야 답이 나온다”고 조언했다.

예를 들어 한 달 안에 매출 5억 원을 올려야 한다면, 사표를 내겠다는 ‘배수의 진’을 치고 치열하게 매달려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세상이 나쁜 사람으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면 마케팅이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다.

“다 좋은 사람들인데 나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럴 뿐이야”라고 겸손하게 생각해야 마음을 열고 접근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셋째, 얕은 기술에 너무 의존해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고객을 잠깐 이용하기 위한 스킬은 스킬이 아니라 무덤을 파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물건을 많이 파는 것에 집중하지 말고 파는 물건을 통해 이 세상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 고민하라고 주문했다. 따라서 인문학·철학·문학 등의 지식이 없어서는 위대한 마케터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약력 : 1965년생. 91년 한국 외국어대 영문학과 졸업. 2008년 연세대 경영학 석사. 91~2004년 삼성카드 근무. 2004~2010년 현대카드 프리비아 사업실장, 마케팅실장(현).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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