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장관의 읍소…누더기 된 세제 개편안

경제부처 24시

“의원님들, 어찌 이러시는지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2월 7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울부짖다시피 했다. 조세소위원회에서 여야 합의가 이뤄진 이슬람 채권(수쿠크·sukuk) 과세특례 도입이 재정위 전체회의에서 막판에 보류됐기 때문이다.

이슬람 채권 과세특례는 국내 기업이 이슬람 국가에서 채권을 발행하는 과정에서 부과되는 세금을 면제해 주는 것으로, 정부는 오일머니 등 풍부한 이슬람계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이 제도 도입을 추진해 왔다. 수쿠크는 이자를 금지하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투자자에게 이자가 아닌 배당금 형태로 수익을 주는데 이 때문에 다른 채권에 붙지 않는 세금이 부과된다.

김성조 재정위원장(한나라당 의원)은 “다수 의원들이 오늘 결정하지 말고 본회의에서 다루자고 했다”며 번복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윤 장관은 “조세소위에서 여야 합의가 이뤄진 법안이 재정위 전체회의에서 통과가 보류된 경우는 없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이슬람 채권 과세특례는 여당인 한나라당이 국회에서 단독으로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못해 도입이 무산됐다.

특정 이해집단의 입김 거세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이 1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 의원들의 질의를 답변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2010.11.17 /양윤모기자yoonmo@hankyung.com
이슬람 채권 과세특례는 정부가 추진한 세제 개편이 국회 논의 과정에서 무산되는 무수한 사례 중 하나에 불과하다. 정부가 지난 8월 발표한 세제 개편안 중 상당수가 국회에서 무산되거나 대폭 수정됐다.

올해 세제 개편안의 핵심이었던 임시투자세액공제 폐지 및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 도입이 정부 뜻대로 되지 않은 게 대표적이다. 정부는 기업이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에 설비를 투자하면 투자 금액의 7%를 법인세에서 깎아주는 임투공제가 투자 및 고용을 유도하는 효과가 크지 않다고 보고 이를 폐지하려고 했다.

대신 고용을 유발하는 투자에 대해 세금 감면 혜택을 주는 고용창출공제를 추진했다. 하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임투공제는 대기업이 4%, 중소기업이 5%로 감면율을 낮추고 고용창출공제는 감면율을 1%로 해 도입하기로 했다.

정부가 제출한 세제 개편안이 국회에서 수정되는 것은 그 자체로는 문제라고 할 수 없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가 정부의 정책을 검토하고 고쳐야 할 부분은 고치는 것은 당연히 진행돼야 하는 과정이다.

문제는 국회가 국익이나 장기적인 국가 전략이라는 관점보다 특정한 이해집단의 단기적인 이익에 따라 세법을 만든다는 점이다. 임투공제를 유지하기로 한 것도 따지고 보면 세 감면 혜택이 대폭 줄어들 것을 우려한 대기업들의 입김에 휘둘린 결과다.

연소득 5억 원 이상의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세무검증제도와 6000만 원 이상 되는 미술품 거래에 대한 양도소득세 부과 방안이 좌초된 것도 마찬가지다. 정직하게 세금을 내는 대다수 고소득자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이 국회가 세무검증제도를 무산시킨 표면적인 이유지만 보다 직접적인 이유는 의사와 변호사 출신 국회의원들의 반대였다.

투명한 세원 확보를 통한 재정 건전성 강화나 신성장 동력 발굴, 서민 생활 안정 등 당초 정부가 세제 개편에서 의도했던 목적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정부는 원안대로 세제 개편이 이뤄지면 앞으로 5년간 1조9000억 원의 세수 증가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했지만 국회를 통과한 최종안대로라면 세수 증가 효과는 1조3000억 원으로 줄어든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세제 개편안과 내년도 예산안이 예년보다 일찍 국회를 통과해 신속하게 정책을 추진하고 집행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폭력 사태까지 치달은 끝에 여당 단독으로 예산안과 그에 수반되는 부수 법안들을 무더기로 통과시킨 결과지만 12월 31일까지 새해 예산이 결정되지 않은 지난해보다 사정이 낫다는 것이 정부 관계자들의 반응이다.

유승호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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