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외국인 투자자 ‘컴백’…경기 회복 ‘청신호’

기지개 켜는 런던 부동산 시장

런던 부동산 시장은 잠에서 깨어나는가. 지난 2007년 호황기를 뒤로한 채 미국발 금융 위기 이후 숨을 죽여 왔던 런던 부동산 시장에 최근 들어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더욱이 런던의 상업용 부동산 매매 및 임대 시장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다시 찾아오고 있어 영국 경제에도 긍정적 신호로 해석되고 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은 런던 소재 부동산 개발 업체들이 사실상 신규 부동산 개발을 중지했던 2007년 이후 다시 상업용 부동산 개발에 나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 개발 업체들에 따르면 금융 위기 이후 사업 규모를 줄이는 데만 급급했던 투자 금융회사나 회계·법률 등 서비스산업 분야 대형 업체들이 서서히 투자 확대를 모색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YONHAP PHOTO-0029> A couple look into the window of an estate agent in Wimbledon, London, Thursday, June 4, 2009. House prices in Britain rose 2.6 percent in May, the biggest jump in more than two years, the nation's biggest mortgage lender said Thursday, boasting hopes that the recession may have bottomed out. (AP Photo/Sang Tan)/2009-06-05 00:34:35/ <저작권자 ⓒ 1980-200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2007년 이후 개발 사업 올스톱

신규 투자 계획을 마련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일 중 하나가 투자 대상 지역에 근접한 사무실 공간 확보라는 점에서 이들 업체의 움직임은 본격적 경기 회복을 위한 청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들 부동산 개발 업체들은 보유 자산의 가격이 상승하고 신규 개발 수요가 생겨나면서 최근 들어 눈에 띄는 수익 신장세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업체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당초 예상보다 회복세가 빠르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신규 공급 능력 면에서 여전히 제약이 있는 상황에서 리모델링 등 개발 수요가 생겨나기도 하고 2013년과 2014년 임대 계약이 끝나는 상업용 부동산의 재계약을 앞두고 재개발 수요도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반 주택 수요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변화를 견인하는 것은 외국인 투자자들이다. 영국 건설 업체 중 대표 주자로 꼽히는 버클리(Berkeley) 그룹은 최근 새로 분양한 주택의 절반 이상이 외국 투자자들에게 팔려나갔다고 밝혔다. 버클리는 아시아 지역 큰손들이 런던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 업체에 따르면 지난 6개월간 계약이 이뤄진 물량 중 40% 정도가 해외 자본을 통해 이뤄졌다. 더욱이 단기 차익을 노리는 투기 수요가 사라지고 장기 임대를 원하는 실수요자들이 부동산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부동산 업계는 크게 고무되고 있다.

아시아 시장의 장기 실수요자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중국인 부호들이다. 지난 1년간 영국 아파트 분양 시장에서 중국인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림잡아도 10%를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홍콩과 싱가포르 등 이미 영국 실물경제에서 상당한 비중을 누려왔던 아시아 지역 투자자들을 제치고 중국 부호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 부호들은 자녀들을 영국으로 유학 보내면서 아예 거주용 아파트를 매입해 주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중국 부호들이 이끄는 해외 수요 견인으로 건설 업체들의 형편도 나아지고 있다. 버클리 그룹은 지난해 대비 10% 매출 신장 목표를 가뿐히 뛰어넘어 올해 10월까지만 해도 16% 정도 성장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치를 내놓은 바 있다. 해외 투자자들의 부동산 수요 회복이 회사의 세전 이익을 20% 가까이 끌어올리는 촉매제 역할을 한 것이다.

부동산 에이전시인 나이트 프랑크(Knight Frank)도 해외 수요가 런던 주택 시장 가격을 밀어 올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아시아 쪽 큰손들뿐만 아니라 이탈리아나 스페인 투자자들의 수요도 늘어나는 추세라는 것이 이 회사의 분석이다.

외국인 부동산 투자자들에게 또 하나의 호재는 환율이다. 영국의 재정 적자에 따른 긴축정책, 그리고 낮은 이자율 등에 힘입어 파운드화가 계속 약세를 유지하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수요를 더욱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컨설팅 업체들은 런던에서 500만 파운드 정도의 건물을 외국인 수요자가 매입하면 엔화를 기준으로 180만 파운드, 달러화로는 100만 파운드 정도를 절감할 수 있다는 구체적 수치까지 제시하고 있다.

사실 런던 부동산 시장은 1990년대 말 이후 영국 경제의 ‘10년 호황’에 힘입어 고공 행진을 계속해 오다 지난 2007년을 기점으로 하향 곡선을 그려 왔다. 시장 과열을 우려한 정부와 중앙은행의 저금리 정책 기조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2007년까지만 해도 장기 호황에 따른 출산율 증가에다 동구권 이민자들의 유입이 늘어나면서 주택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리라는 희망 섞인 전망이 남아 있었다. 게다가 2010년 런던 올림픽 유치에 따른 특수도 이런 기대감을 부추기는 데 한몫했다.

그러나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가 터지면서 런던 금융시장은 빠르게 얼어붙었다. 당장 금융권 고위직 종사자들의 억대 보너스 관행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이들 중심으로 창출됐던 고급 주택 수요가 눈에 띄게 위축됐다.

이뿐만 아니라 전문직 종사자들의 런던행이 줄어들면서 주택 임대 시장 역시 소강 국면에 접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면에서 아시아 시장으로부터의 훈풍은 얼어붙은 런던 부동산 시장을 서서히 녹여주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런던 부동산 시장에 긍정적 신호를 보내온 것은 아시아 큰손들의 투자 움직임뿐만이 아니었다. 최근 경제 뉴스 전문 업체인 블룸버그통신이 런던에 제2본사를 건립해 입주할 것이라는 소식도 런던의 부동산 관계자들을 흥분시키는 뉴스였다.

전문직 종사자 임대 수요 증가

<YONHAP PHOTO-0488> 영국 부동산경기 남부 런던 점포 문위의 매물 간판들(로이터=연합뉴스) Property letting and sale signs are seen above shops in south London in this January 13, 2009 file photograph. Lower mortgage repayments for those homeowners whose loans track falling interest rates, and a falling cost of living as retailers compete on price are among factors prompting more than one in five people to say they felt positive in a survey last month by market research firm Mintel. To match feature FINANCIAL-BRITAIN/STIMULUS REUTERS/Toby Melville/Files (BRITAIN)/2009-02-25 11:12:41/ <저작권자 ⓒ 1980-200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영국 중앙은행(BOE)에서 멀지 않은 50만 평방피트(4만6451㎡) 규모의 이 건물은 ‘다스 베이더(Darth Vader)의 헬멧’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영화 ‘스타워즈’에서 다스 베이더가 쓰고 나오는 투구를 연상시키는 외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런던의 현대 건축을 상징하는 몇 안 되는 건물 중 하나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소문으로만 떠돌던 블룸버그의 런던 입성 소식은 최근 들어 개발 업체와 입주 금액까지 구체적으로 거론되며 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이 거래가 최종 성사되면 지난해 노무라은행의 투자은행 부문을 끌어들인 런던 부동산 업계로서는 이를 능가하는 대형 거래 한 건을 성사시키는 셈이다.

런던 부동산 시장을 들썩거리게 하는 또 하나의 요인은 바로 주택 임대 시장이다. 런던은 전 세계 각국에서 서로 다른 직종의 샐러리맨이 수만 명 모여드는 비즈니스 중심지다.

물가가 비싸기로 악명 높은 런던에서 살 곳을 구하기 위해 수만 명의 미혼 샐러리맨들이 선택하는 방법은 이른바 ‘플랫 셰어(flat share)’다. ‘플랫’은 연립주택 또는 아파트 형의 두세 개 방이 딸린 거주 형태를 가리키는 영국식 영어다. 쉽게 말해 아파트 한 채를 빌려 두세 명이 함께 사용하는 것이다.

부동산 중개 업체들은 이들 임대 수요를 잡기 위해 종종 ‘플랫메이트(flatmate) 파티’를 개최해 세입자들을 모으기도 한다. 이 파티에 참석한 예비 세입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런던의 주택 임대 시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생생한 경험담을 들을 수 있다.

최근 들어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공급에 병목현상이 생기면서 임대료가 치솟는 통에 울상을 짓는 샐러리맨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단독 세입자들을 중심으로 주택 임대 수요가 이렇게 증가하고 있다는 것만 봐도 런던을 찾는 전문직 종사자들의 숫자가 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동산 가격이 비싸기로 유명한 영국 런던의 상업용·주거용 건물 수요는 영국 경제, 나아가 세계 금융시장의 활력을 가늠하는 척도 중의 하나로 여겨져 왔다. 그리고 런던 부동산 시장의 흥망성쇠는 흔히 ‘더 시티(The City)’라고 불리는 금융 중심지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투자·법률·회계·교육 등의 서비스 수요와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상업용 부동산의 수요 증가나 외국인 큰손들의 주택 매입, 그리고 전문직 종사자들의 임대 수요 증가 모두 금융 위기 이후 휘청거리던 런던의 위상을 회복시키는 긍정적 시그널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성기영 영국 통신원(워릭대 국제정치학 박사과정) sung.kiyo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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