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한중일 100대 기업] 성과 ‘주목’…‘스피드·결단력 배우자’

일본에 부는 ‘한국 기업 따라잡기’ 붐

“한국은 대단해.”

최근 일본에서 이런 말을 흔히 접할 수 있다. 한류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 경제의 놀라운 성과에 대한 찬사다.

올해 초 삼성전자의 2009년 영업이익이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인 파나소닉과 소니를 합쳐도 더 많다는 뉴스가 보도되자 일본 내에서는 한국과 한국 기업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졌다.

최근 NTT도코모가 발매한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 S’는 품절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LG전자의 휴대전화와 디스플레이도 서서히 일본 시장에 스며들고 있다.

금융 위기 후 더 강해진 한국

Goups of businessmen are purified by a Shinto priest during a ceremony on the first business day of the new year at Kanda Myojin in Tokyo Wednesday, Jan. 4, 2006. Kanda Myojin is known as a shrine of commerce and industry. (AP Photo/Shizuo Kambayashi) 일본 기업인들이 4일 일본 도쿄(東京)의 간다(神田)신사에서 열린 기업의 행운.번창을 기원하는 2006년 기업시무식에 참배하는 동안 한 신사 관계자가 액을 쫓아내고 있다.(AP=연합뉴스) <저작권자 ⓒ 2005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Copyright 2004 Yonhap News Agency All rights reserved.
더욱이 2008년 리먼브러더스 쇼크 이후 세계에 불어 닥친 불황의 그늘에서 빠르게 빠져나간 한국 경제를 볼 때 오랜 세월의 불황에 익숙해 있는 일본 처지에서는 눈부실뿐이다.

세계 최대의 신흥 시장인 중국이나 인도에서의 한국 기업의 인지도나 힘은 경탄할 만하다.

그곳에서 삼성·LG·현대 자동차 등 한국 대기업의 선전을 보고 일본에서는 ‘왜 일본 기업은 거기까지 할 수 없었던 것일까’라는 자조적인 목소리를 내는 경영자도 적지 않다.

일본 기업들은 ‘고급 시장’이라는 말에 자기도취돼 한국 기업처럼 시장의 수요에 따른 제품을 만들지 않았고 판매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반성도 여기에 포함돼 있다.

‘스피드 경영’, ‘대담한 투자’, ‘헝그리 정신’ 등 성공을 거두는 한국 기업들은 몇 가지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한국 기업 오너들은 과감한 경영 판단을 내려 성공적인 결과를 낳은 사례가 많다. 한국 기업의 특징인 ‘오너의 의한 판단’은 지금까지 일본에서는 한국 기업의 약점으로 치부돼 왔다.

오너의 독선으로 경영 방침을 정하는 것은 위험 요소가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빠른 결단력이야말로 한국 기업의 승리 요인”이라는 정반대의 평가가 나오니 참 아이러니하다.

1997년의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당시만 해도 “그래서 한국은 안 돼”라는 인식이 일본 내에서 퍼졌고 견제해야 할 경쟁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다.

한정화 한양대 교수는 “한국 기업들은 IMF 외환위기 때 전대미문의 정리해고를 실시하고 지난 15년간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경영의 패러다임 변화를 추구해 왔다”고 말한다.

전통적인 연공서열제를 무너뜨리고 성과주의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조직 구조도 수직에서 수평으로 바꾸면서 직원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었다.

아직 일본에서는 한국의 격렬한 노사 대립을 한국 기업의 특징으로 보는 시각이 남아 있지만 이것도 상당수 급감했다.

한국이 IMF 관리체제 아래 진행한 개혁을 통해 한국 기업은 기술이나 서비스의 체질을 강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일본은 몰랐었다. 한국 기업들은 미국·일본·유럽의 기업을 연구하고 해외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전략을 가다듬었다.

또한 대기업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는 중소·벤처기업이 크게 늘며 분발하고 있었다는 점도 일본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었다. 최근 일본에 진출한 NHN이 초기에 벤처기업으로 출발해 성장한 기업이라는 설명을 듣고 많은 경영자들이 놀라워했다. NHN의 시가총액이 일본의 대기업 이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많은 일본인들이 주목하고 있다.

세계로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인들에게 “일본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일본 기업이 진출하지 않은 시장으로 우리는 간다”는 반자학적인 말을 들을 적이 있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이 신흥 시장의 작고 어려운 시장에 진출한 것이 제품 개발과 마케팅에서 기존의 관례를 깨고 혁신적일 수 있었던 요인이 됐다. 이것이야말로 선진국 시장에 안주하며 가능성이 넘치는 시장들을 간과하고 나태했던 일본 기업이 반성해야 할 점이다.

다마대학(多摩大) 경영정보학부 김미덕 교수는 “최근 10년 동안 삼성이나 LG가 신흥국에서 쌓아 온 기반을 일본은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 기업들은 신흥국의 시장 가능성에 대해 말로만 부르짖었을 뿐 기존의 선진국 시장에만 얽매여 성장 기회를 놓친 것이다. 스스로 부족한 점을 새로운 가능성으로 채우면서 성장해 온 한국 기업에 비해 일본 기업은 진지한 고민이 부족했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긴 불황에 지친 일본 기업들

그런 한국에 대해 일본은 새삼스럽게 기술을 강조한다. 아직 부품이나 소재 산업에 대해 일본 기업이 강점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높은 기술력을 갖고 있어도 내다 파는 방법을 잘 모른다. ‘모노즈쿠리(장인정신이 깃든 물건 만들기)’라는 미명 아래 스스로 만족하는 자기중심적인 일본의 특성이 여기에서도 나타난다.

일본은 해외시장에 제품을 팔려고 해도 ‘기술을 도둑 맞는다’는 시대에 뒤떨어진 소리만 하고 있다. 신흥국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한국 기업과 협력해 진출하는 것도 매우 불안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앉아만 있다가는 수익 창출은커녕 기술 유지도, 혁신도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일본 기업들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한국이야말로 일본이 진심으로 교류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라고 한국에 정통한 일본 지식인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더욱이 산업구조에서 일본과 한국은 서로 보완 관계에 있다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대로 양국 기업이 손을 잡고 세계시장에 진출한다면 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비즈니스가 가능할 것이다.

한일 간 기업 교류가 활발해지는 것이 좋겠지만 긴 불황에 익숙해져 버린 일본에서 건설적인 이야기가 좀처럼 나오지 않고 있다. 한국 기업이 선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숨만 쉬고 있는 것이 현재 일본의 모습이다.

후쿠다 게이스케 주간 동양경제 기자

1968년 출생. 고베시 외국어대 러시아학과 졸업. 마이니치신문사 기자를 거쳐 현재 ‘주간 동양경제’ 기자. 주로 아시아관련 기사를 담당하며 최근의 한국기업 경쟁력 관련 특집기사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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