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스포츠 전문가 김태일
지난 11월 27일 폐막한 광저우 아시안 게임은 우리나라 대표 팀에 여러 모로 의미 있는 결과를 안겨주었다. 더욱이 댄스스포츠인들에게 이번 아시안 게임은 더욱 각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대회였다.댄스스포츠가 아시안 게임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첫 대회였기 때문이다. 광저우 아시안 게임 댄스스포츠에 걸린 금메달은 모두 10개.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쉽게도 홈팀인 중국에 밀려 은메달 7개, 동메달 3개를 따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보는 내내 감회가 새롭더군요. 사실 제가 국가대표로 활동하던 때만 해도 동아시아 게임이나 아시아 인도어 게임밖에 없었거든요. 그때만 해도 언제 아시안 게임에 정식 진출해 보나 싶었는데 제자들이 좋은 성적을 내는 걸 보니 감회가 새롭더군요.”
스타라이트 댄스스튜디오 원장이자 건국대 미래지식교육원 댄스코치 아카데미 주임교수로 활약하고 있는 김태일 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최고의 댄스스포츠 전문가다.
선수로 활약할 당시 8년 연속 챔피언을 차지하고 33회 연속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국내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던 이답게 후진 양성에도 일가견이 있는 댄스스포츠계의 거목이다.
실제로 이번 아시안 게임에서 모던댄스 부문에 참가한 국가대표 3커플 중 2커플이 그가 발굴하고 가르쳤던 제자들이기도 하다.
더욱이 그는 엘리트 스포츠 전문가이자 생활체육 전문가로서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트레이너 겸 댄스 코치로 유명하다.
그가 댄스스포츠를 시작하게 된 것은 약 25년 전, 고등학생일 때다. “원래는 연극배우를 꿈꿨었어요. 연기를 하려면 몸의 표현력을 높이는 게 중요해 댄스를 배우게 됐죠.”
표현력과 유연성을 키우기 위한 일환으로 왈츠를 접했을 때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꿈꿔오던 순간을 맞이한 듯한 느낌을 가졌다고 한다. “진부한 표현일지 몰라도 운명이란 걸 그때 느꼈죠. 왈츠를 접해 보니 제가 꿈꾸던 그 모습이 바로 거기에 있는 거예요. 이거다 싶었죠.”
최고의 배우가 되겠다는 꿈은 어느새 최고의 댄서가 되겠다는 꿈으로 바뀌었다. “한 3개월만 배우면 꽤 잘 추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덤벼들었는데, 웬걸요? 3년을 배워도 실력이 생각만큼 늘지 않는 거예요. 그때부터 오기 반, 열정 반으로 더 이를 악물고 집중했죠.”
당시만 해도 국내에는 정식으로 댄스스포츠를 가르치는 이들이 별로 없었다. 교재 또한 변변한 것이 없어 외국에 갔다 오는 이들에게 부탁해 외국 서적을 들여와 직접 번역해 가며 춤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건강에 좋은 댄스스포츠의 힘
“그 후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외국에 춤을 배우러 가곤 했죠.” 영국·이탈리아·독일 등지에서 춤을 배웠다. 거의 10여 년을 외국에서 춤을 배우고 한국에서 대회에 나가는 생활을 반복했다.
그렇게 댄스에 정신없이 빠져있는 동안 20대, 30대가 훌쩍 지나가고 말았다. “2006년의 국제 대회를 마지막으로 선수로서는 은퇴했어요. 그리고 그동안 선수 활동과 병행해 오던 교육 활동에 본격적으로 매진하기 시작했죠.”
본격적으로 교육 활동에 나서면서 그가 소망했던 게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건물 1층에 댄스 아카데미를 내는 것이었어요. 유럽에는 댄스 교습소가 건물 1층에도 많거든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지하나 건물 꼭대기 층에 있더군요. 그래서 내가 댄스 아카데미를 낼 때는 반드시 건물 1층에 번듯하게 내야겠다고 생각하곤 했었어요.”(웃음)
또 하나의 소망은 하늘을 보며 춤출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반짝이는 밤하늘의 별을 조명 삼아 춤출 수 있는 로망을 꿈꿨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댄스스포츠를 배우고 싶은 이들에게 가장 최적화된 가르침을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댄스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또 건국대 미래지식교육원 댄스코치 아카데미 주임교수로 활동하며 그는 이 꿈들을 모두 이뤘다. 그래서 그는 행복하다. 소망도 이뤘을 뿐만 아니라 댄스를 통해 배운 행복을 많은 이들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은 바짝 마르고 까맣게 얼굴이 죽은 한 부인과 남편이 찾아오셨더라고요.” 원인 불명으로 시름시름 앓는 부인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찾아온 부부였다. “병원에서도 원인을 알지 못해 그냥 좋아하는 것이라도 실컷 하게 해 주자 싶어 소원을 물었더니 부인이 ‘당신과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춤 한 번 춰보는 게 소원’이라고 그러더래요. 그래서 저에게 댄스를 가르쳐 달라고 찾아온 것이었어요.” 그리고 댄스를 배우기 시작한 지 몇 달 되지 않아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얼굴에 뽀얗게 살이 오르고 몰라보게 건강해지기 시작한 것이죠. 알고 보니 그동안 부인은 마음에 화가 쌓여 병이 되었던 거예요. 그런데 댄스를 하며 땀을 흘리고 남편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면서 자신의 화를 다 씻어낸 셈이죠.”
부산에 사는 한 기업인도 암에 걸린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부인에게 최고의 순간을 선사하기 위해 그를 찾아와 댄스를 배운 뒤 건강을 회복하고 그를 평생의 은인으로 여기고 있을 정도다. 이 밖에 일일이 거론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많은 이들이 그에게 댄스를 배운 후 제2의 인생을 즐겁게 누리며 산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댄스가 무슨 만병통치약이냐고 비웃을 분도 있겠지만, 사실 댄스가 가진 힘은 놀라워요. 댄스스포츠야말로 신체적인 건강이나 심리적인 건강에 가장 적합한 운동이기 때문이죠.”
“송년회, 댄스 하나로 바꿔보세요”
그래서 그가 후진들을 가르칠 때는 단순히 댄스의 테크닉만 가르치지 않는다. 심리학이나 철학 등도 실질적인 댄스 테크닉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엘리트 스포츠 교육 외에 생활체육으로서 댄스를 강습하다보면 음치·박치·몸치들을 많이 만나요. 그분들께는 어떻게 포즈를 취할 것인지,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를 가르치는 것보다 심리적인 안정을 취하는 방법을 먼저 제시하죠.”
자신감이 없어서 동작을 취하는 것에 주저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못하는 자신을 보고 사람들이 웃지 않을까 더욱 긴장하게 돼 몸치·박치가 되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죠. 그 마음의 긴장을 풀고 댄스를 즐기다 보면 어느새 삶의 다른 부분들도 즐기게 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현재 국내에서 댄스스포츠를 즐기는 인구는 최소 500만 명에서 최대 800만 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골프 인구보다 많은 게 바로 댄스 인구일 걸요? 그런데도 아직 댄스스포츠의 진가를 모르는 분들이 너무 많아요. 댄스스포츠야말로 남녀노소 누구나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인 스포츠인데 말이에요.”
그는 댄스스포츠가 가진 ‘커뮤니케이션’ 능력이야말로 현대인이 가장 필요로 하는 부분이라고 강조한다.
“댄스는 파트너가 있어야 해요. 그리고 그 파트너와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져야 하죠. 서로의 손과 호흡을 통해 상대방과 호흡을 맞추는 일이 바로 댄스이니까요. 그래서 댄스를 할 땐 자신과 상대만이 있어요. 왕따란 존재하지 않죠. 현대인만큼 외로움을 잘 타는 이들에게 댄스보다 훌륭한 스포츠가 또 있을까요?”
또한 그는 “사회가 발달할수록 파티 문화가 발달하기 때문에 파티에서 능숙하게 댄스 한 곡쯤 출 수 있다면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도 달라 보인다”며 “연말연시 파티 장소에서 멋진 자신을 어필하고 싶다면 지금부터라도 댄스를 배워보라”고 권한다.
“아내에게 점수도 따고 파티 분위기도 만끽하고 여유 있는 자신의 모습도 어필할 절호의 찬스잖아요.(웃음) 여러분도 댄스를 통해 삶을 즐기는 방법을 다시 한 번 찾아봤으면 합니다.”
약력 : 1968년생. 한국체대 석사. 영국·이탈리아·독일 등에서 10년간 댄스 공부. 1998년부터 2006년까지 8년 연속 코리아 내셔널 챔피언(KOREA National Champions)을 지냄. 현재 댄스스튜디오 ‘스타 라이트 댄스 스튜디오 볼룸’ 대표이자 세계댄스문화예술협회 회장. 건국대 댄스코치 아카데미 주임교수로도 활약하고 있다.
김성주 객원기자 helie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