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슈퍼 컴퍼니 100

한경비즈니스 15주년 기념

아시아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더 정확하게는 동북아·한중일의 시대다. 기업은 이러한 변화를 이끄는 핵심 주역이다. 이제 동북아는 사실상 하나의 시장이다. 한국과 중국, 일본의 잘 짜인 분업 시스템은 금융 위기의 파고를 넘으며 또 한 번 그 위력을 과시했다.

전 세계 투자자들이 이 지역 알짜 기업에 일찌감치 눈독을 들이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일천하다. 한번쯤 이름은 들어봤지만 실제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경비즈니스가 창간 15주년을 맞아 한중일 100대 기업을 선정했다.

매출액·시가총액·순이익을 잣대로 1646개 기업을 한 줄로 세워 최고 중의 최고를 가려 뽑았다. 성공을 꿈꾸는 독자라면 이들 기업의 미래에 주목하라.


< 조사 개요 >

대상 : 한중일 1646개 상장 기업

-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 및 코스닥(한국)
- 상하이증권거래소, 선전증권거래소(중국)
- 도쿄증권거래소, 오사카증권거래소, 자스닥(일본)

평가 항목 : 매출액·시가총액·순이익

- 2009 회계연도, 시가총액은 2009년 말 종가 기준

순위 산정: 각 항목별 순위 합산해 총합이 낮은 순위로 랭킹 매김.

- 동점일 경우 매출액 우선

자료 제공 : 톰슨 로이터


이번 ‘한중일 100대 기업’ 결과의 특징은 중국 에너지 기업과 은행의 초강세로 요약된다. 폭발하는 에너지 수요와 방대한 고객 기반을 무기로 대거 상위권에 포진했다. 하지만 53개에 달하는 기업을 순위에 올린 일본의 저력을 중국세가 넘보는 것은 아직 시기 상조다. 올해 조사에서 가장 큰 이변의 주인공은 삼성전자다. 일본의 간판 기업 도요타자동차를 누르고 종합 순위 3위에 올랐다.

‘2010년 한중일 100대 기업’ 1위는 중국 최대 에너지 업체인 페트로차이나다. 지난해 매출 1493억 달러, 순이익 151억 달러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중국 내 원유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전 세계 유전을 공격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올해 초 엑슨모빌을 제치고 시가총액 세계 1위에 올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2위는 중국의 또 다른 에너지 메이저인 시노펙이 차지했다. 과거 페트로차이나는 석유 생산, 시노펙은 정유 사업에 주력했지만 지금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며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매출액은 1928억 달러로 페트로차이나보다 많았지만 시가총액과 순이익에서 뒤졌다.

3위는 한국의 삼성전자다. 반도체·액정표시장치(LCD)·휴대전화·가전 등 균형 잡힌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다. 지난해 매출 1195억 달러, 순이익 88억 달러를 기록했다. 일본의 주력 전자 업체들이 하나같이 적자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과 비교하면 더욱 돋보이는 성적표다.

4위는 중국 최대 은행인 중국공상은행에 돌아갔다. 13억 명에 달하는 두터운 고객 기반이 가장 큰 강점이다. 중국 전역에 1만6394개에 달하는 지점망을 촘촘히 구축해 놓고 있다. 은행 카드 발행량도 거의 3억 장에 달한다. 한 해 동안 무려 188억 달러의 순이익을 벌어들여 순이익 부문 1위다.

5위는 일본의 NTT가 차지했다. 일본 최대 통신 업체다. 단순한 통신 회사에서 벗어나 차세대 네트워크를 겨냥한 ‘서비스 창조 그룹’을 목표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이동통신 자회사인 NTT도코모도 11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어 세계 최대 자동차 기업 도요타가 6위에 올랐으며 혼다(7위)·중국은행(8위)·차이나라이프(9위)·미쓰비시 UFJ 파이낸셜그룹(10위)이 그 뒤를 이었다. 중국은행은 중국의 4개 국유 상업은행 중 하나로 청나라 말인 1904년 설립됐으며 외국환 업무에 강점을 갖고 있다. 차이나라이프는 중국 최대 보험사다. 중국 건국 직후인 1949년 중국인민보험공사로 출발했다.


삼성전자, 도요타 누르고 3위 올라

100대 기업을 전체적으로 보면 중국은 기초 인프라와 관련된 독과점 성격의 국유 기업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신흥 민영기업들은 대부분 순위 진입에 실패했다. 하지만 이들은 글로벌 경쟁력을 빠르게 확보하며 중국 경제의 새로운 축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통신 장비 업체인 ZTE(118위)와 에어컨 1위 업체 그리전자(140위), 중국 최대 가전 업체 하이얼(227위)의 약진이 돋보인다. 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 최대 이동통신사 차이나텔레콤과 세계적인 컴퓨터 제조업체 레노보는 이번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낯익은 일본 기업들도 100대 기업 명단에서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 대규모 적자로 순이익 항목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소니(460위)를 비롯해 샤프(235위)·파나소닉(195위)·도시바(457위)·히타치(491위)가 이에 속한다. 샤프(235위)도 적자를 내지는 않았지만 순이익이 쪼그라들면서 순위가 하락했다. 일본 최대 철강사인 신일본제철도 1억230만 달러 적자로 453위에 그쳤다.

이제 동북아는 하나의 시장이다. 국경을 넘나들며 서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최근 중국공상은행은 한국 지방은행인 광주은행 인수전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했다. 막강한 중국 금융자본의 한국 시장 진출이 시작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중국 최대 건설사인 중국건축공정총공사도 서울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 랜드마크 빌딩 건설에 시공사로 참여를 준비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도 중국을 ‘제2의 내수 시장’으로 개척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공을 들이고 있다. 올 들어 일본 재계와 언론은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 따라잡기에 열을 올린다.

동북아의 강력한 기업 네트워크는 이 지역의 공동 번영과 ‘아시아 경제 공동체’ 탄생의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다. ‘한중일 100대 기업’에서 진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이들의 현재가 아니라 미래와 방향성이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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