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5주년 특별 인터뷰 (1)] “한국 경제 성장 지속…금리 3~4%대가 적정”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지난 2002년부터 4년간 한국은행 총재를 맡으며 통화정책을 이끌었던 박승 전 총재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인물로 기억된다.

1976년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를 거쳐 1988년 건설부장관, 1993년 대한주택공사 이사장, 1999년 한국경제학회장, 2001년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 2002년 한은 총재 등 고도성장기와 사상 초유의 외환위기 등 한국 경제의 굵직한 역사를 오롯이 겪어낸 이도 바로 박 전 총재다.

얼마 전 회고록 발간으로 한국 현대 경제사를 풀어내 화제가 되기도 한 그를 평창동 자택에서 만났다. 고희를 넘긴 나이에도 글로벌 경제를 분석하는 날카로움은 여전했다.

세계경제가 여전히 위기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요.

지난 20년간 세계경제는 공산권 붕괴, 독일 통일 등을 거치며 신자유주의 개방 질서가 확립됐습니다. 적자생존의 질서와 고물가 저성장 시대가 온 것이죠. 다음으로 중요한 이슈는 중국 경제가 세계경제의 신성장 동력으로 급부상한 겁니다.

신자유주의 개방 질서와 중국 부상의 결과로 20년간 고성장 저물가의 호황을 맞았죠. 그런 가운데 양극화도 심화됐고요. 20년간 이런 양상이 계속됐습니다. 하지만 2008년 금융 위기를 계기로 고성장·저물가·저금리·고유동성으로 떠받치던 거품이 붕괴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혼돈의 시대죠. 혼돈의 과정이 국제수지 불균형으로 나타나는데, 여기서 갈등 조정을 잘못하면 세계경제의 앞날은 매우 어렵다고 볼 수 있어요.

불균형의 원인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핵심은 미중 관계예요. 미국은 중국의 위안화가 저평가됐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반면 중국은 미국의 경제 체질 때문이라고 주장하죠. 미국은 위안화 절상을 요구하고, 중국은 미국에 소비와 재정 적자를 줄이라고 주장합니다.

양쪽의 주장이 상반되지만 모두 일리가 있어요. 단기적으로는 환율 문제, 장기적으로는 경제 체질(실물경제)의 문제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현재로서는 중국의 책임이 더 크다고 봐요. 무역에선 시장경제 혜택을 누리고, 환율은 국가 통제 하에 두고 있기 때문이죠.

또한 중국은 현재 주요 흑자국인데 비해 경제 체질 문제는 장기적 문제입니다. 당장의 변수로는 중국의 책임과 태도가 더욱 중요하다 봅니다.

중국의 책임 있는 태도 변화가 가능하리라고 보십니까.

불균형이 장기화되면 해결하기가 그만큼 어려워집니다. 미국은 과소비 기조의 경제구조를 고치기 어렵습니다. 소비수준을 대폭 내릴 가능성도 낮죠. 일본은 낮은 소비 성향과 높은 저축률 때문에 흑자가 누적되는 구조입니다.

이런 체질도 고치기 어려워요. 중국은 고도성장, 통제경제 때문에 흑자를 유지합니다. 이것도 고쳐지지 않을 겁니다. 환율로도 이런 불균형 문제를 고칠 수 없고, 실물 조정도 장기적으로 비관적입니다.

따라서 지금의 상황이 오래가리라고 봅니다. 열쇠는 중국이에요. 성장 환경의 가장 큰 수혜자이기 때문에 지금의 성장 메커니즘을 유지하고 싶어 할 겁니다. 따라서 미국과의 갈등을 어떤 형태로든 궁극적으로 조정하길 바랄 것인데, 자발적·점진적으로 위안화를 절상하는 쪽으로 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위안화 절상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입니까.

위안화가 절상되면 원화 절상도 불가피합니다. 수출이나 성장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겠죠. 다만 절상 속도가 흡수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뤄지고 나면 반드시 불리하다고 말할 수 없어요. 장기적으로 달러당 800대까지 떨어지리라고 예상됩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핫머니 등 단기 외화 유입이 지속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시장금리만 떨어뜨리고 유동성이 확대돼 증권·부동산 시장 등에 자산 거품이 낄 가능성이 높죠. 따라서 금리 인상, 해외 자금에 대한 적절한 규제 등을 검토해야 합니다.

최근 한국 기업의 선전이 눈부신데, 우리 경제의 미래는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세계경제가 장기 침체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4% 내외의 양호한 성장을 지속할 겁니다. 한국은 기초 체력이 강해요. 대기업의 경쟁력이 살아 있고 성장·물가·국제수지 모두 양호한 상황이죠. 세계경제의 기관차 역할을 할 중국 효과의 가장 큰 수혜국도 바로 한국입니다.

하지만 양극화나 고용 없는 성장의 장기화 가능성도 큽니다. 경쟁력이 강한 대기업은 성장하는 반면 중소기업·자영업·농업은 침체되는 거예요. 실제로 빈부 격차 확대, 실업 증가 등이 나타나고 있죠.

사실 이런 현상은 노무현 정부 때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났어요. 강력한 서민 위주의 정책을 폈지만 실제 수혜 계층은 부유층이었죠.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와 중국 경제 부상, 부동산 투기 등이 유발한 결과였습니다.

배를 서쪽으로 저었지만 바람에 밀려 동쪽으로 가버려 결국 정권 창출도 실패했죠. ‘노무현의 역설’이랄까요. 이런 기조는 현 정부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지속될 겁니다.


최근 연평도 도발 등 대북 리스크 문제가 심각히 거론되고 있습니다.

성장 위험 요소로서 북한 리스크는 절대적입니다. 북이 우리에게 유해한지 무해한지, 혹은 유익한지는 전적으로 우리가 하기 나름이에요. 그들이 유해한 존재가 된다면 한국 경제 성장에 절대적인 위협 요소죠.

남북 간 보복전이 이어지는 양상은 지금 당장은 속 시원할지 모르지만 종착점은 매우 비생산적이에요. 평화 체제 유지는 한국 경제 성장의 대전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이나 틀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개인적으로는 중도 실용 노선을 지지합니다. 그런데 실제 정책은 매우 혼란스러워요. 가령 초기의 친기업 정책 표방을 보세요. 심지어 공항 VIP실에 대기업 총수들을 위한 방을 만들 정도이고, 부자 감세 정책도 폈죠.

그런데 요즘에는 친서민 정책을 들고 나오고 있어요. 감세 문제는 여당 안에서도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죠. 대북 관계도 중도 실용 노선을 적용한다면 평화적으로 가야 하는데, 실제로는 극우적 대결 구도로 가고 있어요. 경제 성과를 평가하자면 썩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았다고 봐요. 학점을 주자면 B마이너스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얼마 전 한국은행이 두 번째 기준금리를 인상했습니다.

정상 경제라면 4% 성장률의 적정 금리가 3~4%는 돼야 합니다. 지금은 현저히 낮은 수준이죠. 과거에는 금리정책을 물가 하나만 보고 결정했어요. 통화 인플레를 전제로 한 것이죠. 현재의 인플레는 비용 인플레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중국 저임금, 수입 저물가에 따른 물가 안정이죠. 이런 상황에서 저금리를 유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금리는 실물경제와 국민 경제의 전체적인 균형을 조정하는 수준에서 정해야 합니다.

물가 하나만 봐서는 안 돼요. 이와 함께 정책 입안자는 긴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 인기가 없더라도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선택하고 추진해야 하죠. 예를 들어 수도권 규제를 풀자는 주장이 많은데, 그래선 안 됩니다.

천년만년을 봤을 때 국토 균형 발전이 훨씬 더 중요한 가치예요. 저는 정부의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대기업 출자총액제한제도 완화 등은 적극 지지합니다. 하지만 수도권 규제 완화, 종합부동산세 완화, 부자 감세 등은 비판적으로 봅니다.

약력 : 1936년생. 61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74년 뉴욕주립대 경제학 박사. 61년 한국은행 차장. 76년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88년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건설부장관. 93년 대한주택공사 이사장. 99년 한국경제학회 회장. 2001년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 2002년 한국은행 총재.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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