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보다 심오한 경제 전망

경제부처 24시

“경제학자는 어제 일어난 일을 오늘 설명하는 사람이다.”

한 민간 경제 연구 기관장은 경제 예측의 어려움에 대해 이같이 털어놓았다. 이미 지나간 일의 원인과 결과에 대해서는 그럴듯하게 설명할 수 있지만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경제 예측을 ‘예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해마다 이맘때면 정부와 한국은행은 물론 국책 및 민간 경제연구소와 국제기구, 투자은행들이 경제성장률을 비롯한 내년도 경제 전망을 앞 다퉈 내놓지만 실제 경제가 이들의 전망대로 흘러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글로벌 금융 위기가 닥친 2008년에는 대부분의 국내외 기관들이 한국 경제가 4~5%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그해 한국 경제는 4분기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등 고전을 거듭한 끝에 2.3% 성장하는데 그쳤다.

2009년도 마찬가지였다. 주요 연구 기관들은 2009년 한국 경제가 연간 2~3%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 위기와 뒤이은 세계적인 경기 침체의 골은 연구 기관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깊었다. 결국 2009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0.2%로 마이너스 성장을 면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올해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났다. 지난해 말 대부분의 연구 기관들은 4%대의 경제 성장을 전망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4.3%의 성장을 예상했고 LG경제연구원은 4.6%의 전망치를 제시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3.9% 성장에 그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나 올 들어 한국 경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의 성장을 지속했다. 연간 성장률은 6%가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경제가 글로벌 금융 위기에서 예상보다 빨리 벗어난 데다 한국의 최대 수출 상대국인 중국 경제가 고성장세를 유지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2009년 성장률이 워낙 낮았던 데 따른 기저효과도 작용했다. 비교 대상 시점의 실적이 워낙 좋지 않았기 때문에 경제가 조금만 회복돼도 증가율이 높게 나온 것이다.

유력 연구 기관 전망 번번이 빗나가

이제 관심의 초점은 내년 경제가 어떻게 될 것이냐다. 주요 기관들의 내년 성장률 전망은 4%대 초·중반으로 의견이 모아진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4.4%의 전망치를 제시했고 현대경제연구원은 4.3%의 성장을 예상했다.

국제기구들의 전망도 비슷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4.5%, OECD는 4.3%의 예상치를 내놓았다. 이보다 더 비관적인 시나리오를 제시한 곳도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3.8% 성장을 예상하고 있고 스위스계 투자은행인 UBS는 3.3%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주요 기관들이 4%대 초·중반 또는 그보다 낮은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제시하면서 당초 5% 안팎의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봤던 정부의 시각도 달라지는 분위기다. 지난 11월 17일 기획재정부 거시경제 전망 태스크포스팀이 민간 연구 기관의 전문가를 초청해 개최한 세미나에서 전문가들은 세계경제 여건에 비춰봤을 때 내년 5% 성장은 힘들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지난 11월 29일 윤증현 재정부 장관과 연구 기관장들 간 간담회에서도 각 기관장들은 내년 성장률이 4%대에 머무를 것이라고 밝혔다.

백가쟁명(百家爭鳴) 식의 전망이 쏟아져 나오지만 실제 내년 한국 경제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과거 사례를 보면 전망치는 그저 참고 자료의 의미가 있을 뿐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할 만한 것은 안 된다. 더구나 최근 유럽 재정 위기의 확산, 미국 경기 회복 지연, 중국의 긴축 움직임 등이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윤 장관은 경제 전망과 관련, “정부는 국민에게 장밋빛 기대를 심어주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현실에 근거한 전망치를 제시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 비관적인 전망도 경제 주체들의 심리를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유승호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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