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건설업계에서 쫓겨나는 야쿠자

일본의 폭력 조직인 야쿠자들이 설 곳을 잃고 있다. 야쿠자는 그동안 일본 건설업계를 기반으로 제도권 사업에 진출, 막대한 돈을 벌어왔다. 그러나 일본 정부와 기업들이 지난 2008년부터 폭력 조직과의 유착 관계를 끊기 위한 혁신적인 조치들을 내놓으면서 야쿠자들이 건설업계에서 쫓겨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일본 도쿄에서 2012년 완공을 목표로 공사 중인 ‘도쿄 스카이 트리’. 일본에서 가장 높은 이 통신 탑 건설에는 야쿠자 관련 기업들의 참여가 완전히 봉쇄됐다. 이 타워의 개발 업체가 야쿠자 관련 기업들의 공사 참여를 막았기 때문이다.

공사장 곳곳에는 감시 카메라가 설치돼 있고 보안 요원들도 배치돼 있어 야쿠자와 관련된 회사의 장비나 물품이 사용되는지 철저히 감시하고 있다. 도쿄시도 12월부터 야쿠자와 관련된 기업체 및 개인과의 건설 계약을 금지할 계획이다.

야쿠자와의 결탁이 밝혀진 기업은 대중에 공개되고 각종 제약을 받게 된다. 일본 경찰청과 정부 각 부처들도 건설 업체에 야쿠자와 관계를 끊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 재무부는 돈세탁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들을 도입했고 은행권은 야쿠자 관련 기업 및 개인에 대한 대출 금지는 물론 은행 계좌 개설까지 막고 있다.

일본 경시청, 야쿠자 조직 보스 전격 체포

일본 경시청은 지난 11월 18일 일본 최대의 야쿠자 조직인 ‘야마구치파’의 사실상 보스인 다카야마 기요시(63)를 전격 체포했다. 건설 업체로부터 4000만 엔을 갈취한 혐의였다. 이 조직의 보스는 지난 2005년 불법 무기 소지 혐의로 이미 구속된 상태이기 때문에 ‘야마구치 파’는 리더 없는 조직으로 전락했다.

기시 고헤이 일본 경시청 조직범죄부장은 “야쿠자가 일본 경제, 특히 건설 산업에서 큰 위협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경찰에 따르면 일본에서 야쿠자들은 모두 22개 조직이 있으며 이들이 거느린 조직원들도 8만3000명에 달한다.

이들은 30조 엔(3620억 달러)에 달하는 건설 시장에서 오랫동안 활개를 쳐 왔다. 야쿠자들의 세력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 1990년대에 이들은 건설 시장에서만 매년 1조 엔 이상의 돈을 챙겨갔다.

야쿠자들은 개발 업체들의 건설 프로젝트가 제대로 진행되도록 뒤를 돌봐준다는 명목으로 ‘보호비’를 갈취하고 위장 기업을 만들어 유리한 조건으로 건설이나 조달 계약을 따는 방식으로 돈을 벌어왔다.

그러나 2008년부터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 대형 부동산 업체인 수루가는 도쿄빌딩 임차인들을 쫓아내기 위해 야쿠자들이 세운 위장 회사와 계약했다. 경찰이 이 위장 회사의 임원들을 체포하자 수루가 사장은 사임했다.

곧이어 은행들이 대출 회수에 나서면서 수루가는 파산했다. 건설 업체 연합회는 야쿠자와 관련을 맺는 기업에 제재를 가하기 시작했다. 지난 4월에는 건설 계약을 하더라도 계약자가 야쿠자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 계약을 무효화할 수 있다는 조항을 만들어 회원사들이 모두 채택하도록 했다.

도쿄에서 반 야쿠자자문센터를 운영하는 우메다 모리오 씨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기업들이 야쿠자와의 관계를 끊기 위해 자문 요청을 해오고 있다”며 “나는 그들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경찰에 신고할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최근 일본의 가장 큰 도급 업체 중 하나인 다케나카의 건설 현장에서 총성이 울렸다. 올 들어 도쿄의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4번째 총기 관련 사고였다. 비록 사상자는 없었지만 일본 전역이 떠들썩했다.

일본에서는 일반인들이 총기를 소지할 수 없기 때문에 이번 사건 역시 건설 업체에 불만을 품은 야쿠자들의 소행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공격이 야쿠자들의 절망 표시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야마구치파의 법률 자문가였던 유키오 야마노우치 변호사는 “야쿠자들은 이제 어디에서 먹고살아야 할지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완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tw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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