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구의 뉴스 & 뷰] 제조업의 중요성 일깨운 아일랜드 사태

‘켈트의 호랑이’로 불리던 아일랜드가 끝내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처지로 전락했다. 지원 규모는 대략 850억 유로 정도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EU 회원국이 구제금융을 수혈 받는 것은 그리스에 이어 두 번째다.

강소국(强小國)의 대명사로 꼽히던 아일랜드가 이런 상황에 빠진 것은 충격적이다. 고성장에 취해 거품을 보지 못한 탓이다. 이 나라는 농업을 주업으로 하는 유럽의 변방국이었지만 1990년대 이후 법인세율을 세계 최저 수준으로 인하하고 규제를 과감히 철폐하는 등의 방법으로 외국자본을 끌어들여 불과 20년 만에 유럽 최고의 부국으로 성장했다.

<YONHAP PHOTO-0731> Ireland's Prime Minister Brian Cowen leaves the European Council building after a Euro Zone leaders summit in Brussels, May 8, 2010. Greek lawmakers approved the government's 30 billion euro ($40 billion) austerity bill in parliament yesterday, paving the way for a record bailout from the European Union and International Monetary Fund. REUTERS/Thierry Roge (BELGIUM - Tags: POLITICS BUSINESS)/2010-05-08 09:02:12/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더욱이 금융 산업이 경제성장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하면서 연평균 7%에 달하는 성장률을 기록하고 1인당 국민소득이 한때 5만 달러를 넘어서기도 하는 등 호황을 구가했다.

하지만 지난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을 계기로 야기된 글로벌 금융 위기와 함께 상황이 급변했다. 1997년 이후 네 배나 뛰었던 부동산 가격이 폭락세로 돌아서자 성장률이 뒷걸음질 치고 은행들도 부실채권에 시름하게 됐다.

이 때문에 정부가 은행을 국유화하거나 공적자금을 투입한 결과 국가재정까지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 적자 비율이 32%에 달해 재정 위기를 겪고 있는 다른 PIGS(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 국가들에 비해서도 2~3배에 이른다.

아일랜드가 위기에 처한 또 하나의 중요한 원인은 경제성장을 지나치게 외국자본과 금융 산업에 의존했다는 데 있다. 나라 경제를 튼튼히 떠받쳐 줄 수 있는 제조업 기반이 너무 취약했다는 이야기다. 외국자본에 힘입어 성장한 금융 산업은 그만큼 무너지기도 쉽다. 자본이 언제든 빠져나갈 수 있는 까닭이다. 이는 아이슬란드나 두바이처럼 금융 입국을 내세웠다가 몰락한 다른 나라들의 예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제조업 기반이 충실한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가 상대적으로 훨씬 양호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데서도 그런 점은 충분히 뒷받침된다. 한국·중국·인도 등 아시아 국가들은 최근에도 연간 성장률이 5~10% 선에 이르러 평균 1% 안팎에 그치는 유럽국들과 차원을 달리한다. 대부분의 국가가 이미 금융 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한 상태다.

IMF를 비롯한 국제기구들은 내년에도 아시아 지역이 가장 높은 성장세를 나타낼 것이라는데 이견을 보이지 않는다. 기업들 또한 빼어난 실적을 과시하고 있다. 사상 최대 실적을 이어가고 있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만 봐도 이런 점은 한눈에 파악된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계기로 상황 급변

아시아 국가들이 제조업 육성을 무엇보다 중요시하고 경제성장 또한 제조업을 통해 이뤄왔음은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다. 실제 아시아 지역은 경공업에서부터 첨단산업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제조업이 존재하는 지구촌 생산 기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자동차·조선·반도체·기계·섬유 등을 막론하고 웬만한 제조업 분야라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고 있는 게 바로 한국·일본 같은 아시아 국가들이다. 세계의 중심이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바로 제조업 덕분이라는 것이다.

제조업은 한때 금융 산업에 눌려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던 게 사실이다. 금융자본이 파생상품 등 복잡한 기법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창출한 반면 제조업은 그렇지 못했던 탓이다. 이 때문에 제조업은 금융자본이 기업을 통째로 인수·합병(M&A) 대상으로 삼거나 주식을 사고팔며 수익을 극대화하는 수단 정도로 취급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구제금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로 전락한 아일랜드 사태를 통해 제조업이야말로 경제의 근간이요, 국가경쟁력의 원천이라는 것이 다시 한 번 입증됐다. 제조업의 중요성을 되새기면서 주력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한층 힘을 쏟아야 할 일이다.

이봉구 한국경제 수석논설위원 bk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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