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인터뷰] “딥 체인지로 리딩 뱅크 자존심 회복”

10년 후 한국의 1등 기업 CEO를 만나다 ⑥ - 은행

민병덕 KB국민은행 행장

금융권이 또 한 번 요동치고 있다. 업계 4위 하나금융이 인수·합병(M&A) 시장의 대어인 외환은행을 낚아채면서 한바탕 지각변동이 불가피해졌다. 또 다른 변수인 우리금융도 인수 경쟁의 막이 올랐다.

2001년 이후 지난 10년 동안 줄곧 선두 자리를 지켜온 국민은행으로서도 긴장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더욱이 외환은행은 인수 직전까지 갔다 무산된 경험이 있어 아쉬움이 더욱 크다.

하지만 국민은행은 새로운 도약을 자신한다. 글로벌 금융 위기 등 온갖 어려움을 이겨낸 리딩 뱅크의 저력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수년간 발목을 잡은 지배구조 이슈와 경영진의 리더십 문제도 깔끔하게 털어냈다.

조직 재정비를 위해 대규모 희망 퇴직 등 굵직한 현안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었다. 지난 7월 국민은행의 새로운 사령탑에 오른 민병덕(56) 행장은 ‘딥 체인지 경영’을 선언하며 영업력 강화를 제1 목표로 내걸었다.

민 행장은 20~30분만 만나면 누구나 친구가 된다는 국민은행 최고의 영업맨이다. 그는 “국내 금융시장은 성숙 단계를 지나 과열 경쟁 상황”이라며 “해외시장 개척은 필수”라고 말했다. 민 행장은 “성장 잠재력이 풍부한 신흥 시장을 주요 진출 지역으로 선정해 관심 있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M&A 등 금융권의 지각변동이 가시화하고 있습니다. 대응 방안은 마련하고 있는지요.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로 금융권의 판도 변화가 예상됩니다.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이 합병하면 단숨에 은행권 2~3위로 뛰어올라요. 지점 수도 1000여 개에 달하게 돼 대형 은행을 중심으로 영업 경쟁이 한층 심화될 것으로 예측됩니다.

현재 국민은행이 구체적으로 M&A를 추진하고 있는 것은 없어요. 다만 한국의 리딩 뱅크라는 자존심을 지키고 한국 은행 산업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모색해 나갈 것이라는 점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지요.

지난 7월 취임하셨는데, 올해 성과는 어떻습니까.

지난 4개월 동안 은행의 변화와 혁신을 위해 쉼 없이 달려왔지요. 올해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어요. 연초 진행된 금융감독원의 감사와 지배구조 변경 등으로 영업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고, 부동산과 건설, 조선 업종의 구조조정에 따른 선제적인 충당금 적립으로 좋은 실적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에요.

게다가 최근 실시한 희망 퇴직에 따른 일시적인 인건비 증가도 부담 요인이지요. 하지만 이는 은행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였어요. 이제는 영업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됐어요. 내년부터는 구체적으로 경영 성과가 나올 겁니다.

국민은행이 침체기에 빠져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은데요.

최근 2~3년 경영 실적이 악화된 것은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위축된 경제 상황의 영향이 컸지요.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기업금융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 뒤늦게 성장 전략을 실행했지만 글로벌 금융 위기와 교차되는 불운을 겪어 충당금 부담이 늘어났어요.

2008년 금융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거버넌스 이슈와 이에 따른 경영진의 리더십 약화도 발목을 잡았어요. 이제는 과거의 성공 방식과 관행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야 해요. 은행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딥 체인지 경영’을 내건 것은 이 때문이죠.

그동안 지향해 온 성장 패러다임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십니까.

국민은행은 리테일 부문에서 국내 최고은행의 위상을 계속 강화해 왔지요. 하지만 과거의 성장을 보장해 온 리테일 부문은 이제 성숙기에 들어섰어요. 더 이상 장기적인 성장과 발전을 보장해 주지 못합니다.

다양한 고객 니즈와 정보 접근성, 은행 간 경쟁 격화로 수익 창출력이 갈수록 떨어져 새로운 성장 기회를 찾아야 해요. 이제까지 다소 부족했던 홀세일과 외환 분야의 역량을 강화해 새로운 미래 성장 동력으로 키워 나갈 겁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대형 금융사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있습니다. 신규 은행 재정 건전성 규제(바젤Ⅲ)나 대형 금융회사(SIFI) 규제의 영향은 없습니까.

국내 은행은 보통주 자본 비중이 상당히 높은 수준입니다. 레버리지 비율도 규제 기준인 3%를 웃돌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금융 규제가 도입되더라도 큰 영향은 없을 겁니다. 다만 유동성 비율은 대부분의 은행들이 규제 기준인 100%를 총족시키지 못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행 시기가 2015년 이후인 만큼 충분한 준비 시간이 있고 세부 기준도 완화될 가능성이 높아요. SIFI에 대한 금융 규제 강화는 글로벌 영업망을 가진 다국적 금융회사의 부실과 도산에 따른 시스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것입니다.

국내 은행은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의 SIFI 규제에 포함될 가능성이 매우 낮아요. 이 때문에 해외시장을 확대하려는 은행들에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지요.

국민은행의 강점과 약점을 어떻게 보십니까.

국민은행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점포 네트워크를 갖고 있습니다. 고객이 이용하기에 매우 편리하지요. 국가 고객 만족도 평가에서 4년 연속 은행 부문 1위를 차지한 것처럼 고객들의 사랑도 받고 있어요.

또한 온라인 금융 서비스도 최고 수준이에요. 은행권에서 가장 높은 신용 등급을 받은 안전한 은행이기도 합니다. 10년을 주기로 리딩 뱅크가 바뀌어 온 국내 금융시장에서 역사상 최초로 10년 이상 1위 자리를 지켜올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지요. 경쟁 은행에 견줘 상대적으로 약한 홀세일과 외환 부문의 강화는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취임 후 새로운 점포 전략을 내놓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급변하는 고객 수요를 충족시키자면 고객 가치 지향형 채널로의 변화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개인과 기업금융점으로 분리해 운영하던 영업점을 내년 1월부터 전면 통합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원스톱 뱅킹 서비스가 가능해집니다.

고객이 밀집돼 있고 새로운 금융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지역에는 적극적으로 소형 특화 점포를 열 거예요. 미래 고객 발굴을 위한 유스(Youth)형 점포도 새롭게 선보일 겁니다.

대출 시장은 이미 성숙기에 진입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대출 경쟁이 치열해지면 금융 소비자는 오히려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더 나은 서비스를 요구할 수 있게 됩니다. 국민은행은 고객의 수요를 잘 반영해 고객에게 선택받을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상품과 차별화된 서비스로 시장의 리더십을 확고하게 발휘하려고 합니다.

이와 함께 레드오션에서의 경쟁을 탈피해 틈새시장을 적극 개척해 나가려고 해요. 투자은행(IB)과 외환 부문의 경쟁력을 강화해 국내외 대출 시장에서 선도 은행으로서의 제 역할을 해 나갈 겁니다.

카드 부문의 분사가 추진 중입니다. 수익성 저하 우려는 없습니까.

카드 분사는 금융그룹의 비은행 부문 사업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기 위한 것입니다. 현재 금융그룹 전체로 보면 은행 부문으로의 쏠림 현상이 매우 심하죠. 이번 분사를 통해 금융그룹 내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안정적인 수익 창출 기반을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전업계 카드사들의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경쟁이 심해지고 있다는 것도 한 이유죠. 앞으로 카드 시장에서 그룹 네트워크를 활용한 차별화된 마케팅을 펼 수 있게 됩니다.

해외시장 전략은 무엇입니까.

국내 금융시장은 성숙 단계를 지나 과열 경쟁이 지속되고 있어요. 이제 성장의 한계에 부닥친 국내시장을 넘어 해외에 진출하는 것이 필수죠. 그동안 국내 금융권의 해외 진출은 주로 해외 진출 기업이나 교포 관련 비즈니스에 치중해 성장에 한계가 있고 과당경쟁이 벌어질 소지도 있어요.

이제는 철저한 현지화가 필요하죠. 성장 잠재력이 풍부한 이머징 마켓을 주요 진출 지역으로 선정해 놓고 있어요. 기존 선진 시장 중에서도 승산이 있다고 판단되는 지역은 선별적으로 진출을 추진할 겁니다.

약력 : 1954년 충남 천안 출생. 1981년 동국대 경영학과 졸업. 2005년 국민은행 영동지점장. 2007년 국민은행 경서지역본부장. 2008년 국민은행 남부영업지원본부장. 2008년 국민은행 개인영업그룹 부행장. 2010년 국민은행 행장(현).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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