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자율과 정부 개입 사이

경제부처 24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동시에 택하고 있는 나라의 정부는 괴롭다.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저마다의 몫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만 시장경제는 불가피하게 승자와 패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갈라놓는다.

경제적 평등을 달성하려고 하면 시장경제 원리를 거스른다는 비판을 받기 십상이고 시장의 부작용이 나타날 때는 정부는 뭐하고 있느냐는 질타가 쏟아진다.

정부가 추진 중인 물가 안정 대책도 비슷한 처지에 놓였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가격 중점 감시 품목’ 78개를 발표했다. 일상생활에서 이용 빈도가 높은 생활 물가 52개 품목에 국내외 가격 차가 크다는 지적을 받아 온 48개 품목이 추가됐고 중복되는 품목을 제외하면 78개가 된다.

이들 품목에 대해서는 가격 및 수급 동향을 상시적으로 점검해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 적절한 수급 정책을 통해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다. 또 48개 품목에 대해서는 국내외 가격 차를 공개해 가격 안정을 유도하기로 했다.

정부가 생필품 가격 중점 감시와 국내외 가격 차 공개를 물가 안정 대책으로 내놓은 것은 시장경제라는 원칙과 정부 개입의 필요성 사이에서 나름의 고민을 한 결과다.

그러나 이런 방안 역시 시장경제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같은 물건이더라도 시장 참가자들과 시장 주변의 여건이 다르면 가격 차이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데 국내외 가격 차 공개 방침은 이를 무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 생필품 가격 중점 감시

정부는 시장 원리를 중시하는 측으로부터 시장에 지나치게 개입한다는 비판을 종종 받지만 정부도 할 말은 있다. 엄밀히 말하면 시장경제 체제라고 하더라도 정부의 개입이나 규제가 전혀 없는 완전 자유 시장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어느 나라에서든 자동차를 팔기 위해서는 일정한 안전 기준과 환경 관련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런 기준에 미달한 자동차는 합법적으로 판매할 수 없다. 자유 시장을 옹호하는 쪽에서 보면 안전 기준과 환경 관련 규제는 자유로운 경쟁을 가로막는 정부의 부당한 개입일 수 있다. 하지만 자동차의 안전과 환경 관련 규제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한국에서는 정부의 적절한 개입이 필요한 시장으로 외환시장을 빼놓을 수 없다. 신현송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기간에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G20이 합의한 펀더멘털(경제 기초)을 반영한 환율이 정부의 시장 개입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시장에만 맡겨 놓으면 외환 거래를 통해 투기적 차익을 내려는 세력들 때문에 환율이 펀더멘털과 괴리될 수 있으며 시장이 무질서하게 움직이면 당국이 들어가서 제어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복지 정책도 마찬가지다. 복지 정책은 그 자체로 반시장적 조치다. 시장에서 한 차례 소득분배가 이뤄진 것을 재조정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복지 정책에 대한 요구는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최근 인사에서 복지 정책 관련 부서로 옮긴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경제성장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분배가 이뤄져 복지 정책의 필요성이 크지 않았지만 지금은 성장이 분배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며 “성장에만 초점을 맞춘 정책으로는 부족하며 분배를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해서 시장 흐름에 역행한 정부의 조치가 지속성을 갖기는 어렵다. 정부가 어떤 품목의 가격을 인위적으로 낮추면 일시적으로는 가격이 하락할지 몰라도 공급이 줄어 궁극적으로는 가격이 더 오를 수 있다.

복지 정책에 필요한 재원 마련을 위해 세율을 대폭 올린다면 가처분소득이 줄어 소비가 위축될 수 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정부가 참 많은 일을 하는 동시에 영리하게 일할 것을 요구한다.

유승호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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