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기업 ‘빅뱅’ 막 오르다] 홈쇼핑서 ‘대박’…‘미용 시장’ 새로 진출
입력 2010-10-20 11:01:36
수정 2010-10-20 11:01:36
성공 사례-경희대 한방재료가공
경희대 국제캠퍼스(용인)에서 학교기업 ‘한방재료가공 학교기업(한방재료가공)’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과거 오가피 밭이었던 곳에 생산 시설을 세웠기 때문에 교문을 지나 한참 들어간 뒤에도 샛길을 따라 숲속을 들어가야 임시건물 두 동이 나왔다.한 채는 생산 시설, 한 채는 연구 시설과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었다. 식품을 다루기 때문에 실내용 슬리퍼를 갈아 신어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한방재료가공은 한약재 추출 건강식품 및 미용 제품을 생산·판매하고 있다. 2007년 매출 60억 원에 이를 정도로 큰 규모다. 원가 매출은 이 정도지만 제품이 최종 판매되는 소비자가격으로 따지면 170억 원에 달한다. 한방재료가공 조택연 영업마케팅부장은 “중소기업으로 100억 원대 매출이면 적은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한방재료가공은 한약재를 활용한 건강보조식품을 제조·판매하는 곳으로 △식품제조가공업 △건강기능식품유통전문판매업 △건강기능식품전문제조업 △통신판매업 △부가통신사업으로 사업 분야를 등록했다.
드라마틱한 성장 스토리
대표 브랜드 ‘경희보감’을 비롯해 ‘경희대학교’, ‘경희한방’ 등의 브랜드를 사용하고 있다. 어린이용 영양제에는 특별히 ‘경희궁’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가장 잘나가는 엔트리 제품은 ‘경희대학교 홍삼녹용대보진액’으로 십전대보탕에 홍삼과 녹용을 추가한 제품이다. 추출액 외에 정제도 만들고 있고, 샴푸·비누·마스크팩 등 미용 제품까지 제품을 다양화하고 있다.
한방재료가공은 드라마틱한 성장 스토리를 갖고 있다. 처음 시작은 경희대 수원 농장에서 재배하던 한약재를 추출해 판매하면서부터다. 당시 한약재를 경동시장 등에 팔았는데 제값을 받지 못하자 건강식품으로 완제품을 만들어 팔아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당시 시제품을 시식한 조정원 전 총장은 “실험실에서 만들었나? 시중에 판매할 수 없을까”라며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한방재료학과에는 시설을 확충할만한 자금이 없었다. 결국 학교 차원에서 1억8000만 원의 지원금을 대면서 본격적인 사업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주식회사 형태로 설립됐다. 그러나 2004년 교육인적자원부(현 교육기술과학부)가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학교 소유가 아닌 주식회사는 학교기업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다시 100% 학교 소유로 학교기업이 재설립됐다.
창립 때는 다섯 명의 직원이 고군분투하며 제품을 생산했다. 창업을 주도한 한방재료가공학과 김무성 전 교수와 공장장, 남자 직원 둘, 여자 직원 한 명이 모두 재료 추출과 포장 등에 나서야 했다. 1년 동안은 안정적인 매출을 위해 교내 판매에 주력했지만 기대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2005년 12월 한방재료가공은 매출 증대를 위해 모험을 결심한다. 현대홈쇼핑 방송에 내보내기로 한 것. 홈쇼핑은 위험 부담이 컸다. 1억7000만 원어치의 제품을 미리 확보해 놓아야 하는데 만약 팔리지 않으면 고스란히 재고로 남게 되는 것이다. 다행히 첫 방송에서 대박을 터뜨리면서 2006년 한 해 동안 170억 원(소비자가 기준)의 판매량을 올렸다. 김 교수는 이를 “드라마 같은 스토리”라고 표현했다.
당시 건강식품은 30포에 10만 원이 넘는 홍삼 위주의 고가 시장이 대세였다. 한방재료가공이 홈쇼핑에 들고 나온 ‘홍삼녹용대보진’의 가격은 120포에 12만8000원이었다. 조택연 부장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좋은 제품을 저렴하게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메리트가 있었고 우리 제품 외에는 시장에 그런 제품이 없었고, 또 경희대 브랜드의 신뢰도도 작용했다”고 비결을 설명했다.
사업 주체가 학교 본부이기 때문에 이익금은 모두 교비 회계로 잡혔다. 그해 이익금 중 1억 원을 장학금으로 사용했다. 2007년에는 미국 수출을 시작으로 캐나다까지 시장을 확대했다. 2007년 수출액은 3억 원에 이른다.
마케팅 전공 경영학 교수를 대표로 영입
그러나 한방재료가공의 성공은 동시에 다수 경쟁자들의 출현을 불러왔다. 수많은 업체들이 뛰어들면서 시장이 혼탁해져 한방재료가공의 매출이 오히려 하락세에 접어든 것이다. 한방재료가공은 어려운 시장 환경을 제품의 다양화와 판매처의 다양화로 돌파하기로 했다.
2008년에는 한방 재료를 활용한 샴푸·비누·마스크팩의 미용 제품을 개발했다. 당시 대표이사이자 한의사였던 이태후 교수는 자신의 전문 분야인 모발 연구를 바탕으로 샴푸 등을 만든 것이다.
안정적인 매출을 기대하기 어려운 홈쇼핑 판매 위주에서 벗어나 오프라인 판매 확대에 힘썼다. 2009년에는 전시 판매점 3곳을 용인 죽전·부천 오정·대구 수성에 냈다. 롯데마트·메가마트(부산) 등 대형 마트와 롯데백화점 등의 백화점에 입점했다.
한방재료가공은 학교기업이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야를 “영업·마케팅 등의 판매 노하우”라고 꼽았다. 기존의 연구·개발 능력을 이용해 제품으로 만드는 것까지는 무난하게 하지만 ‘장사꾼’이 아닌 ‘학자’들이 이를 시장에 내다 판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창업 공신인 김무성 전 교수도 “만들기는 했는데 어디다 어떻게 팔아야 할지 막막했다”며 창업 당시를 회상했다.
개발·제조 능력을 충분히 갖춘 한방재료가공은 올해 6월 이례적으로 한방 관련 전공자가 아닌 마케팅 전공의 경영학과 교수를 대표이사로 맞았다. 품질은 자신 있으니 이제는 판매에 주력하겠다는 의도다.
인터뷰 박찬욱 한방재료가공 대표
“적정한 가격대 정하는 것 어려워”
교육과학기술부가 지원 대상으로 하는 학교기업은 주체를 학교로 하고 있기 때문에 서류상의 대표는 총장이 맡고 있다. 그러나 총장이 학교기업 실무까지 직접 챙기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실질적인 최고경영자를 두고 있다.
박찬욱 한방재료가공 대표는 경희대 출신으로 제일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를 거쳐 미국 유학 후 1995년 경희대에 부임해 마케팅을 강의하고 있다. 지난 6월 한방재료가공 대표를 맡았다.
학교기업 경영에서 어려운 부분은 무엇입니까.
마케팅입니다. 마케팅 담당 교수인 제가 온 것도 마케팅을 강화하기 위한 것입니다. 2007년까지는 판매를 외부 총판이 모두 담당했습니다. 당시 홍보나 디자인도 미흡했습니다.
제품만 잘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2007년 이후부터는 판매 채널을 다양화하고 브랜드를 구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작업에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부분은 무엇인지요.
유통 가격 구조가 가장 어렵습니다. 소비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가격대와 품질 수준, 그리고 마진을 남길 수 있는 가격과 판매량 등을 정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려면 시장조사가 선행돼야 하는데, 일단 만들어 놓고 ‘어디다 팔지’라고 고민합니다.
마케팅을 강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인지요.
전북대가 이런 것을 잘하고 있습니다. ‘전북대햄’은 마케팅 본부장이 풀무원 출신입니다. 전문성이 있는 사람이 와서 마케팅·유통을 해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기업 조직과 달리 학교 조직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 궁합이 잘 맞을지 궁금합니다.
학교 본부가 이해를 갖고 학교기업 육성을 지원해야 활성화가 잘될 겁니다. 학교는 교육적 부분·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반면 기업은 매출·성과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너무 판매에 열을 올리면 교수들이 ‘우리가 장사꾼이냐’고 반발하기도 합니다. 학교와 기업 사이에서 어디에 비중을 두느냐인데, 과거에는 ‘학교’에 비중을 두었다면 요즘은 조금 ‘기업’에 가까워졌습니다.
우종국 기자 xyz@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