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전문가 10인 대예측
전셋값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경기 침체로 주택 가격 상승 기대감이 사라지면서 주택 구입 능력이 있는 사람들도 오른 전세에 눌러앉는 경우가 많아졌고, 가을 이사철을 맞은 새로운 전세 수요자들은 물건 자체가 없어 발을 구르는 형국이다. 전셋값 상승 기조가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지 전문가들의 전망을 들어보고 현장 르포를 통해 시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한다.경기도 고양시 일산동에 살고 있는 정재필(36·가명) 씨. 얼마 전 그는 심각한 고민 끝에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의 76㎡ 아파트 전세 재계약을 포기하고 경기도 일산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정 씨는 결혼 후는 물론 전에도 서울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서울 토박이다. 그런 그가 36년 만에 ‘특별시민’ 자리를 내놓은 건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전셋값 때문이었다.
집주인은 2년 전 1억5000만 원이었던 전세 보증금에 3000만 원을 더해 1억8000만 원을 요구했다. 정 씨 부부는 고민 끝에 서울을 떠나기로 했다. 딸아이도 아직 네 살밖에 안 된 터였고 아내와 아이가 생활하기에는 일산이 더욱 쾌적한 환경이었다.
89㎡로 넓혔는데도 불구하고 전셋값은 1억 원이다. 훌쩍 오른 전셋값 때문에 억지로 떠나다시피 했지만 정 씨는 한 번 더 한숨을 돌려야 했다. 10월 초 이삿날보다 두 달 정도 미리 계약했는데, 당시(7월 말)보다 현재의 인근 시세가 1500만~2000만 원 정도 올라 있었던 것. 발품을 미리 팔지 않았더라면 생돈 2000만 원을 고스란히 더 부담했을 터였다.
집 사느니 전세 눌러앉아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전셋값으로 ‘전세대란’이 올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커지고 있다. 정 씨의 사연처럼 보증금이 싼 곳을 찾아 이사라도 가는 건 운이 좋은 케이스. 싼 곳으로 옮기려고 해도 물건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게 최근의 현상이다.
어떤 재화나 서비스든 수요가 공급을 넘어서면 가격이 오르는 것이 정석이다. 최근의 전셋값 상승도 마찬가지다. 8·29 부동산 활성화 대책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시장은 극심한 침체기를 겪고 있다. 자산 가치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면서 집을 살 여력이 있는 사람들조차 전세로 눌러앉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는 게 시장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늘어난 전세 수요에 비해 공급도 줄고 있다. 집값 하락과 거래 활성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모양새를 띠고 있는 정부 정책은 다주택자들의 주택 구입을 미루게 했고, 이는 자연히 전세 물량 부족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오피스텔 등 수익형 부동산 투자 붐, 본격적인 이사·결혼 시즌 등 계절적 요인도 전셋값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올 들어 나타나고 있는 전셋값 상승세가 더욱 심각한 이유는 매매가와 전셋값이 탈동조화되는 ‘디커플링(Decoupling)’ 현상 때문이다. 부동산 경기가 안정적일 때는 전셋값 상승이 매매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런 공식은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부동산 가치 하락으로 깨졌다.
국민은행 조사에 따르면 올 1월 말 서울 지역의 ‘매매가격 대비 전셋값 비중(전세 비중)’이 40.7%였던 것에 비해 8월 말에는 42.6%까지 늘어났다. 인천과 경기 등 수도권도 비슷한 상승세를 기록했다. 일부 지역에선 전세 비중이 70%에 육박하는 곳까지 나왔다. 집값이 떨어질 것을 염려해 매매가 이뤄지지 않고 전세 수요만 급증하는 결과는 결국 실수요자인 서민의 부담으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한편 최근 전셋값 상승 움직임이 걱정할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전셋값이 오르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난해와 상승 폭을 비교해 보면 3분의 1 수준이라는 것. 9월 30일 국토해양부와 국민은행의 주택 가격 동향 조사에 따르면 가을 이사철인 8월부터 최근까지 7주간의 아파트 전셋값 상승률은 서울이 0.8%, 수도권 0.9%였다. 작년 같은 기간 서울 3.4%, 수도권 3.0%와 비교해 보면 훨씬 낮은 수치다. 최근 5년간(2005~2009년) 수치와 비교해도 0.5~0.6% 정도 낮은 상승 폭이다.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