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갭 투자 전세 사기, 공적 보증 기관도 피해자

전세 보증금 반환보증보험 가입했어도
집주인이 떼먹은 보증금을 세금으로 갚아주는 격

[법으로 읽는 부동산]


서울의 한 빌라 밀집 지역. /한국경제신문



의뢰인의 처음 질문은 전혀 심각하지 않았다. 수도권 빌라에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고 잔금을 지급한 지 불과 며칠 만에 집주인이 변경됐는데 변경된 집주인과 새로운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할 필요가 있는지 상담하는 아주 단순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질문을 듣는 순간 ‘갭 투자 전세 사기’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구체적인 사안을 확인한 결과 거래된 매매 대금이 임대차 보증금 액수와 동일하고 건물주 변경 사실을 보증금 대출 은행에 비밀로 해 달라고 요청하는 등 전세 사기의 전형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갭 투자 전세 사기의 대략적인 구조는 다음과 같다. 예를 들어 한 채를 2억원에 분양(매매)하는 주택은 분양 방법으로는 처분하기 어렵지만 임대차 계약 방법으로는 충분히 처분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해 분양업자와 중개업자 등이 전세 사기를 설계한다. 분양과 달리 임대차 계약은 임대차 계약 기간 만료 후 받은 보증금을 다시 반환해야 하는 의무가 있을 수 있어 보증금 반환의 연결 고리를 끊어 낼 수 있는 방법이 핵심인데, 들러리 집주인을 끌어들여 사기에 참여시킨다. 임대차 계약을 할 때는 번듯한 사업자 이름으로 소유 명의가 있다가 임대차 계약이 되면 들러리 앞으로 소유 명의가 넘어가면서 이를 통해 기존 분양업자는 임차인에 대한 보증금 반환 채무를 합법적으로 면제받게 된다.

사기 확산에 공적 보증 기관 손해도 ‘눈덩이’
의뢰인은 현재 집 시세가 보증금 액수와 동일하다면 향후 임대차 목적물인 빌라가 경매에 처해지면 보증금 전액 배당 가능성이 낮아 보증금의 10~20% 정도 손해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됐다. 의뢰인으로서는 정말 운이 없지만 손해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임대차 계약을 즉시 해지하고 기존 임대인을 상대로 보증금 반환 청구를 하는 것이 최선일 수 있다. 임차인 보호를 위해 당연 승계에 대한 임차인의 이의 제기가 예외적으로 허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구 주택임대차보호법(2013. 8. 13. 법률 제12043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3조 제1항에 따라 대항력을 갖춘 임차인이 있는 경우 같은 조 제3항에 따라 임차 주택의 양수인은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한 것으로 본다. 그 결과 임차 주택의 양수인은 임대차 보증금 반환 채무를 면책적으로 인수하고 양도인은 임대차 관계에서 탈퇴해 임차인에 대한 임대차 보증금 반환 채무를 면하게 된다.

하지만 임차 주택의 양수인에게 대항할 수 있는 임차권자라도 스스로 임대차 관계의 승계를 원하지 않을 때는 승계되는 임대차 관계의 구속을 면할 수 있다고 봐야 하므로 임대차 기간 만료 전에 임대인과 합의에 의해 임대차 계약을 해지하고 임대인에게 임대차 보증금을 반환받을 수 있다. 이 경우 “임차 주택의 양수인은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있기 때문이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조속히 임대차 계약을 해지해 변경된 건물주보다 자력이 나은 기존 임대인을 상대로 보증금 반환을 구하는 것이 가장 현명할 수 있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민사 재판이 아니더라도 형사 처분에 대한 부담을 주는 방법으로 자진해 반환받을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조언에도 불구하고 의뢰인은 임대차 계약을 해지하지 않고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은 이유가 갭 투자 사기를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이해했는데 오산이었다. 의뢰인이 가입해 둔 보증금 반환 보증보험 때문이었다. 우려했던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보증보험을 통해 보증금을 반환받을 수 있는데 굳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법적 분쟁을 할 필요가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최종 손해는 의뢰인에게 보험금을 지급한 보증보험 회사가 될 수 있지만 의뢰인이 그것까지 고려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이제 막 힘들게 이사했는데 분쟁을 통해 보증금을 돌려받는 것은 큰 부담이기도 하고 별다른 실익도 없기 때문이다.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결국 이런 구조에서 갭 투자 전세 사기는 근절되지 않고 독버섯처럼 계속 퍼져 가고 있고 공적 자금이 투자된 보증 기관의 손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최광석 로티스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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