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의 아버지] 외로운 길 갈수 있게 하는 힘


아버지는 이(2) 대 팔(8)의 세상 이치를 일찍부터 알고 계셨던 것 같다. 어떤 사회나 조직이든 정작 중추가 되어 일하는 인력은 소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아버지는 항상 이 소수에 속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또 일의 추진 여부나 방향을 결정할 때 열 사람 중 아홉 사람이 반대하고 한 사람이 찬성하더라도 자신이 옳고 바르다고 판단되면 두려움 없이 그 길을 갈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따라가는 사람보다 비록 실패하더라도 앞서 가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다. 그때는 어려서 그 말의 뜻을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런 길을 가기가 정말로 쉽지 않다는 것을 지금도 자주 느끼곤 한다.

이런 가르침에 더해 무슨 일을 하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적어도 50% 이상 자신에게 있다는 가르침은 내가 홀로 설 수 있는 생각을 형성하고 힘을 기를 수 있는 큰 배경이 되었다.

일의 결과를 남이나 사회 탓으로 돌리지 않고 자신의 잘잘못을 먼저 돌아보는 사고방식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의지를 형성하는 노력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사회나 남을 핑계 삼는 것은 스스로 비굴해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유년기에 나는 아주 가난하게 자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1950~60년대 한국의 1인당 소득은 100달러 전후로, 거의 모두가 절대 가난 속에서 보냈다.

절대 가난은 당시의 많은 지식인들과 이런 유년·청년 시절을 거친 많은 엘리트들로 하여금 좌파적 성향을 띠게 한 배경이 되었지만 스스로에게 책임을 돌리라는 가르침은 나로 하여금 그런 길로 접어드는 것을 효과적으로 차단했던 것 같다. 물론 가난에 대한 나의 둔한 감성이 일조한 바도 있지만.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길은 대중들이 그다지 환영하는 길이 아니다. 환영은커녕 자주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도 흔들림 없이 자유와 책임을 강조하는 자유주의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아버지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성장 배경이 커다란 뒷받침이 됐다고 생각한다.

동시대 대부분의 부모가 그랬듯이 아버지의 삶은 근검·절약이었다. 집안이 기울고 어머니가 병환으로 일찍 타계하신 환경에서도 7남매를 모두 대학 또는 고등학교를 마치도록 뒷바라지하신 강인한 생활력을 가진 분이셨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당연히 남의 도움을 받은 일도 많으셨으리라. 그리고 그 은혜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셨던 것 같다. 어려웠던 시절 7남매의 학비 조달에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고 계신다. 사람이 남의 도움을 받고 고마워할 줄 모른다면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향학열이 대단했던 분이셨다. 고향인 전남 해남군 산이면에 마땅한 소학교가 없어 산을 넘어 이웃 마산면의 간이소학교에 다니셨는데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산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사람 모습 같아 소스라치게 놀란 적도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때 인생에 아주 소중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상급 학교 진학의 꿈을 심어준 일본인 선생님을 만나신 것이다. 아버지(내 할아버지)를 일찍 여읜 아버지는 고향에서 함께 농사짓자는 어머니(내 할머니)의 권유를 뿌리치고 당시로서는 진학이 쉽지 않았던 강진농고를 졸업하신 후 평생을 농업협동조합에서 근무하셨는데, 그것은 모두 일본인 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이었다고 지금도 고마워하고 계신다.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생각은 그때부터 생긴 것 같다.

아버지는 이제 90세의 노인이 되셨다. 연로하신 때문에 거동이 불편해 요즈음에는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이 많다. 10여 년 전 일본인 선생님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꼭 한 번 찾아뵙기를 원하셨지만, 이제는 그 희망이 이뤄질 수 없게 됐다.

그 선생님은 이미 타계하셨고 아버지도 거동이 어렵기 때문이다. 세월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말을 더욱 실감하는 요즈음이다.


김영용 한국경제연구원장

서울공대 금속공학과 졸업. 고려대 경제학 석사.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경제학 박사.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 자유기업원 자문위원.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현). 한국경제연구원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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