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위안화 국제화 전진기지 부상
홍콩이 위안화 국제화의 전진기지로 부상하고 있다. 외국인이나 외국 기업이 해외에서 보유한 위안화를 운용할 센터로 홍콩이 육성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7월 19일 중국 인민은행이 홍콩의 중앙은행 격인 금융관리국과 위안화 청산 협의 개정안을 체결한 게 대표적이다. 이를 두고 홍콩 항셍은행은 “홍콩이 위안화 역외유통센터로 가기 위한 중요한 이정표”라고 평가했다.
위안화 역외유통센터는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만들기 위한 정지 작업이다. 위안화를 갖고 있어도 운용할 곳이 마땅치 않아 위안화 국제화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행보다.
특히 상하이가 위안화 역외유통센터 계획을 철회하면서 홍콩의 행보가 더 탄력을 받고 있다. 대만은 최근 중국과의 경제협력기본협정(ECFA) 체결을 계기로 위안화 역외유통센터를 만들기 위한 잰걸음을 시작했다.
중국이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만들려는 것은 달러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것이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미국의 무역 적자가 지속되면서 약달러에 따른 보유 외환의 가치 하락을 우려해 왔다.
위안화 무역 결제를 늘리는 등 위안화 국제화가 진전될수록 과도하게 달러 자산을 보유할 필요성이 줄어든다. 중국의 수출 업체들은 통화가치 변동에 따른 환리스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특히 최근 유로화 가치 하락으로 중국 수출 업체들이 많은 손실을 보고 있어 위안화 결제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 홍콩에서 위안화 펀드·보험 상품 허용 = 중국과 홍콩 간 이번 위안화 청산 협약으로 홍콩에서 보험과 펀드 등 위안화 표시 금융 상품 판매가 허용된다. 홍콩에서 투자자들이 위안화 예금계좌에 있는 위안화로 보험·펀드·파생상품 등 재테크 상품에 투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천더린 홍콩 금융관리국 총재는 “금융회사들이 다양한 위안화 표시 금융상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해 위안화 예금을 갖고 있는 투자자에게 더 많은 수익을 안겨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홍콩 내 은행에 개설된 위안화 예금 금리는 연 0.5%가 채 안 된다. 인민은행의 후샤오롄 부총재와 천더린 금융관리국 총재가 개정안에 서명한 이날 스탠다드차타드은행과 HSBC는 나란히 새 위안화 투자 상품을 내놓았다.
중국은 지난해 처음으로 해외 기업이 홍콩에서 위안화 표시 채권을 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등 위안화 표시 금융상품 시장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꾸준히 늘고 있는 위안화 예금의 운용 수단을 넓혀주겠다는 포석이다. 홍콩 내 위안화 예금은 이미 850억 위안(15조3000억 원)에 이른다.
홍콩에서는 또 이번 개정안 체결로 개인과 기업이 은행의 위안화 계좌를 통해 자금을 이체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특히 기업들은 은행에서 위안화를 사고팔 수 있는 환전 한도가 사라진다.
개인의 위안화 환전 한도는 현행 2만 위안이 그대로 유지된다. 항셍은행은 보고서에서 “이번 협약에서 진짜 획기적인 부분은 홍콩에 위안화가 유통되는 은행 간 시장을 만들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과의 무역 결제 등으로 확보한 위안화를 은행 간 시장을 통해 유통시킴으로써 단기 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중국으로선 위안화의 가치를 살필 수 있는 역외창구가 생긴다는 측면도 있다.
홍콩을 위안화 역외유통센터로 만들려는 움직임은 2004년 홍콩 내 은행에 위안화 예금과 환전 업무를 허용하면서 시작됐다. 이듬해인 2005년엔 유통·요식업·운수업 등 7개 업종의 기업들도 위안화 예금계좌를 개설할 수 있도록 했다.
2007년엔 중국 금융회사들이 홍콩에서 위안화 채권을 발행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어 지난해엔 HSBC 등 외국 금융사들도 홍콩에서 위안화 채권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했다.
올 2월엔 홍콩에 있는 금융 업종이 아닌 다른 업종의 중국 기업들에도 위안화 채권 발행이 허용됐다. 홍콩에서 지금까지 발행된 위안화 채권 잔액은 이미 380억 위안에 달한다. 이번 홍콩 내 위안화 규제 완화도 이 같은 흐름의 연장선상이다.
중국이 홍콩을 위안화 국제화 전진기지로 택한 것은 해외에서 가장 많이 위안화가 유통되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위안화 무역 결제는 작년 하반기 36억 위안에 불과했지만 올 들어 상반기 706억 위안으로 작년 하반기의 20배 수준으로 급증했다.
이 가운데 홍콩이 75%를 차지했다. 위안화 무역 결제는 지난해 7월 상하이와 광둥성 내 선전·광저우·주하이·둥관 등 총 5개 도시에서 홍콩과 마카오를 대상으로 시작됐다.
윈난성과 광시좡족자치구는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과의 위안화 무역 결제가 허용됐다. 중국은 이어 지난 6월 위안화 무역 결제가 가능한 지역을 20개 성과 시로, 대상 국가도 전 세계 모든 국가로 확대했다.
중국은 특히 위안화 운용 수단에 주식 투자도 추가할 예정이다. 상하이증권보는 조만간 홍콩에서 중국 증권사들이 만든 위안화 펀드를 통해 중국 내국인 전용 A주에도 투자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홍콩에 거주하는 등 일정 자격만 갖추면 외국인도 위안화로 중국 증시에 투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외국인이 중국 증시에 투자하려면 QFII(적격외국인기관투자가) 자격을 얻은 기관투자가의 중국 펀드에 투자해야 한다.
홍콩은 한발 더 나아가 홍콩 증시에 위안화 표시 주식을 상장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위안화를 갖고 있는 외국인 입장에선 중국은 물론 홍콩 증시에 동시 투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대만 위안화 역외유통센터 경쟁 가세 = 홍콩과 함께 대만도 위안화 역외유통센터를 향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샤오완창 대만 부총통(부통령)은 지난 6월 중국과의 ECFA 체결 직후 대만을 ‘위안화 역외금융센터’로 개발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그는 “대만 정부는 조만간 금융회사가 본토에서 원활하게 영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통화 결제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과 협상을 시작할 예정”이라며 “양안 간 통화 결제 메커니즘에 대한 협상이 타결되면 대만은 위안화 비즈니스를 위한 역외금융센터로 도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잉주 대만 총통(대통령)도 “ECFA 체결로 국내 금융업계가 가장 큰 혜택을 볼 것”이라며 “대만 내에서 위안화 업무를 볼 수 있게 됨에 따라 대규모 자본이 유입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중국 인민은행이 최근 중국은행(BOC)의 홍콩 지사인 BOC홍콩에 대만 은행을 대상으로 위안화 현금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권한을 부여한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BOC홍콩은 이미 중국으로부터 위안화를 공급받고 있으며 홍콩 은행들에 위안화 환전 및 송금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로써 BOC홍콩은 위안화를 대만 상업은행들의 홍콩 지사에 공급할 수 있게 됐다.
또한 홍콩 지사를 보유한 대만 은행들은 홍콩 지사를 통해 대만에 있는 다른 금융 업체에 위안화 현금 결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인민은행은 웹사이트 성명을 통해 “양안(兩岸: 중국과 대만)의 개인 간 교류를 촉진하고 양안의 현금 결제 메커니즘이 점진적으로 수립되도록 도울 것이며 양안의 통화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안 ECFA 체결 등으로 대만 내 위안화 수요가 늘어나면서 인민은행이 대만 은행들과의 위안화 결제 보완책을 내놓은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동안 대만 은행들은 중국 본토 내 자체 자본계정을 가질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위안화 지폐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고, 주로 홍콩 내 HSBC와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지사 등을 통해 위안화를 매입해 왔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대만 은행들의 위안화 조달에 어려움이 줄어들 전망이다. 조지 초우 대만 중앙은행 부총재는 “BOC 홍콩지사를 통해 낮은 비용으로 위안화를 조달하는 것은 물론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게 됐다”고 기대했다.
반면 홍콩과 위안화 역외유통센터 경쟁을 벌였던 상하이는 이 계획을 철회하기로 하고 홍콩과 상호 보완을 통해 위안화 국제화를 가속화할 방침이라고 최근 밝혔다.
오광진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