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지자체 재정 ‘부실’…경제 회복 ‘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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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의 모라토리엄(지급유예) 선언이 돌출적인 사건으로 여겨졌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다. 우리 사회의 큰 현안 하나가 물 위로 갑자기 떠오른 것일 뿐이다.

물론 6·2 지방선거로 시정을 맡은 이재명 성남시장이 예고에 없던 기자회견으로 모라토리엄을 전격 선언했다는 것과 이를 중앙정부와 사전 협의 없이 독자적으로 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 시장의 발표를 놓고 그 배경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해석들이 많다. 국가권력이든, 지방정부의 행정권이든 정권 교체 상황과 연계하는 시각도 그중 하나다.

<YONHAP PHOTO-1724> A woman walks past a money changer in Budapest June 4, 2010. Hungary's forint gained one percent against the euro on Friday, recouping some of its losses on Thursday which were prompted by comments from a senior governing Fidesz party official that Hungary could fall into the same mire as Greece. REUTERS/Laszlo Balogh (HUNGARY - Tags: BUSINESS)/2010-06-04 17:41:36/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지난 6월 헝가리에서 벌어진 일은 이 문제와 관련해 시사점이 있다. 2010년 5월 집권한 중도 우파의 헝가리 새 정부는 출범 직후 “경제정책을 입안하기 전에 재정 실상을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며 이전 정부를 겨냥, 재정실태조사팀을 꾸렸다.

그러면서 “올해 정부의 재정적자가 과거 정부가 밝힌 국내총생산(GDP) 대비 4.0%가 아니라 7.5%로 확대될 수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정부 통계의 투명성에 대한 의혹 제기였다. 그즈음 집권 여당인 피데스(청년민주동맹)의 부총재도 나서 “헝가리가 그리스처럼 되는 상황을 피할 가능성은 매우 작다. 새 정부의 목표는 그와 같은 디폴트를 면하는 것”이라고 말해 계속 그런 분위기로 몰고 갔다.

여기까지는 그럴 만도 하다고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총리실 대변인이 “전 정권이 경제지표를 조작했다”며 직격탄을 날린 것이었다.

‘과거 정부를 단죄하겠다’, ‘최소한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겠다’, ‘이전 정권과는 다르다는 메시지를 던지겠다’는 것이었지만 정작 문제는 헝가리 밖에서 발생했다. 이전 정부의 투명성 문제는 헝가리의 통계 불신으로 비화됐다.

곧이어 헝가리의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으로 비쳐지면서 유럽 시장에 큰 파장이 일었다. 유로화 가치는 떨어졌고 유럽 각국의 주가도 곤두박질쳤다. PIIGS(포르투갈·이탈리아·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의 재정 위기가 문제되는 상황에서 헝가리의 국가재정 통계에 문제가 있다는 ‘고백’은 가뜩이나 취약한 유로권 시장에 불안감을 덧보태기에 알맞았다.

각 지자체, 재정 확보에 고심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 각국의 지방재정은 전반적으로 취약하다. 이 문제가 글로벌 경제의 회복에 의외로 큰 뇌관이 될 수 있다. 원인은 덩치에 버거운 일을 지방정부가 많이 벌였던 데 있다.

더 큰 원인은 정치적 포퓰리즘이 만연하는 데 있다는 게 중론이다. 성남시는 그나마 나을지 모른다. 돈이 없어 죄수들까지 조기에 석방하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해묵은 재정난이나 부채 규모가 지방정부 예산의 4배에까지 달하는 중국은 심각하다.

지방재정난이 중앙정부의 부담으로 연결되고, 이런 현상은 세계경제에 새로운 불안 요인이 된다는 경고를 접하면 다시 봐도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최근 잔여 형기 60일 미만의 수감자들을 석방한 것도 1인당 연간 4만5000달러에 달하는 수용 비용을 줄이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캘리포니아 주는 주정부 자산을 매각하고 청정 구역이라고 자랑해 왔던 태평양 해안의 석유 채굴권까지 팔기로 한데 이어 공무원들을 순차적으로 무급 휴가까지 보냄으로써 경비 절감에 나섰다. 카운티별로 경찰관들도 해고했다. 일리노이 주에서도 연방정부의 도움을 받고서야 9억 달러의 채권을 발행하게 됐다.

중국·일본·이탈리아·스페인 등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31개 지방정부 중 부채 비율이 60% 이내인 곳은 7곳에 불과하고 10곳은 100%를 넘는다.

성 아래 현 단위로 가면 부채비율이 400%를 넘어 사실상 파산 상태인 곳도 있다. 마구잡이로 개발과 투자에 나서면서 민간 은행의 돈을 무분별하게 빌려 쓴 결과다.

일본에서도 20곳 이상의 지자체가 파산 위기에 몰린 것으로 전해진다. 이탈리아 지자체는 350억 유로 규모의 파생상품에 투자했다가 재정 위기를 맞게 됐다.

지방정부의 부실은 국가 신용 등급과 연결될 수 있다. 이 점이 문제다. 지난 7월 초 무디스는 스페인 5개 지방정부의 신용 등급을 강등하면서 국가 신용의 강등 가능성을 내비쳤다.

스페인 지자체 중 5% 이상이 전기세·수도세·통신비도 내지 못할 정도다. 국내에서는 어느 지자체가, 어떤 방식으로 성남시의 뒤를 이을지 주목된다.

허원순 한국경제 국제부장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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