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ucation] 인기 학과 ‘늘리고’…기초학문 ‘합치고’

대학가에 부는 학제 개편 바람


“사랑하는 숙명 가족 여러분께. 이번 개편은 현행 19개 학부 6개 학과 구조를 15개 학부 31개 학과로 전환하고, 60명 이상의 전공 단위는 학부로 설치해 내부에 세부 전공을 두는 방식으로 추진되었습니다.

학제 개편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경상대학의 경우 더 나은 발전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논의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어려움과 불편함이 있더라도 숙명의 발전을 위한 개혁은 지속되어야 합니다.”

지난 4월 숙명여대 한영실 총장은 학교 홈페이지에 이와 같은 글을 올려 그동안 학제 개편 문제를 둘러싼 갈등과 대립을 일단락 지었다. 이전에 발표된 개혁안과는 일부 차이가 있었다. 학제 개편의 초안에는 현 경상대학을 경영학부와 경제학부로 나누고 각 학부 아래 세부 학부를 둘 계획이었다.

하지만 학제 개편안에 반대하는 경상대학 학생과 교수들의 반발이 드세자 한걸음 물러난 것. 2000명에 가까운 학생이 ‘학제 개편 반대 서명 운동’을 벌였으며 지난 4월에는 교수들이 동참하는 피켓 시위가 캠퍼스에서 매일 반복됐다.

학교 측은 학생과 교수가 참여하는 간담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했고 그 결과 애초 계획했던 대대적 개편을 일단 보류한 채 일부를 개편하는 절충안을 선택했다. 논란이 됐던 경상대학에 대해 한 총장은 “소비자경제학과를 분리하는 것 외에는 현 편제를 유지하겠다”고 발표했다.

개혁 방향은 학과제 아니면 통폐합

숙명여대뿐만 아니라 최근 여러 대학들이 학제 개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대학들마다 기존 학제로는 사회에서 원하는 인재를 양성하기 힘들고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고조돼 개혁의 칼을 뽑아들게 했다.

하지만 개혁이란 것이 늘 그렇지만 반대 세력의 발목 잡기가 만만치 않았고 대학들은 본래 계획대로 진행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학문 단위 재편을 마친 중앙대의 경우도 구조조정을 반대하는 학생이 한강철교와 교내 공사장 타워크레인에 올라가 시위를 하다가 퇴학 처분을 받기도 했다.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기초학문 말살, 학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개혁안 자체에 불만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일부는 주체가 되는 학생과 교수의 의견을 사전에 수렴하지 않은 채 효율성만을 앞세운 행정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기도 했다.

한국 대학들은 지난 1995년부터 학부제와 다전공제 도입 등 대학 교육 개혁을 강력히 추진해 왔다. 이때 도입된 학부제는 학문의 다양성을 수용해 경쟁력 있는 인력을 공급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지난 15년간 학부제는 학생들의 소속감 결여, 전공 기초 교육 약화, 교수와 학생의 소통 단절 등의 문제점이 지적됐다. 이에 따라 일부 대학들은 현재 학부제의 단점에 무게를 싣고 학과제로 회귀하는 한편, 다른 대학들은 기존 학부제를 뛰어넘는 보다 광역 단위의 학문 묶음을 시도하고 있다.

다시 학과제로 전환하는 대학들을 살펴보자. 연세대는 이미 문과대·이과대·사회과학대 등 주요 단과대를 학과제로 모집했고 건국대도 문과대와 이과대를 학과제로 개편했다. 한국외국어대도 자연과학대와 공과대를 학과제로 바꿔 신입생을 맞았다.

서울대도 2011학년도부터 학과제 모집을 단계적으로 도입할 계획이었지만 방침을 바꿔 기존 학부 단위 모집 방식을 고수하기로 했다.

반면 성균관대·중앙대·동국대·숙명여대 등은 성격이 비슷한 학과를 통폐합하며 학부제의 본래 취지를 더욱 확대하고 있다. 성균관대는 지난 5월 문과대·사회과학대·경제학부·자연과학부 등을 통합한 문리과대학의 신설 계획을 발표하고 현재 학내 구성원을 대상으로 의견 수렴을 진행하고 있다.

의과대·사범대·경영학부·약학부 등은 별도로 운영하고 나머지 주요 학부를 모두 묶은 문리과대학에 입학한 학생은 1~2년을 학부대학에서 기초교양과정 수업을 듣고 세부 전공을 선택할 수 있다.

성균관대 전략기획팀 성기호 과장은 “현재 각 학부 단위로 의견을 제출해 줄 것을 요청한 상태로 오는 연말이나 내년 2월께 확정안을 발표할 예정”이라며 “계획의 초안만 발표된 상태로 아직 구체화된 것은 없다”고 말해 학내에서 아직 민감한 사안임을 내비쳤다.

동국대도 비슷한 내용의 개혁안을 지난 6월 발표했다. 동국대는 지난 2007년부터 학과 편제 및 정원조정안을 발표했고 일부 학과의 폐지를 추진했었다. 하지만 학내 갈등만 부추긴 채 이렇다 할 결과 없이 수년간 끌어오다가 이번에 인문대와 이과대를 통합한 기초학문대학을 신설하기로 결정했다.

동국대가 발표한 개혁안에 따르면 2015년까지 어문·사학·철학 등 문과대학과 수학·물리·통계학 등 이과대학의 기초학문 전공을 통합해 기초학문대학을 신설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동국대의 기초학문대학 신입생들도 문·이과 구별 없이 자율 전공으로 기초 교양과목을 수강한 뒤 자신이 원하는 심화 전공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기존의 자유전공학부도 전공 선택 전에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경험을 쌓는다는 취지로 설립됐지만 결국엔 경영학이나 경제학 전공으로 지원자가 몰리는 폐단이 지적돼 왔다. 각 대학의 학제 개편을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신설되는 통합 학부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학제 개편, 비인기 학과의 구제안?

대학들마다 학문 단위 재조정을 놓고 진행하는 개혁의 방향은 각자 다르지만 개혁을 단행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이유를 안고 있다. 이른바 비인기 학과로 일컬어지는 기초학문의 위기와 경영대 등 취업에 유리한 인기 학과의 쏠림 현상이 점점 더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대 박상규 입학처장 겸 수학통계학부 교수는 “학교에 따라 융합하는 곳도 있고 분리하는 곳도 있어 상반된 것처럼 보이지만 개혁 방향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최근 청년 실업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대학도 사회적 압박을 받고 있다.

실제 청년 실업은 비인기 학과 출신에 많이 몰려 있어 학제 개편을 통한 경쟁력 강화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각한 취업난 속에서 경영학과 등 취업에 유리한 인기 학과를 광역의 학부 체제로 확대하려는 의지도 저변에 깔려 있다. 경상 관련 전공이 더 세분화되면 모집 인원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대는 학문 단위 구조조정안을 확정하면서 2011학년도부터 기존 경영학부에 경제학부·광고홍보학과·응용통계학과를 추가했고 국제물류학과와 글로벌지식경영학부를 신설했다.

한편 지난 2009년 1월 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으로 학생 모집 단위를 복수의 학과 또는 학부별로 한 의무 규정이 폐지된 것도 학제 개편의 배경이다.

1995년 학부제 시행 이후 대학 교육 개혁은 지속적으로 추진돼 왔다. 그러나 많은 교수와 학장들은 학부제를 중심으로 한 이제까지의 대학 교육은 오히려 기초학문 분야를 쇠퇴시키고 전공 교육의 질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말한다.

대학 개혁의 제2라운드를 맞은 현재 대학가는 갈등과 혼란을 감내하더라도 이번만큼은 시대적 요구에 따라 대학 경쟁력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 올린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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