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 이론 생활속 적용 가능 ‘입증’

일본 출판계에 부는 피터 드러커 열풍

올 한 해 일본 출판계가 예상치 못한 피터 드러커 열풍에 환호하고 있다. 올 초부터 피터 드러커의 저작 ‘매니지먼트(Management:경영)’를 소재로 한 소설이 큰 인기를 끌면서 상반기 중 판매된 드러커의 주요 저술들이 지난 수십 년간 누적 판매량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에서 ‘야구 더그아웃에 있는 드러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피터 드러커 관련 서적 판매가 급증하면서 일본 사회가 드러커 열풍에 휩싸였다”고 보도했다.

일본에서 드러커 열풍에 불을 붙인 것은 한 편의 청춘 코미디 소설 덕분이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의 저작 ‘매니지먼트’가 청춘 소설 ‘만약 고교 야구부의 여자 매니저가 드러커의 매니지먼트를 읽었다면’의 소재로 쓰이면서 폭발적 인기를 촉발한 것이다.

‘모시도라’란 약칭으로 더 잘 알려진 이 소설은 지난해 12월 출간 후 100만 부 이상 팔리며 일약 베스트셀러가 됐다. ‘모시(もし)’는 만약이란 뜻이며 ‘도라(ドラ)’는 드러커의 일본식 발음에서 앞부분을 따온 것이다. ‘매니지먼트’도 소설의 인기를 타고 지난 6월 초부터 일본 아마존에서 서적 판매 10위권에 꾸준히 들고 있다.

‘모시도라’는 한 여자고등학교에서 야구부를 이끌고 있는 가와시마 미나미란 학생이 서점에서 우연히 사온 드러커의 ‘매니지먼트’를 공부하면서 드러커의 경영 이론과 철학을 야구부 운영에 접목한다는 내용이다.

처음엔 드러커가 누군지조차 몰랐던 가와시마와 야구부 선수들은 “기업의 존재 이유는 고객이고, 기업의 목적은 시장을 창조하는 것”이라는 드러커의 명언을 통해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야구를 해야 하는지 사명감을 깨닫는 스토리로 구성돼 있다.

서점들도 필독서로 지정

이 소설의 작가인 이와사키 나쓰미는 원래 미대 출신의 방송 작가로 경영학엔 문외한이었다. 하지만 드러커를 접하면서 경영학의 새로운 매력에 빠지게 됐다고 일본 경제주간지 다이아몬드가 전했다.

이와사키는 “드러커를 처음 알게 된 건 온라인 게임을 하던 중 어떤 누리꾼이 ‘매니지먼트’의 문구를 자주 인용하는 것을 봤을 때였다”며 “경영학 이론이 생활 속 어디에든 적용될 수 있다는 걸 젊은 독자들에게 친근하게 전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단순히 책만 많이 팔린 게 아니라 이 책의 영향력은 사회 전반 구석구석까지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피터 드러커와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도쿄 하라주쿠의 기념품 판매점 여주인까지도 ‘모시도라’의 영향을 받아 드러커의 이론을 원용한 직원 미팅을 갖곤 한다”고 전했다.

실제 도쿄 시내에서 소규모 점포를 운영하고 있는 우에노 다케시 씨 같은 평범한 점주들마저 직원들에게 드러커의 책들을 필독서로 지정했을 정도로 대기업·중소기업 가릴 것 없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상반기에 팔린 ‘모시도라’의 절반 이상이 여성 구매자인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끌었다. 당초 여성보다 일반 샐러리맨을 대상으로 제작된 책인 만큼 의외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모시도라’의 인기에 힘입어 드러커의 원 저작들까지 동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실제 ‘모시도라’에 등장하는 드러커의 ‘매니지먼트’ 같은 경우 일본에서 1973년 출간된 이후 10만 권이 팔리는 데 26년이 걸렸지만 올 상반기에는 30만 권이 판매되는 기염을 토했다. 지난 40여 년간 판매량의 3배 이상이 6개월 내에 판매된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이처럼 드러커 관련 서적들이 일본 시장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가 “명확하고 측정 가능한 목표 제시를 강조하는 드러커의 경영 조언이 ‘감바레(파이팅)’로 대변되는 일본 문화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생전 일본에 큰 애정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진 드러커가 말년에 “일본 기업들이 조만간 한국이나 중국, 일본의 라이벌 기업들에 추월당할 것”이라며 “이 같은 상황을 피하기 위해선 잘할 수 있는 부분은 더욱 집중하고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됐다.

현재 곳곳에서 불안 조짐을 보이고 있는 일본 기업의 경쟁력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처방책으로 일본 사회가 경영 구루(guru) 드러커에게 기대고 있다는 것이다.

김동욱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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