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절묘한 은유, 통렬한 직유’ 매력적

‘이끼’

“뭐야, 이 더러운 기분은!” 윤태호 작가의 웹툰 ‘이끼’는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낯선 적의와 경계심에 맞닥뜨린 인간의 자기 보호 본능이 본격적으로 튀어나오는 그 순간, 그 장면부터 ‘이끼’는 예측 불가능했던 종결에 이르기까지 단 한순간도 네티즌들의 시선을 놓아준 적이 없다.

강우석 감독이 ‘이끼’에 매혹됐던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우선 여기에는 강펀치처럼 독자의 심장에 바로 꽂히는 직유가 있다. ‘이끼’의 배경인 작은 시골 마을에는 한국 사회 현대사의 가장 더러운 부분들이 뒤엉켜 있다.

베트남전, 부동산 투기, 수상쩍은 기도원, 집단 성폭행, 경찰과 검찰로 대표되는 공권력의 폭력. 현재의 한국 사회 구성원이라면 저마다 그 더러운 치부들 중 하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것이 우리다, 우리를 만들어 온 토대다’라며 우리 눈앞에 들이미는 더러운 거울 ‘이끼’는 그동안 선명한 대립 구도 속에서 정의에 가까운 쪽이 승리하고야 마는 단순명료한 구도를 선호했던 강우석 감독이라면 탐낼 수밖에 없는 아이템이었다. 그런 직유야말로 강우석 감독의 일관된 스타일이자 가장 강력한 장점이 아니었던가.

영화 ‘이끼’는 2시간 40분의 러닝타임 동안, 그동안 떠들썩했던 팬들의 우려와 불만을 잠재울 만한 깔끔한 집중력을 보여준다. 원작의 수많은 이야기들 중 일부는 과감하게 쳐내고 대신 캐릭터에 집중하며 사건들이 숨 가쁘게 진행된다.

그러나 원작의 냉혹한 하드보일드 감성보다는 좀더 대중적인 화법을 택한 강우석 감독의 시도는 절반의 성공과 실패를 나눠가진 듯 보인다. 원작 ‘이끼’에서는 직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권력과 인과응보, 나쁜 아버지의 영향력 등에 관한 절묘한 은유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그리고 그 은유야말로 ‘만화가 다 그렇지’라는 편견을 산산조각 내는 놀라운 힘을 발휘하며 거듭 재독하게 만들었던 핵심 요소였다.

영화 ‘이끼’에서는 이 사회를 아우르는 넓은 시선 대신, 어찌되었든 악을 처벌하려는 의지를 가진 쪽의 손을 가볍게 들어줌으로써 가상의 위안을 대리 체험하게 해 준다.

원작을 읽지 않은 다수의 관객에게는 충분히 즐길 만한 스릴과 짜릿함을 안겨주겠지만 원작의 열렬한 팬들 입장에서는 아쉬움을 감출 수 없는 대목이다.


더 레블-영웅의 피

1920년 프랑스 치하의 베트남. 프랑스는 베트남인 비밀경찰을 이용해 독립군 지도자 디칸을 체포하려고 한다.

그 와중에 뛰어난 무술 실력을 갖춘 경찰 청(자니 뉴엔 분)과 디칸의 딸 쑤이(응오 탄 반 분)는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고, 청은 자신의 세계를 배신하기로 결심한다.

베트남 고유의 무술 ‘보비남’을 비롯한 각종 화려한 무술들이 ‘옹박’ 못지않은 리얼 액션으로 펼쳐진다.


쉬즈 더 원

‘분쟁제로기’라는 발명품으로 하루아침에 백만장자가 된 진분(게유 분)은 신문에 공개 구혼 광고를 낸다.

스튜어디스 소소(서기 분)는 유부남과의 불행한 사랑에 빠져 있었고 별생각 없이 응한 공개 구혼장에서 진분과 만난다.

소소는 속을 알 수 없는 남자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아파하는 솔직한 여자. 로맨틱 코미디의 익숙한 정석을 따라가지만 할리우드 영화들과는 사뭇 다른 결말을 보여준다.


유키와 니나

열 살짜리 소녀 유키(노에 삼피 분)의 아빠는 프랑스인, 엄마는 일본인이다. 어느 날 유키는 엄마와 아빠의 이혼 소식을 듣게 된다.

이제 유키는 엄마와 함께 낯선 땅 일본으로 가야 한다. 베스트 프렌드 니나(아리엘 무텔 분)와 헤어지기 싫은 유키는 부모님의 사이를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어른들의 세계에서만 통용되는 감정은 아이들을 소외시킨다.

숲속으로 달아난 두 소녀가 겪는, 아이들만의 논리와 꿈과 판타지가 지극히 아름답고 청량하게 펼쳐진다.

김용언 씨네21 기자 eun@cine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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