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상업화 가장 앞선 분야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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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동안 세계인의 이목을 사로잡았던 2010 남아공 월드컵이 막을 내렸지만 여운은 남아 있다. 갈수록 뜨거워지는 축구 열기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월드컵을 지구촌 최대의 빅 이벤트로 키운 국제축구연맹(FIFA)의 마케팅 전략은 무엇인가. FIFA는 올해 매출 33억 달러(4조 원)에 순이익은 11억 달러(1조3000억 원)를 거두게 된다.

현금 자산도 10억 달러에 달한다. 이익률을 보면 기업도 이런 기업이 없다. 공 하나에 울고 웃는 축구에 세계적인 기업들이 홍보비 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 코카콜라가 투입한 마케팅 비용만 6억 달러에 달한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코카콜라는 1억2400만 달러를 FIFA와 스폰서십 체결에, 나머지 4억7500만 달러는 순수 마케팅 비용에 썼다. 대회 시작 3년 전인 2007년에 마케팅 전문가 6명을 남아공에 파견해 월드컵 마케팅 준비에 들어갔던 코카콜라다.

축구는 이제 단순히 스포츠 중 하나가 아니다. 민족주의가 강하게 스며든 그라운드의 전쟁이자 현대 마케팅이 어떻게 진화되는지를 보여주는 신천지다. 축구계의 실력자는 곧 정치적 파워를 행사하게 되고, 뛰어난 축구 선수들은 어떤 연예인 못지않은 현대의 스타다.

이렇게 축구가 급성장한 것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 세계화와 상업화에서 앞섰기 때문이다. 미국 예일대의 온라인 저널인 ‘예일 글로벌’에 최근 실린 칼럼은 바로 이 점을 지적했다. 예일 글로벌 칼럼은 “축구만큼 세계화된 스포츠는 없다”고 규정했다.

또 “세계화로 구단의 경쟁력을 키우고 축구 경기의 수준을 높여 온 사례는 국제 노동시장에도 적용할만하다”며 축구의 발전과 세계화에서 성공 사례를 다른 분야도 배울만하다고 제안했다.

축구 선수들 노동시장에는 장벽 없어

몇몇 사례만 봐도 축구가 어떻게 세계화에 앞섰고 상업화에 성공했는지 알 수 있다. 가령 잉글랜드의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고 있는 한국의 박지성 선수나 코트디부아르 출신의 드록바 선수와 달리 뛰어난 능력을 갖춘 카메룬의 의사와 나이지리아의 엔지니어가 영국·스페인·이탈리아에서 자유롭게 진료하거나 기술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공공 부문에서도 아직은 멀었다. 노동시장의 국제 장벽은 엄존하고 기득권을 지키려는 보이지 않는 벽도 있다.

그러나 축구 선수들의 노동시장에는 장벽이 없다. 능력 있는 선수는 국적이나 인종에 상관없이 최우수 팀에서 뛸 수 있다. 선수들은 더 많은 연봉을 제공하는 팀을 선택해 국경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활동한다.

지난 5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45년 만에 우승한 이탈리아 인터밀란의 경우 결승전 선발 선수 중 이탈리아 출신은 한 명도 없었다. 영국·스페인·이탈리아·독일·프랑스 등 유럽의 메이저 리그에서 뛰고 있는 2600여 명의 선수 중 800여 명이 외국인이다.

축구 선수의 ‘근로조건’에 제한이나 규제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5년 장 마르크 보스만이라는 벨기에 선수가 각 구단마다 외국인 선수를 2~3명만 채용할 수 있게 한 규정에 대해 ‘노동의 자유’를 보장한 유럽연합(EU)의 법을 위반했다며 이의를 제기한 것이 변화의 시작이었다. 그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면서 선수들의 국제적 이동이 활발해졌고 축구의 세계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능력 있는 선수들이 우수한 팀으로 몰리자 팀의 전력도 좋아졌다. 우수 선수들이 몰려들어 함께 뛰면서 경쟁하자 축구의 수준 자체가 달라졌다. 개인기와 기술, 작전과 전략이 개발되면서 팬들은 축구에 더욱 열광하게 됐고 축구 팬 자체가 급증했다.

지금 FIFA가 돈을 벌면서 위세를 부리는 권력체가 된 배경이기도 하다. 시장이 성장하자 여유 있는 팀들은 뛰어난 선수들을 속속 영입했다. 구단과 선수들도 더 부유해졌다.

팬들의 만족도가 높아지면서 대기업들이 거액을 들고 앞 다퉈 스폰서로 나섰다. 세계화의 성과다. 한번 산업화의 길로 들어서자 축구 업계(구단)는 장기 투자에 나서게 된다. 실제로 세계적인 명문 구단은 장래를 보면서 아프리카와 남미 등지로 재목을 찾아 나선다.

유럽 구단들은 자질이 보이면 꼬마 선수를 발굴, 성인이 될 때까지 먼저 ‘장학금’을 제공하며 입도선매도 한다. 우수 인력을 미리 확보하겠다는 장기 발전 전략이다. 이렇게 선수층을 두텁게 하니 ‘축구 경제’는 성숙해질 수밖에 없다.

허원순 한국경제 국제부장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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