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cal Column] 혈정액증…아니, 정액에서 피가?

박천진의 남성 upgrade⑩

피가 섞인 정액이 나오는 혈정액증(血精液症)은 당사자인 남성보다 성관계 후 여성에 의해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여성의 생식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오인하는 수도 있고 일시적인 혈정액증은 알지 못하고 지나쳐 버리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혈정액증의 발병률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최근에 일명 ‘콘돔 사건’이 생각난다. 30대 초반의 젊은 부인이 피 섞인 정액이 담긴 콘돔을 진료실에 가져온 것이다.

처음에는 젊은 여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꼭꼭 밀봉한 피 섞인 정액이 담긴 콘돔을 불쑥 보여줘 ‘별것을 다 가지고 와서 보여주는 환자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정을 들어보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부인은 증거물로 어젯밤 사용했던 피 섞인 정액이 담긴 콘돔을 내보이고 신혼인 자신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을지 심각하게 걱정하면서 성병에 관한 모든 검사를 다 받고 싶다고 했다.

부부 관계 후 마무리 단계에서 사정액에 피가 보인다면 남성은 물론이지만 상대 부인도 당황할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월경에 의한 생리혈을 의심하다가 혈흔의 근원이 정액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아기를 갖기 위해 피임 없이 관계를 갖다가 남편의 짙은 암갈색 정액에 놀라 임신 후 태아 건강과 출산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지, 혈정액증이 있는 경우 당분간 피임을 해야 하는지 걱정하기도 한다. 증상이 있는 남편보다 부인 입장에서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피 섞인 정액을 받는 것은 여성이기 때문이다.

악성종양인 경우 2% 이하

중년 남성 이상에서는 정액에 피가 보이면 암은 아닌지, 아니면 성병 감염에 의한 몹쓸 병에 걸린 것은 아닌지 막연한 불안감이 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실제 임상에서 혈정액증은 과도한 성행위나 무리한 자위행위, 양성 질환에 의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악성종양인 경우는 2% 이하로 매우 드물다.

대개 일시적인 현상으로 저절로 소실되는 경우가 더 많아 한동안 무리한 자위나 빈번한 성행위를 자제하고 필요하면 적절한 약물요법으로 대부분 호전된다.

예외적으로 지속적인 혈정액증이 반복되면 세부적인 비뇨기과적 진료를 받는 것이 현명하다. 사정액의 양상은 남성의 극치감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을 방치하면 스스로 심리적으로 위축돼 정상적인 성기능(발기·사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금까지 알려져 있는 원인 질환으로는 정낭·전립선, 혹은 요도의 염증이 주된 원인으로 생각된다. 정낭 및 사정관의 점막증식·선천성낭종·정낭결석·결핵·주혈흡충증 등이 원인이고, 전립선 쪽으로는 전립선염·전립선결석·전립선비대증·모세혈관확장증 등이 원인이다. 드물지만 전립선암이 원인 질환이 될 수도 있다.

사정 후 정액에서 혈흔이 있거나 혹은 현미경으로 혈액을 발견하는 것으로 진단할 수 있다.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혈정액증을 유발하는 원인 질환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정액을 저장하는 정낭과 정액 방출의 방아쇠 역할을 하는 전립선에 대한 영상 진단(초음파 검사·CT)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혈정액증이 나타난 후 심하게 충격을 받은 남성들 중에는 과거 몇 년 전의 의심되는 부적절한 성행위들까지 일일이 떠올리며 혹시 매독이나 에이즈라도 걸린 건 아닌지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이후에 혈정액증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도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면서 여러 성병 검사를 반복적으로 시행하며 불안해하는 경우도 있다. 혈정액증 원인의 대부분은 양성 질환이므로 치료에 반응을 잘하며 예후가 양호하다.

특히 이 중 상당수는 일정 기간 후 자연 소실되는 양성 질환이다. 단, 50세 이상의 남성이 정액에 피가 보인다면 전립선과 정낭에 대한 정밀 검사를 시행하는 것이 좋다.

단, 특이 소견이 발견되지 않으면 단순히 정액에 피가 보였다고 해서 불안감에 떨 이유는 없다. 그 이유는 대부분 저절로 호전되는 양성 질환이기 때문이다.


약력 : 1991년 연세대 졸업. 비뇨기과 전문의(전립선·남성의학). 미국·대한비뇨기과학회·남성과학회·전립선학회 정회원. 세브란스병원 비뇨기과 외래교수. 연세대 총동문회 이사. 전 수도통합병원 비뇨기과과장. 강남J비뇨기과 대표원장(현).

박천진 강남 J비뇨기과 원장 www.manclinic.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