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고수의 비밀노트] “파트너십의 진정한 의미 깨우쳐야”

한경비즈니스·MASOK 공동기획⑥ - 고광열 한국DBK 사장

고광열 한국DBK 사장은 외국계 회사에서 잔뼈가 굵은 마케터다. 1980년 한국바이엘약품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해 한국쉬크·클로락스코리아·에너자이저코리아 등을 거쳤다.

짧지만 국내 기업에서의 근무 경험도 갖고 있다. 보령제약의 OTC(일반약품: 의사의 처방 없이 약국에서 자유롭게 구매가 가능한 약) 담당 본부장으로 3년간 일했다.

2009년 3월부터 모기·바퀴벌레 살충제 등을 생산하는 DBK의 최고경영자(CEO)로 재직하고 있다. 고 사장은 그동안 제산제 ‘탈시드’, 바퀴벌레 살충제 ‘컴배트’ 등을 국내 시장에 들여와 1위 브랜드로 키운 실력자다.

질레트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하던 쉬크 면도기도 그의 손을 거치면서 정상의 브랜드로 성장했다.

그렇다면 30년 경력의 마케터가 꼽는 성공 마케팅의 비결은 뭘까. 고 사장은 주저하지 않고 “파트너십”이라고 말했다. “파트너십(Partnership)을 깨쳐야 한다, 그래야 산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살아왔습니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닌데, 파트너십은 너무 당연한 말이 아닌가. 하지만 너무 당연해 잊어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컴배트·쉬크 성공의 주역

1998년 9월 고 사장은 한국쉬크에 면도기 마케터로 합류했다. 당시 태평양(현 아모레퍼시픽)이 쉬크 면도기의 위탁 영업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양사의 파트너십은 금이 가 있는 상태였다. 고 사장의 회고다.

“외환위기 직후였기 때문에 시장 환경이 좋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쉬크가 단기 실적을 내기 위해 세 차례에 걸쳐 가격을 인상하는 등 무리수를 남발했어요. 더 큰 문제는 파트너인 태평양과 어떤 논의도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태평양 창고에 6개월 치의 재고가 쌓여 있을 정도로 사정이 어려웠습니다.”

한마디로 신뢰가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신뢰가 무너진 자리엔 불신이 가득했다. 당연히 협력의 시너지를 기대할 수 없는 상태였다. 신뢰 회복이 급선무였다. 고 사장은 태평양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프로모션을 하는 데도 태평양의 동의를 구하겠다며 자세를 낮췄다.

대리점에 공짜 면도기 샘플링을 적극 제공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실제로 그 후 2년간 80만 개의 면도기를 판촉용으로 무료로 제공했다. 파트너십이 복원되면서 시장점유율도 덩달아 올라갔다. 2년 만에 근소한 차이지만 시장점유율에서 질레트를 앞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3년 쉬크가 건전지 기업인 에너자이저코리아에 팔리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에너자이저는 직접 영업을 원했다.

“눈앞이 캄캄했어요. 쉬크 면도기의 성공은 태평양의 브랜드 파워와 유통망에 힘입은 바가 큽니다. 건전지 단독 품목에 의존하는 에너자이저가 성격이 전혀 다른 면도기 영업까지 잘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최고경영진의 판단이니 어쩔 수가 없었어요. 예상대로 쉬크의 시장점유율이 곤두박질치면서 질레트에 선두 자리를 내주고 말았습니다. 자식 같은 브랜드를 잃었지만, 대신 성공하려면 먼저 파트너를 존중해야 한다는 소중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파트너십과 함께 고 사장이 강조하는 점은 실행력이다. 에너자이저코리아를 떠난 고 사장은 보령제약으로 자리를 옮겨 3년간 OTC 사업부 본부장으로 일했다. 외국계 기업에서 오랫동안 생활했던 고 사장은 한국 기업 마케터들의 약점으로 실행력 부족을 꼽았다.

“예를 들어 본부장이 전략을 만들면 팀장이 전술적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합니다. 또 전술을 함께 만들어 합의해 놓고도 실행하지 못하는 게 다반사였습니다.”

회사의 목표와 개인의 목표 일치시켜야

한국 기업 마케터의 실행력이 약한 이유로 두 가지를 들었다. 첫째, 해보지도 않고 ‘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마케터가 책임감을 갖고 끈질기게 실천했더라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둘째, 마케터 개인의 실행 계획이 회사와 헛돌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회사의 목표와 개인의 목표가 일치해야 하는데 목표를 정확히 일치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작은 장애물이 나타나도 성급하게 포기한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뭘까. 고 사장은 ‘자유로운 토론 문화’를 제시했다. 고 사장은 “외국계 회사와 국내 회사의 유일한 차이가 바로 토론 문화”라고 말했다. 국내 기업의 경우 경영진이 회의를 주재하면 거의 모든 직원들이 입을 다물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소통 없이 일을 진행할 수는 없다.

“치열한 난상토의 끝에 실행 계획을 도출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두 가지가 선행돼야 해요. 첫째, 계급장을 떼야 합니다. 복장을 자유롭게 하거나 회사 밖에서 회의를 진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둘째, 회의의 목적이 무엇인지 사전에 체크한 뒤 회의 말미에 정리하는 겁니다. 애초에 원했던 것과 어느 정도 부합하는지 확인해 보는 거죠.”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토론이 제대로 되려면 상호 신뢰가 필수적이다. 어떤 말을 하더라도 상대가 이해하고 받아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고 사장 역시 “극복하기가 무척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아울러 고 사장은 마케터들이 좀더 당당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리보전에 급급하지 말라는 요구다. 고 사장은 “마케터들은 어딜 가더라도 일할 수 있다”며 “소신을 분명하게 피력하고 토론해야 전사적 마케팅이 가능해진다”고 했다.

DBK는 세계적인 살충제 전문 메이커다. 한국DBK는 DBK의 기술 자문을 받아 주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제품을 생산한다. 최근에는 자사 브랜드 영업을 강화하고 있다. 파리·모기·개미·바퀴벌레 등의 퇴치에 사계절 사용할 수 있는 ‘킬 파크’ 시리즈를 내놓았다. 향후 생활용품 사업에도 뛰어들 계획이다.

한국DBK는 연매출 100억 원대의 다소 작은 기업이다. 고 사장은 “마케팅의 결정판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무대가 될 것 같다”는 생각으로 CEO를 맡았다고 했다. 고 사장이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기쁨을 또다시 누릴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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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후배 마케터를 위한 Tip

“현장에서 솔루션을 찾아라”

“책상에 앉아서 그림만 그리는 마케터가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고광열 한국DBK 사장이 후배 마케터들에게 들려주는 첫 번째 팁(Tip)이다. “사무실에선 그저 추론할 뿐이잖아요. 경험하지 않은 자신감은 착각일 가능성이 높아요. 매장에 나가서 제품을 구입하는 소비자·판매직원 등과 끊임없이 대화해야 합니다. 현장에 이슈와 솔루션이 다 있습니다.” 아울러 리스크 분석에 게을러서는 곤란하다고 조언했다.

“후배 마케터들 중엔 기획안을 하나만 가져오는 경우가 많아요. 선택의 폭을 스스로 좁힌 것이지요. 더구나 리스크를 고려하지 않는 이들도 적지 않아요. 잘 될 때를 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됐을 경우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에 대해서도 분석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최선을 다하고 당당하게 살라고 부탁했다. “20대, 30대에 밤늦게까지 일하는 것은 자신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 당당하세요. 진급이 좀 늦으면 어떻습니까. 지금의 자리에 집착하지 말고 회사와 상사를 동등한 파트너로 대하는 것이 좋습니다.”


약력 : 1955년생. 78년 서울대 수의학과 졸업. 80년 한국바이엘약품 입사. 1987년 유일트레이딩 마케팅 이사. 91년 클로락스코리아 상무. 1998년 한국쉬크 상무. 2004년 에너자이저코리아 전무. 2006년 보령제약 SM마케팅&영업 본부장. 2009년 한국DBK 사장(현).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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