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all Business] 창업 시장 바꾸는 ‘크리슈머의 힘’

창업 에세이

창조적 소비자로 불리는 크리슈머(Cresumer)는 상품과 브랜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개발·디자인·판매 방식에 적극 개입하는 특수한 소비자 집단이다. 기업과 크리슈머 사이에는 파트너십이 형성돼 있다. 크리슈머의 의견에 맞춰 기업은 유행에 적극 대처하고 고객 감동을 실현해 단골손님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 브랜드와 상품에 국한됐던 크리슈머의 활동이 창업 시장까지 확대되고 있다. 인테리어는 물론 상품의 변화를 촉구하는 크리슈머의 목소리는 수용하는 방법에 따라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고객은 정답을 알고 있다’

올해 3월 분당 서현동 오피스가에서 46㎡(14평) 규모의 국수 전문점을 운영하던 정호(41·벤또랑 서현점, www.bentorang. co.kr) 씨는 크리슈머를 활용, 업종을 변경해 하루 40만 원대 매출을 160만 원대까지 올렸다.

작년 10월 국수 전문점을 오픈했지만 매출 부진에 시달렸던 정 씨는 단골손님을 대상으로 ‘매장이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단골손님들은 지역 음식점의 현황을 잘 알고 고객 입장에서 냉정한 평가를 내린다는 데서 착안한 것.

고객들의 의견은 간단하면서도 실행하기 까다로웠다. 주변에 면 요리 전문점이 10여 곳에 이르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므로 국수 전문점을 접고 업종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 ‘골목 안 매장이기에 일부러 찾아오는데 독특하고 주변에 없는 업종이었으면 좋겠다’, ‘한 끼 식사로 충분하고 건강까지 고려한 음식이었으면 좋겠다’는 게 고객의 의견이었다.

정 씨는 업종을 바꾸기로 했다. 업종 전환에 대한 추가 투자금이 부담스러웠지만 그래도 친절한 서비스 덕분에 이 점포에 애정을 가졌던 고객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기로 한 것.

특색 있고 맛있는 음식으로 성공 신화를 쓰고 있는 음식점을 탐문하고 인터넷에서도 세계 각국의 음식 정보를 찾아 분석했다. 그러던 중 친하게 지내던 고객 중 한 사람이 일본식 수제 도시락을 추천했다. 친구와 함께 먹어 봤는데 반응이 좋았다며, 이곳에도 생겼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말한 것.

시장조사를 하고 업종을 정한 후에도 역시 잘 알고 지내던 고객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반응은 우호적이었다. 매장의 집기와 인테리어를 최대한 활용, 1200만 원만 재투자하면 업종 전환이 가능했다. 가맹 본사의 도움으로 100% 조리된 식자재를 공급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크리슈머 덕분에 매출이 두 배 이상 껑충 뛰었다. 리모델링 후 정 씨는 매장 한쪽에 고객 의견 수렴함을 설치했다. ‘고객이 정답을 알고 있다’는 생각으로 크고 작은 일에 고객의 의견을 반영해야겠다는 철학을 실천에 옮긴 것이다.

“의견을 낸 고객에게 추첨을 통해 시식권을 제공했죠. 300건 이상의 쪽지가 쌓이더군요. 그중 당장 시행할 수 있는 6건을 채택해 바꿔 나갔습니다.”

수렴함에는 고객들의 다양한 의견이 수집됐다. 식사량을 늘려달라는 의견에서부터 생소한 음식이니 먹는 법을 알려달라는 것까지 다양했던 것. 정 씨는 바꿀 수 있는 것부터 시행해 나갔다. 원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밥과 절임류 반찬을 무한 리필해 식사량을 늘렸고 식사하는 법이 자세히 설명된 인쇄물을 제작해 테이블마다 비치했다.

바로 시행할 수 없는 건의 사항은 가맹 본사에 전달했다. 인테리어 콘셉트나 좌석 배치, 간판, 서비스 시스템에 대한 의견은 본사 시스템과 향후 개설될 가맹점에 적극 반영하고 있기 때문.
정 씨는 의견을 낸 고객의 이름과 조치 내용을 매장 입구 카운터 옆에 붙여 둔다. 고객들에게 ‘내가 만드는 가게’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단골손님인 직장인 이민석(33) 씨는 “일시적인 이벤트라고 여겼는데 막상 내 이름과 건의 사항, 조치된 내용이 담긴 쪽지를 보니 매장에 대한 애정이 더욱 커진 것 같다”고 밝혔다.

이런 노력 덕분에 사업 초기에 80만 원에 머무르던 매출이 160만 원대까지 올랐다. 정 씨 매장의 성공 사례에서 잘 나타났듯이 크리슈머는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크리슈머는 표면적으로 ‘상품의 변화’ 등의 작은 변화에 관여하는 듯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트렌드를 창조하는 것이다. 크리슈머의 파워는 인터넷에서 유감없이 발휘된다.

웹 2.0 시대의 소비자는 결코 수용자에 머무르지 않는다. 소비자가 만드는 콘텐츠인 UCC의 확산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애플이 아닌 소비자가 찍은 ‘아이폰’ 정보가 더욱 공신력을 갖고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창업 시장도 변화해야 한다. 고객의 맛집 체험 블로그 한 페이지가 수만 장의 전단지보다 큰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창업 시장에서도 고객의 의견을 적극 받아들여 성공한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수작 요리 주가 ‘와라와라(www.wara-wara.com)’는 주점에서 패밀리레스토랑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유명하다.

이 회사 역시 크리슈머 전략을 적극 활용해 성공한 케이스다. 이곳은 20대 후반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은데, 그 비결은 20대 여성의 의견을 적극 서비스와 경영에 반영한 것이다.

고객 아이디어가 차별화 불러

매장 화장실에는 고객이 매장에 대한 의견을 적을 수 있는 포스트잇이 비치돼 있다. 화장실에 잠시 머무르는 동안에 다양한 의견을 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수집된 의견은 매장 운영에 적극 반영하고 있다. 고객의 의견에 맞춰 탄생한 서비스 중 재미있는 것이 많다.

긴 머리 때문에 음식 먹기가 불편하다고 하면 ‘머리핀’을 제공하고 짧은 치마 때문에 앉기가 불편하다는 의견에는 ‘담요’ 제공으로 피드백했다. 비가 오는 날 귀가가 걱정된다는 의견에 맞춰 우산을 비치해 제공하기도 했다.

재미있는 서비스는 더 있다. 남성 대리 운전사 때문에 불편을 겪은 사연이 올라오면 ‘여성 대리 운전 서비스’를, 매장에서 택시나 버스 타는 곳까지 가면서 위협감을 느꼈다는 의견에는 ‘서비스 직원 배웅 서비스’로 답했다.

서비스만 바꿔 나가는 것은 아니다. 화장실에 비데와 히터 역시 고객들의 니즈를 반영해 설치했고, 10개의 주먹밥 중 1개에만 매운 소스를 넣는 ‘복불복 주먹밥’ 같은 메뉴 역시 고객 의견으로 탄생한 것이다.

와라와라를 운영하는 이재용 사장은 “고객의 의견을 듣고 실행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면서 “본사가 시행하는 ‘암행어사 제도’는 서비스와 시스템이 얼마나 잘 시행되는지 항시 감시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밝혔다.

매장 내 20대 젊은 고객들이 가득한 허준본가 카페(www.heojun.co.kr)의 탄생 뒤에도 크리슈머가 있었다. 건강식품을 카페에서 간단하게 즐기고 싶다는 20대 고객들의 의견을 반영해 탄생된 것. 판매하는 상품도 특별하다. 전통차와 함께 먹는 홍삼 푸딩은 약효는 그대로이면서 쓴맛이 없어서 젊은이들에게 인기. 가격은 3500원 선이다.

‘달콤한 건강식품’인 홍삼 푸딩이 탄생한 것도 고객의 의견을 적극 반영한 결과다. 면역력에 좋은 홍삼을 자녀에게 먹이고 싶다는 부모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제품을 개발한 것.

이처럼 크리슈머는 대기업에서만 통용되는 게 아니다. 고객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크리슈머 제도가 위력을 발휘한다. 우리나라 자영업은 치열한 경쟁으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이런 때일수록 고객의 의견, 고객의 아이디어가 변화와 차별화, 혁신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이경희 소장

1964년생. 고려대 사회학과 졸업. 세종대 경영학 박사. 한국프랜차이즈협회 자문위원, 한국여성창업교육협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며 한국창업전략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이경희 한국창업전략연구소장 ksbi@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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