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상 추락하는 오바마 대통령
미국에서 지지율 추락으로 고전하고 있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최근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에서도 외교력 부재를 노출, 사면초가에 몰렸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회의에서 은행세 금융개혁안 등을 제대로 제기하지 못했고 중국의 위안화 절상 공론화에도 실패했다. 또 유럽 국가와의 경기 회복 논쟁에서도 완전히 밀리는 치욕을 당했다.“독일을 비롯한 유럽 회원국은 이번 회의에서 재정 적자 감축 목표를 부각하는데 성공했다. 반면 미국은 대공황 이후 가장 획기적인 금융 개혁 최종안을 마련했지만 G20에서 이슈화조차 하지 못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6월 27일 폐막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끝난 후 이런 평가를 내렸다. 미국과 유럽은 G20 시작 전부터 세계경기에 대해 완전히 다른 대책을 내놨다. 유럽은 재정 긴축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각국이 재정 건전화에 더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고 프랑스와 영국 등도 이에 가세했다.
반면 미국은 경기 회복세가 아직 미약한 만큼 정부는 내수 진작을 통해 경제성장에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G20 회의가 열리기 전에 각국 정상들에게 서한을 보내 “정부 지출을 줄이면 세계경제가 다시 위축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G20 정상들은 정상회담에서 “선진국들이 2013년까지 자국의 재정 적자를 절반으로 감축하고 2016년까지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중을 안정화하거나 하향 추세로 전환하도록 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이 과정에서 제임스 캐머런 영국 총리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현시점에서는 재정 적자를 줄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데 합의했다”고 발표해 오바마 대통령을 머쓱하게 만들기도 했다.
재정 적자 감축이 글로벌 경제의 최우선 과제로 부각되면서 오바마 정권은 큰 부담을 안게 됐다. 재정 적자를 감축하기 위해서는 세금을 더 거둬야 하는데, 이는 오바마 대통령의 비과세 공약과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은행세·금융개혁법 등도 합의 무산
미국은 G20 정상회담 직전 금융 개혁 관련 이슈를 주도할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미국 상·하원이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가장 강력하고 포괄적인 금융개혁안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금융개혁법의 필요성을 제대로 제기하지도 못했다.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이 내세운 재정 적자 해소 문제가 최우선 과제로 부각되면서 관심을 끄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은행세는 각국의 이해관계의 차이로 완전히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미국은 이미 개별적으로 은행세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독일·프랑스·영국 등과 은행세 도입을 성명서 안에 포함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G20 의장국인 캐나다를 비롯해 호주·브라질·인도·멕시코 등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들은 “은행세가 경제 위기와 관계가 없는 은행들에까지 피해를 줄 수 있고 미래에 발생할 경제 위기를 막는 데도 효과가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정상들은 선언문에서 “금융 부문은 금융 시스템이나 펀드 해법을 바로잡기 위한 정부의 개입으로 초래되는 부담에 대해 타당하고 실질적으로 기여해야 한다”며 “각 국가는 은행 부과금을 도입하는 것을 포함해 개별적인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고 밝혀 은행세 도입을 개별 국가에 위임했다.
미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들이 제기했던 위안화 절상 문제도 G20 회의에서 공론화되지 못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G20 정상회의 개막식에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지만 “시일이 얼마 지나지 않아 효과를 평가하기 어렵지만 환율 유연성 조치를 환영한다”고 의례적인 인사말을 하는데 그쳤다. 반면 후진타오 주석은 “세계경제 회복의 가장 중대한 위협은 무역 불균형이 아니라 선진국의 보호주의 조치”라며 미국의 움직임을 정면 비판했다.
결국 G20 정상들은 중국에 위안화 절상 문제를 환기하기 위해 최종 성명서에 “중국의 위안화 유연성 확대 조치를 환영한다”는 문구를 삽입하려고 했다. 그러나 중국의 반대로 결국 이마저도 무산됐다. 로이터통신은 “중국이 자국 정책에 대한 칭찬을 거부하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G20 공식 성명서에 중국 통화정책이 지목되는 선례를 남기지 않으려고 했다”고 전했다.
김태완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