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권력도 붕괴시킨 ‘무서운’ 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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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모든 세금은 다 나쁘다. 그중 덜 나쁜 세금이 있다면, 그게 바로….” 몇 년 전 종합부동산세 신설 논쟁이 한창일 때 진보 성향의 어느 국내 경제학자가 했던 말이다. ‘헌법보다 더 바꾸기 힘든 법’이라는 얘기가 나왔고 부동산, 특히 고가 주택에 징벌적 세금을 부과하는 문제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던 때였다.

<YONHAP PHOTO-0728> Julia Gillard (L) arrives at the Labor Party (ALP) leadership meeting with Treasurer Wayne Swan in Canberra, June 24, 2010. Gillard became Australia's first female prime minister on Thursday when Kevin Rudd stepped down, as the Labor government sought to avoid election defeat later this year by changing leaders. REUTERS/Alan Porritt/Pool (AUSTRALIA - Tags: POLITICS BUSINESS)/2010-06-24 10:45:50/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결국 종부세는 도입됐는데, 정부 요직을 맡았던 Q씨는 세금의 속성을 그렇게 소개했다. 그는 그나마 상대적으로 덜 나쁜 세금이 있다면 그것은 토지 관련 세금이고 종부세도 그런 것에 해당한다는 이론을 전했다. 토지 관련 세금이 덜 나쁜 세금이라는 주장의 근거는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이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실제로 모든 세금은 매우 위험한 것이다. 모든 정부·정권에 그렇다. 당연히 동서양 할 것 없이 모든 정당·정치권이 매우 조심히 다뤄야 할 사안이다. 그런데도 대다수 정치권력은 세금에 손을 못 대 안달인 듯하다. 최근 호주 사례도 이 점에서 시사점이 크다.

세금 문제로 뿔난 광산 업계가 호주에서 49세의 첫 여성 총리를 탄생시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민 온 광부의 딸’ 줄리아 길러드의 부상은 세계인의 주목을 끌만한 일이었다. 그의 전임자였던 케빈 러드 전 총리는 말 그대로 하룻밤 새 부총리였던 길러드에 밀려났다.

길러드라는 신데렐라의 부각 뒤에 러드의 급작스러운 몰락이 있었다. 사정을 알고 보면 러드의 좌초가 더 관심 가는 이야기가 된다. 호주 노동당을 이끌어 온 러드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지지율이 70%대까지 오른 꽤 괜찮은 정치인이었다. 자신을 몰아냈지만 그런 길러드를 정치적으로 키워 온 것도 러드였다.

문제는 올 들어 세금 신설 카드를 꺼낸 것이었다. 러드는 철광석·석탄 등 호주 경제를 떠받치다시피 하고 있는 자원에 ‘천연자원이득세’를 물리겠다고 나섰다. 국가의 부(富)였던 천연자원이 그에겐 유혹적인 과세 대상이었을지 모른다. 개발 이익의 40%까지 징수해 사회복지 분야에 넣겠다는 안이 그래서 나왔다. 기존의 법인세 외에 추가로 부과하겠다는 것이었다.

세금 문제로 호주 총리 물러나기도

그러나 전체 여론이 결코 좋았다고 하기 어려웠다. 광산 업계의 반발이 심했다. 6월에는 시드니에서 대규모 반대 집회가 열렸고 러드 정권은 곤란에 처했다. 지지율은 곧바로 40%대로 떨어졌고 그는 물러났다.

나라 재산을 더 개발해 국민 다수에게 혜택을 주자는 ‘멋진 구호’에도 여론의 반응은 싸늘했다. BHP빌리턴 같은 호주의 간판 격 자원 기업이 해외로 광산 개발의 방향을 돌리고, 투자 계획을 다시 생각해 보겠다는 광산 업체들이 늘어나는 것이 일반 국민들 눈에 불안해 보였기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세금이라는 게 그만큼 폭발력이 큰 사안이다. 최근 일본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의 뒤를 이은 일본 민주당의 간 나오토 내각은 출범에 맞춰 장기 불황 타개책을 발표했다.

그 가운데 하나로 5%인 소비세를 10%로 올리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증세의 명분도 충분했다. ‘만성적인 재정 적자를 개혁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지율은 즉각 급락했고 증세에 불만이 이어졌다. 간 총리는 “2, 3년 후에나 생각해 보겠다는 의미였다”며 부랴부랴 물러서야 했다.

1993년 캐나다 보수당의 실패는 세금 신설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더욱 극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당시 169석이었던 멀루니 정권은 총선 뒤 단 2석짜리로 완전히 전멸되다시피 했다. 연방소비세 신설 공약 때문이었다. 그 후 보수당의 재집권에 13년이 걸렸다.

중세의 절대 왕조까지 넘어뜨린 게 바로 세금 문제다. 루이 16세도 세금 때문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만큼 신중하게,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것이 증세나 세금 신설이다. 여론을 수렴해 가며, 대상자를 설득해야 한다. 반대파에도 거듭 설명해야 한다.

쓸 데는 많은데 재정수입은 뻔한 게 현대 국가다. 그러나 공공부문 군살 빼기, 지출 감축이 선행돼야 한다. 세금을 손대자면 세율을 낮춰 경제가 돌게 해 자연스레 세금이 더 많이 걷히도록 하는 게 맞다.

그렇게 해서 지역 간에, 국가 간에 경쟁력 우위 경쟁이 벌어진다. 이런 현대판 경제 전쟁의 핵심은 기업하기 좋은지 여부다. 기업 활동 여건 조성 경쟁에서 세금은 중요한 변수가 된다. 호주와 일본 사례를 보며 국내 정치권도 세금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

허원순 한국경제 국제부장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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