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길 다른 길] “열의와 성실성까지 대물림했죠”

이창남 센구조연구소 대표 & 이승환 이사 부자

건축설계가 건축물의 외형을 디자인하고 설계하는 일이라면 구조설계는 건축물이 단단히 서 있을 수 있게 하는 구조 즉, 건축물을 유지시키는 뼈대를 설계하는 일이다.

건물의 용도, 건물 완성 시의 내부 설비, 인원 등의 하중 조건 등을 고려해 건물이 튼튼하게 세워질 수 있도록 하는 게 바로 구조설계다.

그래서 구조설계의 제1 원칙은 ‘안전’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요즘은 지진 등의 자연재해와 방화·테러·자연발화에 따른 대형 화재 등 내진·내화를 위한 구조설계에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까지의 구조설계는 대부분 건축 분야의 하위 기술 내지는 하위 영역으로 취급받아 온 것이 사실이다. 40년 전 이창남 대표가 1인 기업처럼 구조설계 전문 회사인 ‘센구조연구소’를 설립하던 즈음에는 더 심했다.

“건축공학과의 정원이 40명이라면 그중에서 구조설계를 전공하는 학생은 한두 명 정도도 안 되는 시절이었죠. 구조설계 전문 회사라는 것도 딱히 없었고요. 오죽하면 당시 대학에서 구조설계를 가르치는 교수님들이 건축사사무소에서 아르바이트처럼 일감을 받아 일을 했을 정도니까요.”(이창남)

관련 전문 인력과 전문 기업이 적고, 그나마 대부분 건축사사무소에서 구조설계 업무를 하청 받는 형태여서 구조설계를 하는 이들의 설 자리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힘들면 포기하거나 뚫고 나가거나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택해야 하잖아요. 전 뚫고 나가는 방법을 선택했죠.”(이창남)

그저 수동적으로 건축사사무소가 주는 일을 받고 일을 해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하면 공사비를 아낄 수 있는지, 공기를 단축시킬 수 있을지, 더 튼튼하게 지을 수 있을지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했다.

건축물들이 제각각 서로 다른 만큼 구조설계도 각각의 건물에 맞는 가장 최적화된 방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결과 이 대표가 개발한 구조설계 관련 특허 및 실용신안만 100여 건이 넘는다.

구조설계에도 블루오션은 있다

“아버지로서도, 한 사람의 전문인으로서도 정말 존경스러운 분이시죠.”(이승환) 이승환 이사에게 아버지 이 대표는 언제나 귀감이 되는 존재였다. 이 이사가 구조설계에 뜻을 품게 되고 아버지와 함께 일을 하게 된 것도 전적으로 존경스러운 아버지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분이세요. 회사 일을 마치면 칼같이 퇴근하셔서 항상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던 학자나 장인(匠人) 같은 분이시죠. 그런 반면에 또 생각은 놀랄 만큼 유연하시고요.”(이승환)

하지만 아버지의 오랜 노력과 열의에 비해 사업적인 측면에서 구조설계 분야는 아쉬운 점이 많아 보였다. 전체 건설업계 시장 규모의 5% 정도밖에 안 되는 구조설계 시장 규모이기에 더더욱 새로운 활로 개척이 필요해 보였다.

“대학을 졸업한 후 코오롱건설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일한 적이 있어요. 그때 VE 즉, 밸류 엔지니어링(Value Engineering)에 주목하게 됐죠.”(이승환) 이 이사는 2001년 당시 코오롱건설의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에서 TSC 등 3개의 신공법을 제안 및 적용해 사업 수행 비용을 28억 원 절감하는 효과를 거뒀다.

TSC(The SEN steel Concrete)는 빌딩의 바닥판을 지지하는 보(수평재)에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철골 대신 철골 모양의 거푸집을 만들고 그 안에 콘크리트를 넣어 만든 합성보를 말한다.

이 역시 이 대표와 센구조연구소가 자체 개발한 기술이다. 이 TSC 합성보를 쓰면 내화성과 내진성이 더욱 향상될 뿐만 아니라 철골 물량이 30~40% 이상 줄어들게 된다.

이 때문에 그야말로 공사비를 파격적으로 줄일 수 있을 뿐더러 공사 기간도 대폭 단축할 수 있다. 당시 사장 특별상을 받기도 했던 이 이사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밸류 엔지니어링의 성공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구조설계 분야의 밸류 엔지니어링은 안전 확보, 비용 절감, 공기 단축을 위한 최적 구조설계 컨설팅으로 방법론과 전체 플랜, 설계 및 관련 프로덕트(서비스와 솔루션 포함)까지 제공하는 거예요.

이렇게 하면 기존 건축사사무소의 하청 형태만이 아니라 건설사와 직접 계약,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도 가능해지죠. 게다가 건설사 측도 밸류 엔지니어링을 통해 수십 억 원에 달하는 공사비를 절감할 수 있으니 반길 수밖에 없고요.”(이승환)

특히 이 대표와 센구조연구소는 40여 년 동안 4000여 프로젝트의 구조설계를 담당하며 쌓은 현장 경험과 100여 개의 특허 및 실용신안 등으로 대표되는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VE 전문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이 이 이사의 판단이었다.

이 때문에 일부러 미국 코넬대에서 MBA를 졸업하고 몇 년간 금융 그룹에서 일하며 경제를 보는 눈과 함께 경영 능력을 키워나갔다. 2008년 본격적으로 센구조연구소에 합류한 이후 시공사와 건축설계를 통해서이긴 하지만 쿠웨이트나 두바이 등 해외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에서 구조설계 VE 용역 등을 수주함으로써 구조설계 VE 해외 진출에 대한 자신감도 가질 수 있게 됐다.

“조만간 북미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어요. 이를 위한 관련 인증도 확보할 계획이고요. 현재는 센구조연구소의 VE가 최적화 컨설팅이나 설계 등 관련 서비스에 집중돼 있지만 조만간 합성보, 철근선조립 기둥, 보구조물 등 자체 보유하고 있는 특허 기술과 관련된 제품을 직접 생산하는 등의 수직 계열화를 위한 장기 전략도 세우고 있습니다.”(이승환)

세계적인 구조설계 VE 전문 기업을 향한 꿈

“일을 너무 크게 벌려서 그 뒤치다꺼리하느라 힘들어요(웃음).”(이창남) 아들의 의욕적인 행보에 짐짓 힘들다고 엄살을 부리는 이 대표지만 실상 아들의 행보에 가장 많은 기대를 거는 것도 바로 그다.

“아들은 저와 많이 달라요. 제가 엔지니어라면 아들은 엔지니어와 사업가를 합친 셈이죠. 그만큼 참 시원시원하고요. 실제로 함께 일하기 전에도 급하면 아들에게 지원 요청을 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항상 기대 이상의 답을 내놓더군요. ”(이창남)

이 때문에 함께 일하면서부터는 아들에 대한 신뢰도가 더욱 높아졌다. 누구보다 더 든든히 아들의 행보를 지지하게 됐다. 그리고 부자(父子)는 이제 같은 꿈을 향해 함께 걸어간다.

“구조설계 기술과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나간다면 건설 경쟁력이 높아지고, 이 때문에 국가 규모의 경제 이익 창출도 가능해질 수 있죠. 이런 구조설계의 중요성에 대해 많은 분들이 알아주셨으면 해요.

그러기 위해서라도 지금까지처럼 토종 구조설계 전문 기업으로서 자긍심을 잃지 않고 신공법과 선진 구조 시스템, VE 시스템 등을 개발하고 이를 선보여 나가는 데 힘쓸 예정입니다.”(이창남·이승환)


이창남(앞) 센구조연구소 대표이사 1940년생. 61년 서울대 공대 건축공학과 졸업. 63년 서울대 대학원 건축공학 석사. 1971년 센구조연구소 대표이사(현). 직접 참여한 주요 건축물로 인천국제공항 여객터미널. 국립중앙박물관, 한국종합무역센터, 인터콘티넨탈호텔, 포스코센터 등이 있다. 저서 ‘건축구조 뿌리에서 새순까지 1, 2, 3’, ‘건축구조 벌레먹은 열매들’, ‘건축구조 새순에서 열매까지’.

이승환 센구조연구소 이사 1975년생. 2000년 서울대 공대 건축학과 졸업. 미국 코넬대 MBA 졸업. 2000~2003년 코오롱건설 프로젝트 평가팀. 2006~2008년 한국씨티은행 소비자금융그룹. 2008년 센구조연구소 글로벌마케팅, 경영전략실 이사(현).

김성주 객원기자 helieta@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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