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에 이어 스마트 TV가 뜬다
‘나우누리’, ‘하이텔’, ‘천리안’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인터넷 이전 PC 통신 환경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각 서비스 사업자들이 정해 놓은 틀 안에서 동호회와 게시판을 중심으로 서비스가 운영됐고 오늘의 운세·날씨·뉴스·증권 등 콘텐츠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따로 비용을 내야 했다.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지만 당시에는 포털이 제공하는 무료 서비스보다 한참 떨어지는 콘텐츠를 제공해도 쏠쏠한 돈을 벌 수 있었다. 왜냐하면 당시 PC 통신 환경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수준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콘텐츠 사업자들은 각 카테고리에서 사용자의 눈에 잘 띄는 자리를 배정받기 위해 담당자들에게 로비를 하기도 했다. 당시 콘텐츠 업체의 경쟁력은 콘텐츠의 질보다 해당 카테고리에서 얼마나 눈에 잘 띄는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자리 경쟁은 무의미해졌다. ‘자리’보다 ‘사용 편의성’, ‘콘텐츠 내용’ 등 사업자보다 소비자들을 고려한 부분이 중요하게 된 것이다. 게임의 룰이 바뀌면서 PC 통신 사업자용 서비스에 주력했던 업체들은 사라지고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대비한 업체들이 새롭게 떠올랐다.
TV 부문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동안 방송사업자와 TV 제조사 중심으로 움직였던 이 시장은 인터넷 TV (IPTV)의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전파가 아닌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TV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국내에서 볼 수 있는 인터넷 TV는 이전 PC 통신 환경에 비유할 수 있다. 완전한 개방형이 아니라 서비스 사업자가 제공하는 방송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 TV, TV 시장에 지각변동 예고
국내에서 볼 수 있는 인터넷 TV는 KT의 ‘쿡 TV’, SK브로드밴드의 ‘브로드앤TV’, LG유플러스의 ‘마이LGTV’ 등이다. 각 사업자들은 콘텐츠 제공 업체와 계약해 방송을 제공하고 있으며 특정 영화와 드라마는 유료로 내보내고 있다.
하지만 각 업체들이 제공하는 프로그램은 콘텐츠를 계약한 업체만 가능하기 때문에 가입자별로 볼 수 있는 프로그램에 차이가 있다. 이런 상황은 소비자들에게 고민을 안겨준다. 자신이 원하는 스포츠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서는 A에 가입해야 하지만 B사의 드라마를 놓치기도 아쉽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구글과 애플 등 글로벌 기업들이 개방형 인터넷 TV를 들고 나왔다. 두 업체가 지향하는 인터넷 TV는 방식의 차이는 있지만 기존 TV 서비스와 달리 방송사업자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로운 콘텐츠 접근을 허용한다는 점이 다르다. 이 때문에 이들이 제시하는 인터넷 TV는 현재 서비스 사업자 중심으로 되어 있는 인터넷 TV와 다른 ‘스마트 TV’로 불리기도 한다.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볼 수 있는 스마트 TV는 ‘PC-인터넷’ 결합으로 나타났던 혁신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TV 제조사와 방송사업자, 콘텐츠 제공 업체로 이뤄졌던 TV 시장에서 콘텐츠 제공 업체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또 콘텐츠 제공 업체와 TV 업체 간 협력 강화 등 새로운 형태의 사업 모델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스마트 TV 시장에 뛰어든 것은 애플이 먼저다. 애플은 2007년 ‘맥월드’에서 ‘애플 TV’를 발표했다. 국내에도 두 달 뒤 출시된 애플 TV는 인터넷을 통해 콘텐츠를 내려 받거나 PC에 있는 동영상과 음악 등을 TV에서 볼 수 있게 해 주는 셋톱박스다.
기존 셋톱박스는 방송사업자 서비스를 전송받는 역할을 하지만 애플 TV는 유튜브 같은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에 직접 접속하거나 아이튠스 내에 있는 사진·음악·동영상을 재생할 수 있다.
애플은 아이팟과 아이튠즈로 평정한 음악 서비스에 이어 동영상 서비스를 애플 TV로 구현하려고 했지만 생각만큼 판매가 이뤄지지 않았다.
2007년 1월부터 판매된 애플 TV는 한 달 만에 10만 대가 넘게 팔리며 ‘DVD 킬러’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애플 TV는 지난해 말까지 3년 동안 약 660만 대가 팔려 당초 예상보다 판매가 저조한 상태다.
사실 애플 TV 판매량으로만 보면 실패했다고 보기 어렵지만 기존 애플이 출시한 제품들에 비하면 판매량이 저조한 것은 사실이다.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애플 TV가 향후 중요한 역할을 하기 바란다고 말했지만 현재는 아이폰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애플 TV가 어떻게 진화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
올가을 구글 TV 출시되면 시장 커질 것
스마트 TV 분야는 구글이 뛰어들면서 급물살을 타고 있다. 구글은 현재 많은 스마트폰 업체들이 탑재한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기반 ‘구글 TV’를 인텔·소니·로지텍과 함께 개발했다고 지난 5월 밝혔다.
구글 TV는 동영상 서비스 유튜브, 사진 공유 서비스 피카사 등 웹서비스를 자사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하에서 표준화한 인터넷 TV 플랫폼이다.
구글 TV는 TV를 통해 사용자들이 웹사이트에 바로 접속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단문 블로그인 트위터뿐만 아니라 넷플릭스·훌루와 같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도 지원한다.
무엇보다 구글 TV는 자사 검색 서비스와 연계해 사용자가 원하는 동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한다는 것이 장점이다. 이전까지 인터넷 TV가 제공하는 동영상은 영화·드라마 등 전문 제작사가 만든 작품들이지만 사용자제작콘텐츠(UCC)·광고·플래시 애니메이션 등 인터넷에 있는 무한한 콘텐츠를 TV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웹 개방성을 그대로 가져온 구글 TV는 스마트 TV 부문에서 새로운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여기에 구글은 스마트폰 시장에서 확대되고 있는 안드로이드 진영의 영향력, 크롬 브라우저, 검색 능력 등을 연계할 예정이다. 구글은 PC·TV·스마트폰 등 차후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3스크린’ 경쟁에서 이미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른 것이다.
구글은 콘텐츠 수익 분배 또는 광고 수익에 의존하는 기존 인터넷 TV 업체와 달리 애드센스와 같이 사용자 취향에 맞는 지능화된 광고 및 마케팅 수익 모델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우리나라와 일본 같은 나라에서는 언어와 문화상 이유로 단기간 내에 TV 시장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어렵겠지만 영어와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국가에서는 빠른 성장이 예상된다.
첫 번째 구글 TV는 소니를 통해 올가을 출시될 예정이다. 구글은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하드웨어 업체들과 다양한 협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 TV 시장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물론 구글과 애플 외에도 스마트 TV 시장에 관심을 갖는 업체들은 많으며, 예상과 달리 이 시장에서 넷플릭스나 훌루 같은 콘텐츠 제공 업체들이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가능성도 많다.
애플의 경우 CEO인 스티브 잡스가 콘텐츠 업체 디즈니의 최대 주주라는 점도 TV 시장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하드웨어와 단순한 기술에 집중하고 있는 TV 업체와 애플·구글의 경쟁은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부문이 중요해질수록 이 부문에 강점을 가진 업체들 쪽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현재 세계 평판 TV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를 비롯해 LG전자 등 국내 업체뿐만 아니라 소니와 샤프 등 기존 TV 업체들도 스마트 TV 환경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TV가 단순히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화상통화·인터넷 검색 등 다양한 기능을 포함한 가정 내 멀티미디어 허브 역할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이미 비슷한 경쟁은 스마트폰 시장에서 입증이 됐다. 노키아·모토로라·삼성전자·LG전자 등 휴대전화 업체들은 그 시장에서 수년간 경쟁을 하면서 노하우를 쌓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애플은 단 3년 만에 스마트폰 시장 선두주자로 떠올랐다.
기존 업체들은 1년에 많은 수의 스마트폰을 만들어 왔지만 애플은 1년에 단 한 개 모델, 지금까지 4개 모델만으로 스마트폰 시장을 장악했다.
향후 스마트폰 시장이 더욱 확대될 것을 예상해 보면 그동안 통신 사업자 입맛에 맞춰 다수 모델을 제작해 온 기존 업체들이 전략을 수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형근 디지털타임스 기자 brupr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