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pan] ‘제2 그리스 된다’ 강공…지지율 ‘흔들’

‘소비세 인상’ 정면 돌파 선택한 간 총리

“소비세 인상을 포함한 세제의 근본적인 개혁에 관한 협의를 초당파적으로 시작하고 싶다. 소비세(현행 5%) 인상률은 자민당이 선거공약으로 내건 10%를 참고로 할 수 있다.”

일본의 간 나오토 총리는 6월 17일 참의원 선거(7월 11일) 공약 발표 기자회견에서 ‘뜨거운 감자’를 건드렸다. 소비세(한국의 부가가치세) 인상 검토안이다. 선진국 중 최악인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선 소비세를 올릴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배경이다.

정부 여당뿐만 아니라 제1 야당인 자민당도 7월 참의원 선거공약으로 소비세 인상을 내세웠다. 이 때문에 소비세 인상 논의는 급류를 타고 있다. 소비세 인상이 기정사실화하면서 향후 논란은 구체적인 인상 폭과 시기, 세금의 용도 등에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세금 인상에 반대하는 국민 여론도 만만치 않다. 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 세금마저 올리면 소비가 더욱 위축될 것이란 반론도 거세다. 출범 초기 60%선이었던 간 나오토 내각에 대한 지지율은 소비세 인상 발언을 계기로 하락하고 있다.
<YONHAP PHOTO-1243> A prospective customer points at TV screens showing Finance Minister Naoto Kan, right, and his challenger Shinji Tarutoko in a ruling party vote at an electronics retail store at Tokyo's Akihabara district on Friday June 4, 2010. Japan's ruling party picked Kan, a grass-roots populist, as its new chief Friday, paving his way to replace political blueblood Yukio Hatoyama as prime minister while the party struggles to reclaim public support ahead of July elections. (AP Photo/Kyodo News) ** JAPAN OUT MANDATORY CREDIT FOR COMMERCIAL USE ONLY IN NORTH AMERICA **/2010-06-04 13:22:12/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 간 나오토, “10% 인상 검토” = 소비세에 대한 민주당의 당론은 ‘올리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간 총리가 취임하면서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는 작년 9월 취임하면서 “향후 4년간 소비세를 올리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민주당의 최고 실세였던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도 소비세 인상 반대론자였다.

그러나 간 총리는 재무상 당시 재정 건전성이 위험 수위인 만큼 국가 예산을 빚(국채 발행)에만 의존할 수 없다면서 소비세 인상론에 불을 지폈다. 이어 총리에 취임하자마자 이를 참의원 선거공약에 집어넣었다.

간 총리는 소비세 인상을 너무 밀어붙이는 인상을 줄 경우 선거에 악영향이 예상된다는 주변 의견을 받아들여 실제 공약에는 “소비세를 포함한 세제의 근본적인 개혁에 관한 협의를 초당파적으로 개시한다”는 정도로 표현했다.

하지만 6월 17일 선거공약 발표 기자회견에서 간 총리는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해 민주당을 발칵 뒤집었다. 간 총리는 소비세의 인상 폭과 관련, “자민당이 공약으로 내건 10%를 참고로 하고 싶다”고 밝혔다.

간 총리가 10%를 올리고 싶다는 속마음을 드러낸 것으로 읽혀졌다. 간 총리는 한 발짝 더 나아가 “세제를 크게 바꾸는 경우엔 본래 국민의 뜻을 물어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경우에 따라선 소비세 인상과 관련, 국민의 뜻을 묻기 위해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거를 실시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간 총리가 소비세 인상에 가속페달을 밟는 것은 참의원 선거에서 악재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깔고 있다.

◇ 늘어난 세수는 복지에 사용 = 간 총리는 소비세를 인상할 경우 늘어나는 세수를 노인 복지 등에 투입하겠다는 의향을 밝혔다. 그는 최근 기자들에게 소비세를 10%로 올릴 경우 세수를 고령자 관련 복지 예산 등으로 충당하겠다고 말했다.

간 총리는 현재 걷히고 있는 소비세를 기초연금, 고령자 의료, 고령자 요양 등 3개 분야에 투입하고 있지만 10조 엔(약 130조 원) 정도가 부족한 데다 사회보장비는 해마다 자연 증가하고 있다며 소비세 인상 필요성을 강조했다.

간 총리와 함께 소비세 인상론자인 센고쿠 요시토 관방장관은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소비세 인상 시기와 관련, “총선거(차기 중의원 선거) 이후 실시할 수밖에 없다”며 “시행 시기는 중의원 임기가 만료되는 2013년 8월 이후로 하되 이에 대한 국민의 뜻을 묻고 싶다”고 말했다.

중의원 임기가 만료되는 2013년 8월 이전 실시되는 총선거에서 소비세 인상에 대한 정권의 신임을 국민에게 물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일본의 소비세는 현재 5%다. 이 가운데 1%포인트의 세수는 지방에 배분한다. 중앙 정부에 귀속되는 나머지 4%포인트의 세수는 기초연금과 고령자 의료, 고령자 요양 등 3개 사회보장 분야에만 투입하도록 예산 총칙에서 규정하고 있다.

올해 예상되는 소비 세수는 총 12조1000억 엔 정도다. 이 가운데 지방 배분액을 제외한 전액을 3개 사회보장 분야에 투입해도 약 9조8000억 엔이 부족해 빚(국채 발행)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

◇ 인상까지는 ‘첩첩산중’ = 민주당 내에서는 간 총리가 너무 앞서 나간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자칫 정권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는 세금 인상 문제에 대해 신중한 당론 결집 과정 없이 총리가 독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대 선거에서 세금 인상을 내건 정당이 승리한 사례가 거의 없다는 점도 민주당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났다. 향후 논란은 구체적인 인상 폭과 시기, 용도 등에 집중될 전망이다. 현행 5%인 소비세를 1%포인트 올리면 세수는 약 2조5000억 엔 증가한다. 따라서 5%포인트 올릴 경우 약 12조5000억 엔 정도 세수가 늘어난다.

2010년도 국가 예산에서 연금·의료·노인요양 등 사회보장 3개 분야 지출액은 16조6000억 엔이다. 하지만 약 9조6000억 엔인 소비세 수입 가운데 지방 배분액을 빼면 국가에 순수하게 들어오는 세수는 6조8000억 엔에 불과하다.

약 10조 엔 정도가 부족하다. 여기에 사회보장비의 연간 자연 증가액은 1조 엔에 달한다. 따라서 당장 소비세를 5%포인트 올려도 앞으로 5∼10년 후에는 다시 소비세를 인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소비세 인상 시기는 일러야 2012년 하반기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여론 수렴과 입법 작업에 시간이 걸리고 유예 기간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소비세 인상은 수요를 위축시켜 경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타이밍’이 중요하다.

세금 인상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큰 서민들을 배려하는 정책도 뒤따라야 한다. 간 총리가 추진하는 소비세 인상이 탄력을 받기 위해서는 당장 임박한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해야 한다.

참의원 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간 총리는 책임론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 경우 소비세 인상론도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 내각 지지율 하락 = 간 나오토 총리가 지난주 ‘소비세 인상’ 방침을 밝힌 후 내각 지지율은 하락세를 보였다. 아사히신문이 지난 6월 19~20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간 내각에 대한 지지율은 50%로 1주일 전의 59%에서 9%포인트 하락했다. 간 총리가 밝힌 ‘소비세 10% 인상론’에 대해 ‘평가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50%로 ‘평가한다(39%)’는 대답을 크게 웃돌았다.

아사히신문은 간 총리의 소비세 인상 발언이 세금 인상을 싫어하는 유권자들의 이반을 불렀다고 풀이했다. 소비세 인상 자체에 대해서는 ‘찬성’이 46%로 ‘반대(45%)’와 비슷했다. 그러나 소비세 인상 논의가 급류를 타면서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비세 인상 발언이 지지율 하락으로 나타나자 간 총리는 서둘러 진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간 총리는 6월 20일 요코하마시 가두연설에서 소비세 인상과 관련, “계속 나라 빚(국채 발행)을 늘려 그리스처럼 재정 파탄을 부를 것인지, 국민이 조금씩 부담을 나눠 사회와 국가를 확실히 안정시킬 것인지의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소비세를 올리더라도 저소득층에 대해서는 세금 환급과 경감 세율 등을 통해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소비세 인상 논쟁이 오는 7월 참의원 선거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 확실하지 않지만 현재는 민주당 지지율이 제1 야당인 자민당을 압도하고 있어 민주당의 무난한 승리가 예상된다.

하지만 과거 소비세 인상을 내걸었던 정권은 여지없이 선거에서 고전하거나 패했다. 자민당의 오히라 내각은 1979년 1월 일반 소비세(5%)를 도입하기로 결정한 후인 그해 10월 실시된 중의원 선거에서 과반수 의석 획득에 실패했다.

나카소네 내각은 1987년 판매세(5%)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가 그해 4월 지방선거에서 참패해 법안을 폐기했다. 하시모토 내각은 1997년 4월부터 소비세를 5%로 올렸다가 다음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 대패했고, 결국 하시모토 총리가 퇴진했다.

차병석 한국경제 도쿄 특파원 chab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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