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fessional Life] “15초 동안 귀 기울여 보시겠어요?”

김자현 광고 음악 감독

웬만한 대중가요보다 CF 속 음악들이 더 많은 인기를 누리는 시대다. 이 덕분에 요즘은 가요계 못지않게 실력 있는 음악인들이 포진하고 있는 곳이 광고 음악계이기도 하다.

광고 음악 감독 김자현 씨는 요즘 가장 주목받는 광고 음악인 중 한 명이다. 월드컵 시즌이어서인지 TV만 틀면 다양한 월드컵 응원 음악들이 들려온다.

그중에서도 장동건·싸이·김장훈 등이 등장해 대규모의 응원 세리머니를 펼치는 SK텔레콤 CF(Commercial Film:광고) 속의 ‘고웨스트(Go-West)’ 음악은 ‘펫 숍 보이스’의 노래 ‘Go-West’를 토대로 편곡된 음악이다.

이 음악을 담당한 이가 바로 유연한 발상과 틀에 박히지 않은 사운드로 인정받고 있는 뮤직&사운드 디자이너 회사인 ‘닥터 훅(Dr. Hook)’ 음악팀의 김자현 음악감독이다.

“광고주가 선정한 광고 대행사들의 기획과 콘티, 전체 광고 시안에 맞춰 CF에 쓰이는 음악들을 작곡하거나 기존의 곡을 CF에 맞도록 편곡하는 게 바로 제가 하는 일이죠.”

광고 음악의 매력에 사로잡히다

찰랑거리는 긴 생머리에 음악 이야기를 할 때 유난히 더 눈이 반짝이는 김 감독은 언뜻 봐선 아직도 대학생처럼 보일 정도지만 그 가냘픈 외모와 달리 창의적인 발상을 중독성 있는 광고 음악으로 승화하는 실력파 광고 음악 감독으로 정평이 나 있다.

올해 초 장동건·비·신민아 등의 톱스타가 “눈이 작아 고민이야? 눈이 작아 매력이야~”라는 식으로 불렀던 SK텔레콤 CF의 일명 ‘나답게 송’, 요즘 가장 중독성 있는 CF송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원캐싱 송’, 배우 신세경과 다니엘 헤니가 호흡을 맞춰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려는 남녀의 설렘을 그려 호평을 받았던 LG싸이언 카페폰 CF에서의 감미로운 허밍송, 독특한 구성과 컬러의 비주얼에 못지않은 리듬감이 귀를 사로잡았던 ‘현대카드 레드카드’와 ‘현대카드 메이크 브레이크 메이크(make break make)’ 등이 바로 김 감독이 작곡한 음악들이다.

흡인력 있는 멜로디와 중독성 있는 울림으로 현재 단연 주목받는 광고 음악 감독이긴 하지만 원래 그녀의 꿈은 광고 음악 감독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음악이 좋았다.

평생을 음악인으로 살고 싶다는 꿈을 막연히 키웠고,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는 유학을 갖다 온 후 대중가요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싶다는 구체적인 청사진도 그려보았다.

“그 유학 자금을 모으기 위해, 또 대중음악에 대한 감각을 익히는 데도 도움이 되겠다 싶어 지금 회사에 들어왔는데 그만 광고 음악의 매력에 발목을 잡히는 바람에(웃음) 이렇게 계속 일하고 있네요.” 겉보기에 화려해 보였지만 광고 음악의 세계는 어느 하나도 만만치 않았다.

빠르게 변화해 가는 유행을 아우르면서도 때로는 유행보다 한발 더 앞선 감각으로 하나하나의 작품마다 고유의 개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워낙 눈 깜빡할 사이에 모든 것이 진행되는 광고계의 특성상 음악 작업에 할당되는 시간이 적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요즘에는 송(song) 작업이라고 해서 15초나 30초의 CF 분량을 넘어 완곡 형태를 띤 CF 음악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런데 그런 송조차 거의 하루 이틀 안에 광고주나 대행사의 의견을 수용해 광고 콘티와 비주얼에 맞아떨어지는 음악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지만 육체적으로도 많이 힘들죠.”

작업 기간이 짧아 작업 결과에 대한 피드백도 빨랐다. 말이 좋아 비평이고 수정 요구지 그야말로 사정없이 깨지는 일도 많았다.

“비평에 하나하나 상처받다 보면 이 일을 절대 못하죠. 얼굴에 철판을 깔고 상대방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도 상대방의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는 배짱이 있어야 해요.”

다른 무엇보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일이라는 게 한동안은 너무 힘들었다. 체력적으로 너무 힘이 부쳐 ‘왜 자신이 계속 이 일을 해야 하는지’ 회의감까지 들었을 정도다.

하지만 신기한 건 아무리 힘이 들어도 막상 완성된 CF 작품에서 흘러나오는 자신의 음악을 듣다 보면 매번 그 모든 힘들었던 과정을 한순간에 씻어버릴 정도로 너무나 짜릿한 감격을 안겨준다는 사실이다.

“2004년에 입사한 후 첫 번째로 작업한 작품은 30초짜리 CF에서 배경음악처럼 쓰인 2~3초짜리 짧은 음악이었어요. 그것도 지나가듯이 언뜻 흘러나오는 음악인데,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저는 알잖아요. 그걸 제가 만든 거라는 것.

아무도 몰라줘도 저 혼자만이라도 광고를 볼 때마다 계속 뿌듯해지는 거죠. 저거 내가 만든 건데….(웃음) 그 매력 때문에 바깥바람 한번 제대로 쐬지도 못하고 그저 작업실과 녹음실에 매달려 있어야 하는 지금 같은 생활도 참고 견딜 수 있는 것 같아요.”

힘들지만 힘든 과정까지 그대로 즐기려는 마음으로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했다. 특히 다양한 장르에 걸쳐 많은 음악을 듣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광고 음악 일을 하려면 듣는 귀가 제일 중요한 법이거든요. 트렌디한 광고의 특성을 음악으로 반영하기 위해서는 장르와 시대를 가리지 않고 많은 음악을 들어야 하죠. 그런 노력들이 좋은 결과를 낫게 되는 것이고요.”

그런 노력들 덕분에 ‘닥터 훅’의 음악팀과 그녀가 작업한 CF 음악들은 여느 광고 음악보다 훨씬 트렌디하면서도 한방, 즉 임팩트가 있다는 평가를 종종 들어왔다.

“그리고 또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여자가 만든 곡 같지 않다는 거였어요.” 음악만 들어도 남자가 만들었는지, 여자가 만들었는지 느낌이 온다는 사람들이 많단다.

“예전부터 그런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남자는 파랑색, 여자는 빨강색이라고. 그래서 남자와 여자가 똑같은 보라색을 보고 작업을 해도 남자가 만든 결과물은 남보라에 가까운 진한 보라색을 띠는 반면 여자가 만든 결과물은 연보라에 가까운 색을 띤다고.” 하지만 김 감독이 작업한 광고 음악에서는 그런 한계나 특성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게 중평이다.

좋은 음악인 되고 싶어

“여자니까 멜로디 중심의 서정적인 음악을 잘할 것이라는 건 그야말로 편견이죠. 서정적이든 강렬하든 그 광고에 가장 잘 맞고, 필요로 하는 분위기와 느낌을 가장 잘 살리는 게 중요한 거 아닌가요?”

지금이야 좀 많이 흔해졌지만 클래식과 힙합, 일렉트로닉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크로스오버하기도 하고 피아노를 이용해 드럼 소리와 같은 효과를 주는 등 좀더 다양한 음악 작업을 시도했던 것도 단순히 자기 개인의 음악적 욕심 때문만은 아니다.

“광고주와 광고를 만드는 대행사의 의견을 적극 수용한, 광고를 가장 잘 살려줄 수 있는 음악이 제일 좋은 광고 음악이라는 사실을 먼저 염두에 두고 그 제한된 조건 안에서 남과는 다른 결과로 광고주는 물론 그 광고를 보는 시청자들까지 모두 만족시킬 수 있어야 좋은 광고 음악가가 아닐까요?” 그렇다고 해서 음악인으로서의 꿈이나 욕심까지 모두 지운 건 아니다.

“친한 친구들 중에 대중가요 작곡자들도 많이 있는데, 지금도 가끔 함께 작업하자는 연락이 종종 오거든요.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아요. 현재는 그냥 지금까지처럼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 제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싶어요.

그러다 언젠가 제 자신의 음악 세계가 좀 더 가다듬어지고 나면 좋은 광고 음악을 넘어 좋은 음악으로 인정받는 ‘음악인’이 되고 싶어요.”

김자현 광고 음악 감독

약력 : 1978년생. 2001년 한양대 작곡과 졸업. 2004년 닥터훅(Dr.Hook) 입사. 주요 작품으로 SKT ‘나답게 송’, ‘싸이언 카페폰’, 라세티 프리미어, 현대카드 레드카드, 원캐싱 송, 레모네이드 스위티에이드 송(이상 작곡)과 SKT 월드컵송(Go West), 기아자동차 쏘울(비틀즈 오블라디오블라다), 박카스(국민체조음악), 아시아나항공(Lover’s Concerto, 이상 편곡) 등이 있다. 현재 닥터훅 음악팀 실장으로 재직 중이다.

김성주 객원기자 helieta@empal.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