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d] 세계경제, 이머징 국가 위주 ‘재편’

이머징 마켓 ‘채권형 펀드’ 투자 전략

글로벌 금융 위기는 몇 년 후 일반 투자자들에게는 ‘마이너스 50%의 펀드 수익률이나 환율 급등으로 기러기 아빠들이 힘들었다’는 정도로 기억될 것이다.

2003년 카드 사태가 대학교나 극장 앞에서 신용카드를 현금 1만 원이나 영화 예매권과 함께 그 자리에서 발급받을 수 있었던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한국이나 아시아가 제한적으로 겪었던 1997년 외환 위기나 카드 사태와 달리 글로벌 금융 위기는 세계금융사에서 세계경제의 패권 구도를 바꿔 놓은 사건으로 남겨질 것이다.

단순히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미국 대형 은행들이 부도가 났다거나 미국 경제가 어려워졌다가 아니라 글로벌 금융 위기를 계기로 미국과 유럽이 쥐고 있던 경제 패권이 중국을 비롯한 기타 이머징 국가들로 분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YONHAP PHOTO-0490> (100430) -- SHANGHAI, April 30, 2010 (Xinhua) -- Spectacular fireworks explode over the World Expo Park during the opening ceremony for the 2010 World Expo held in Shanghai, east China, April 30, 2010. (Xinhua/Cheng Min) (kh)/2010-05-01 09:50:24/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금융 위기와 최근 유럽 재정 위기로 선진국 펀더멘털에 대한 불신감은 높아졌지만 이머징 국가들은 높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과 저축률, 우수한 재정 건전성, 안정된 외화보유액, 그리고 풍부한 노동력과 천연자원을 기반으로 하는 성장 가능성 등 다방면에서 선진국을 앞서고 있다.

즉, 금융 위기를 계기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머징 국가는 과거와 같이 단순히 투자 포트폴리오에 끼워 넣을 수도 있고 끼워 넣지 않아도 무방한 대안 투자처가 아니라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투자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동시에 현재 글로벌 금융시장은 리스크에 매우 민감한 상태로 높은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주식을 위주로 이머징 국가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유럽발 재정 위기가 해결되고 세계 금융시장이 자신감을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채권 위주의 투자, 그리고 몇몇 이머징 국가에 분산 투자할 수 있고 경기 사이클에 크게 민감할 필요 없는 적립식 펀드 투자가 리스크를 최소화 하고 이머징 국가 투자에 접근할 수 있는 방안이다.

중국 ·브라질 채권 수익률 연 8∼9%

선진국들의 금리 인하로 선진국 국채 수익률은 1~3% 안팎에 머무르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반면 중국과 브라질 등 이머징 채권 수익률은 8~9%에 이르고 있다.

탄탄한 펀더멘털과 매력적인 금리 수준이 글로벌 투자금을 이머징 채권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2009년 하반기부터 글로벌 투자금이 본격적으로 이머징 채권에 집중되고 있다.

올 들어 6월 초 현재까지 총 1402억 달러(약 18조 원)의 투자금이 이머징 채권형 펀드에 유입된 것으로 집계됐다. 유럽 재정 위기가 본격화된 5월에도 이머징 채권형 펀드에는 13억2000만 달러(약 1조6000억 원)가 순유입된 반면 동기간 이머징 주식형 펀드에서는 자금 유출입이 반복됐다.

선진국 채권과 이머징 채권 간의 금리 차이를 나타내는 이머징채권지수(EMBI) 스프레드는 2008년 11월 말 718bp(1bp=0.01%)에서 6월 현재 336bp까지 좁혀졌다.

이는 상대적으로 이머징 채권의 신용 리스크가 축소됐고, 이에 따라 이머징 채권으로 투자 수요가 집중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머징마켓채권지수의 연평균 수익률은 10.5%로 다른 주요 채권지수는 물론 신흥국 주식에 투자하는 MSCI 이머징주식지수보다 연평균 3% 이상 높다.

국제금융연구원(Institute of International Finance)은 이머징 시장의 자금 흐름 전망과 관련해 국내외에서 다수 인용되는 민간 연구 기관이다. 이 기관이 발표하는 자료인 ‘이머징 시장 자본 흐름(Capital Flow to Emerging Market Economies)’에 따르면 2010년에 이머징 시장에 대한 전체 민간 자본 흐름(FDI, 주식 투자, 채권 투자, 신용 포함)은 2009년 3436억 달러에서 2010년 6718억 달러로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2010년 4월).

증시로의 자금 유입 규모는 작년 822억 달러에서 올해 709억 달러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한 반면 2009년 크게 감소했던 외국 직접투자(FDI)와 채권 등의 부문이 2010년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기 회복세는 펀더멘털 강화 측면과 투자자 입장에서 반길만한 일이지만 경기 회복 과정의 수순인 금리 인상 등은 단기적으로 채권 투자의 매력을 약화시킨다. 올해만 감안해도 상반기보다 하반기 자금 흐름이 불확실하다.

물론 유럽 재정 위기에 따라 적어도 2개 분기 정도는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리 인상이 가시화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상반기 이익 전망이 하반기 이익 전망보다 가시적이기 때문에 앞으로 서너 달은 이머징 강세 기조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이 가능하다.

그러나 4분기 이후 FRB의 긴축 전환 압력이 높아질 것이고 더블 딥에 대한 우려가 커질 것이기 때문에 이머징 시장에 유입될 수 있는 유동성이나 채권 금리 측면에서 보수적인 시각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경기 회복보다 유럽 재정 위기 심화로 초점이 맞춰진다면 그 또한 보수적인 시각 유지의 이유가 될 것이다. 만약 위기가 심화돼 그리스뿐만 아니라 포르투갈·스페인·이탈리아·영국으로 번지면 글로벌 경기는 예측할 수 없는 국면에 접어들게 될 것이다. 글로벌 유동성 집중으로 일부 이머징 국가에서 버블이 감지되고 있는 점 또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지역적으로 펀더멘털을 체크해 보면 2009년에는 이머징 주식 및 통화 수익률의 승자가 중남미·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원자재 수출국이었던 반면, 2010년에는 선진국 민간 소비 회복 및 이머징 내수 확대에 힘입어 아시아 소비재 수출국의 성과가 좋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위안화·원화 등의 통화 강세 압력이 커질 것으로 보이며 환차익을 노리는 핫머니 유출입에 따라 변동성도 커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러시아는 지난 2009년 7월 이후 소비자물가지수(CPI) 하락세에 따라 브릭스(BRIC’s) 내 여타 국가들과 달리 금리 인하 사이클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 경제에서 원유 수출 비중이 절대적인데, 최근 재정 위기와 중국 긴축에 대한 우려로 원자재 가격이 조정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경기 확장기에 원유 실수요가 뒷받침돼 완만한 가격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원유와 금리 인하 기조가 유효한 가운데 연내 경기 회복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연말께 리스크 부각될 수도

종합해 보면 3~4개월 내에는 이머징 국가 채권의 높은 수익률과 재정 위기 장기화에 따른 출구전략 지연으로 유동성 유입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점에서 이머징 채권 투자에서 높은 수익률을 기대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연말에 다가갈수록 유동성 집중으로 국지적인 버블과 출구전략이 진행될 때 금리 인상에 따른 수익률 저하, 혹은 위기 장기화에 따른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에 따라 다운사이드 리스크가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으로 이머징 채권 투자에 접근한다면 간단하게 현재의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와 이머징 국가의 경제 펀더멘털에 따른 자금 유입 트렌드 및 통화 강세 등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약력 : 1982년생. 2004년 연세대 생명공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국제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삼성경제연구소를 거쳐 2007년부터 SK증권에서 채권 분석을 맡고 있다.

이하정 SK증권 애널리스트 Hajeong@sk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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