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절약도 좋지만…‘찜통’ 정부 청사

경제부처 24시

“기자실은 에어컨 돌아가니까 시간 나면 한번 놀러오세요.”

요즘 과천 정부 청사 출입 기자들이 공무원들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는 말이다. 공무원을 만나고 싶으면 사무실로 찾아가도 되고 점심이나 저녁 약속을 잡아도 되는데 굳이 공무원더러 ‘기자실에 놀러오라’는 말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여름철 정부 청사에서 가장 시원한 곳이 기자실이기 때문이다.

낮 최고기온이 섭씨 영상 30도를 넘을 정도로 날씨가 더워졌지만 과천 정부 청사는 6월 중순까지 에어컨을 틀지 않았다. 정부와 공공기관 건물의 여름철 냉방 기간을 72일로 제한한 에너지 절약 시행 지침에 따른 것이었다.

작년까지는 1년 중 90일 동안 냉방을 할 수 있었지만 기름 값이 비싸지고 이명박 대통령이 녹색 성장을 국정 모토로 내세우면서 기간이 18일이나 단축됐다. 정부가 에너지 절약을 솔선수범하자는 취지에서 내린 결정이다.

이런 방침의 유일한 예외가 기자실이다. 기자실은 한낮 기온이 섭씨 영상 25도를 오르내리기 시작한 5월 하순부터 냉방을 시작했다. 반소매 셔츠만 입고 있으면 오히려 춥게 느껴질 때도 있다. 기자들은 비록 정부에 출입하고 있지만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 손님’으로서 특별 대우를 받고 있는 셈이다.

6월 하순부터는 청사 전체에 냉방을 시작했지만 시원하게 느껴지는 수준은 아니다. 냉방 기준 온도가 섭씨 영상 28도로 꽤 높기 때문이다. 규정상 실내 온도가 28도 밑으로 내려가면 냉방이 중단된다. 이 때문에 정부 청사에서는 사무실 창문은 물론 출입문까지 활짝 열어놓고 있는 풍경을 자주 볼 수 있다.

각 청사의 꼭대기 층은 더하다. 그렇지 않아도 더운데 한낮이면 태양열이 직접 내리 쬐 창가 자리에서는 일은커녕 그냥 앉아 있기도 힘들 정도다. 꼭대기 층에 있는 부서의 직원들은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창문부터 열어젖히는 게 일이다.

꼭대기 층 창가 자리는 앉아 있기도 힘들어

점심식사하러 가는 공무원들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2009.06.30
국장들은 회의나 국회 출석 등 외부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면 한 10분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서 더위를 식히곤 한다. 그래야 다른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국장들은 개인별로 사무실이 있어 잠시 일손을 놓고 쉴 수도 있지만 과장 이하 직원들은 그럴 여건도 안 된다.

규정은 규정이고 어지간히 덥게 느껴지면 에어컨을 틀어도 되지 않을까 싶지만 그렇게 하기도 어렵다. 행정안전부에서 불시 점검을 나왔을 때 규정 위반이 적발되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과천 청사에 근무하는 공무원들 사이에서 세종로 중앙 청사에 비해 차별을 당한다는 불만도 터져 나왔다. 세종로 청사가 먼저 냉방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건물이 낡고 오래돼 냉방을 해도 별로 시원하지 않다는 게 세종로 청사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의 변명 아닌 변명이었다.

시원하게 냉방이 되지 않아 집에서 선풍기를 가져와 책상 밑에 두고 더울 때마다 틀어놓는 직원들도 적지 않다.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냉방을 최소한으로 하는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개인별로 선풍기를 가져와 쓰고 있으니 에너지 절약 효과가 얼마나 되겠느냐는 불만도 나온다. 한 공무원은 “그럴 바에야 차라리 냉방을 충분히 하는 것이 에너지 절약을 위해서나, 직원들의 사기와 업무 효율을 위해서나 더 낫지 않겠느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나마 여름은 겨울보다 낫다는 게 공무원들의 얘기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냉난방에 제한이 있는 건 마찬가지지만 여름에는 개인별로 선풍기라도 갖다 놓고 틀 수 있는 반면 겨울에는 불이 날 위험 때문에 개인 전열기를 가져와 사용하는 것이 금지돼 있다.

정부 청사의 겨울철 난방기간은 42일에 불과하다. 온도도 섭씨 영상 18도를 넘을 수 없다. 정규 퇴근 시간인 오후 6시가 넘으면 난방이 끊겨 겨울철에 야근하면 손을 호호 불어가며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빈말이 아니다.

에너지 절약이라는 취지도 좋고 공무원들이 솔선수범하는 것도 좋지만 ‘더워서 일을 못하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엄격하게 냉난방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지나치지 않느냐는 얘기도 나온다.

민간 기업과 비교해도 정부와 공공기관의 에너지 관리 기준이 엄격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공무원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맡은 바 업무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민을 위하고 국가를 위하는 길이 아니겠느냐는 얘기다.

유승호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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