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iness Focus] 대기업 ‘눈독’…서울탁주·국순당 ‘수성’

막걸리 시장 판도 변화 오나

막걸리 시장이 ‘빅뱅’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2008년 국내 막걸리 시장은 약 3000억 원 규모였다. 작년 4200억 원으로 커진 데 이어 올해도 30.9% 늘어난 5500억 원 수준으로 전망된다. 오는 2012년에는 1조 원 돌파가 예상된다.

막걸리 업체들은 대개 중소 규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기업들이 쳐다보지도 않았던 곳이다. 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급성장하자 눈이 휘둥그레진 대기업들이 막걸리 시장을 넘보고 있는 것이다.

이미 체면을 버린 대기업들이 하나 둘 발을 담그기 시작했다. 지방 조주(造酒) 업체들도 슬슬 몸을 풀고 있다. 이대로라면 기존 판도가 크게 흔들릴 모양새다.


국내 막걸리 업체는 530여 곳이다. 대부분이 영세하다. 서울탁주제조협회(이하 서울탁주) 국순당 등 1, 2위 업체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김성훈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1, 2위 업체가 국내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 뒤를 지방 업체들이 추격하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올 1분기 기준으로 전국 시장점유율은 대략 서울탁주가 50%, 국순당이 20%, 수도권은 서울탁주 70%, 국순당 20%, 이동주조(현 포천막걸리) 10%로 추산하고 있다.

판도 변화의 가능성은 3가지다. 우선 대기업의 참여다. 대기업들이 당장 직접 생산에 뛰어들지는 않고 있다. 대신 자회사를 통한 중소기업 인수나 유통 대행 같은 우회적인 방법으로 속속 진입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전주 등 지역별 막걸리 업체 3~4곳과 계약, 7월부터 이들 막걸리의 국내 유통을 맡기로 했다.

이에 앞서 오리온은 자회사인 영화 투자·배급사인 미디어플렉스를 통해 ‘참살이탁주’를 인수했다. 농심과 샘표식품도 올 3월 주총에서 정관의 사업 목적에 ‘특정 주류 판매업’ 또는 ‘주류 제조 및 판매업’을 넣어 조만간 본격 진출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서울탁주·국순당, 대기업 참여 환영

진로와 롯데주류 등 소주 업계도 언젠가는 내수 시장에 발을 담글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진로는 지난 3월부터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진로막걸리’를 공급받아 일본과 미국 등으로 수출하고 있다.

롯데주류도 서울탁주의 ‘서울막걸리’를 일본 주류 대기업인 산토리의 유통망을 통해 일본 지역으로 수출할 계획이다.

물론 지방 소주사들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대기업들의 참여는 기존 시장 판도를 뒤흔들 수 있을까. 지방의 중소기업들은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관측된다.

지방의 영세한 막걸리 업체들은 브랜드 인지도가 약할뿐더러 유통망도 허술하다. 반면 지방의 소주 업체들은 해당 지방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이 적극 움직이면 영세 업체들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서울탁주와 국순당 등 막걸리 시장의 강자들은 타격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막걸리 시장에 관한 증권사 리포트를 보면 “대기업의 막걸리 시장은 국순당 같은 곳엔 기회”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현대증권은 “대기업은 자금력과 백화점·할인점 등 2차 영업 선에서는 강점이 있다”면서도 “주류 회사가 아닌 대기업은 술 제조 기술이 없고, 주류 제조 면허를 취득하는 것도 쉽지 않을뿐더러 막걸리 대량생산 및 표준화가 쉽지 않기 때문에 단기적 우려 요인은 아니다”고 분석했다. 미래에셋증권도 “서울탁주·국순당 등 시장독점자가 있기 때문에 대기업의 막걸리 시장 진출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탁주와 국순당은 오히려 대기업의 참여를 반기고 있다. 박상태 서울탁주 부장은 “(대기업의 참여로) 시장 파이가 커지는 것 아니냐”며 “나쁜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고봉환 국순당 홍보팀장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면서 “막걸리가 소주·맥주 중심의 주류 시장에서 확고하게 자리 잡을 수 있는 기회”라며 긍정적 전망을 내놨다.

그래서인지 업계의 관심은 1, 2위 업체인 서울탁주와 국순당의 판도에 쏠려 있다. 국순당의 상승세가 워낙 무섭기 때문이다. 국순당은 지난해 5월 유통기한이 30일인 ‘국순당 생막걸리’를 내놓은 후 1년 만에 3000만 병을 판매했다. 그리고 1분기에 이미 지난해 연간 매출을 뛰어넘었다. 국순당 관계자는 “올해 400억 원 이상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더욱이 유통기한을 늘린 것은 물론 냉장 물류 시스템을 구축, ‘생산 직후 냉장 보관-냉장 차량 운송-냉장창고 보관-소비자 판매’로 이어지는 유통망은 막걸리 업체 중 유일하게 국순당만이 갖추고 있다. 백세주로 다져온 유통 구조가 탄탄한 것도 강점이다.

백운목 대우증권 애널리스트는 “전용 도매점이 75개로 전국 음식점 영업이 가능하고 할인점·슈퍼마켓 등으로 유통망을 확대하고 있다”며 높은 점수를 줬다. 국순당 관계자는 “1~2년 내에 전국 점유율 30%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조심스럽게 예상했다.

전국 유통망 구축에 힘 쏟아

농림수산식품부는 10일 2010 남아공월드컵 16강 진출을 기원하는 16강 막걸리 선발대회를 서울 중구 필동 한국의집 취선관에서 열었다./김영우 기자youngwoo@hankyung.com20100510....
서울탁주도 전국 유통망 구축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서울탁주 제품은 이제까지 서울·경기 이외 지역에서는 일부 할인 매장이나 편의점을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팔렸다.

6월부터 전국 주요 음식점과 슈퍼마켓 등에서 살균 막걸리인 ‘월매막걸리’를 구입할 수 있다. 서울탁주는 또한 충북 진천에 장수주식회사라는 별도 법인을 설립해 제조 공장을 세우는 등 월매막걸리의 전국 보급에 나선다.

막걸리 시장이 급부상하면서 향후 판도를 좌우하는 요소로 품질과 마케팅을 꼽는 업계 관계자들이 많다. 일부 업체들이 국산 쌀로 만든 막걸리 생산에 나서면서 막걸리 시장이 그동안 저가 가격 경쟁에서 원재료를 비롯한 품질 경쟁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오는 8월부터 시행되는 막걸리 품질 인증 제도도 품질 경쟁을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생산된 막걸리가 유통 과정에서 상하지 않고 소비자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안전한 유통망도 중요해졌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마케팅의 중요성도 부각될 수밖에 없다. 국순당이 TV 광고를 시작한 것이 신호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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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막걸리 수출의 강자는

이동주조·국순당·진로 등 주도

막걸리 수출은 거침이 없다. 막걸리는 올 1분기에 340만 달러어치가 수출됐다. 작년 같은 기간(43만6000달러)보다 323%가 늘어났다. 최대 수출국은 일본이다. 전체 수출 규모의 87.5%다. 미국과 중국이 각각 6.8%, 3.5%로 뒤를 이었다.

막걸리 수출은 이동주조·진로·국순당 등이 주도하고 있다. 이동주조는 일본 내 오케이스토어·마인마트·사카카미 등 7000여 개 매장에서 연간 15억 엔(150억여 원)의 매출을 올리며 막걸리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 국순당은 지난해 50만 달러어치를 수출했다. 올해는 400% 늘어난 200만 달러를 예상하고 있다.

지난 3월부터 일본 전역에서 판매되고 있는 진로 막걸리는 지난 5월 말까지 일본 내 판매량 11만4000상자(상자당 8.4리터)를 기록, 올해 수출 목표 10만 상자를 이미 넘어섰다. CJ와 오리온 등의 대기업도 해외시장 공략에 적극 나설 예정이다.

최근 막걸리 시장에 진출한 CJ제일제당 관계자는 “한식 세계화 차원에서 막걸리의 해외 수출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북 청송 등 지자체들도 지역 막걸리 업체와 손잡고 해외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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