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철의 투자 X파일] 주식 투자도 ‘결혼 생활’과 같다

투기꾼과 투자자②

필자가 그간 만나본 성공한 투자자들은 일관된 공통점이 있다. 우량 기업에 장기 투자한다는 점이다. 얼마 전 대전 강연회에서 30년 주식 투자로 큰 부를 일군 투자자를 만났다. 지방대의 L모 교수인데 30년 동안 손절매를 단 한 차례도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교수의 박봉을 가지고 시작한 투자인데 주식 투자 자금만 수십억 원에 달하고 있었다.

필자가 쓴 ‘꿈의 기울기에 투자하라’에 소개한 원효로 할머니도 삼성전자에 30년 이상 투자해 수백억 원의 자산가가 된 분이다. 삼성반도체 시절 주당 8000원에 투자한 주식을 지금까지 줄기차게 보유하고 있다.

지난 30년간 증자와 배당을 감안하면 삼성전자가 200배 이상 올랐으니 당시 1000만 원을 투자했다면 20억 원이 됐고 1억 원을 투자했다면 200억 원이 된 것이다. 삼성전자의 주주들은 부자가 되지 않으려고 해도 떼밀려 부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 천리포수목원의 주인이었던 고(故) 민병갈(칼 페리스 밀러) 씨도 1990년대 초반 한국이동통신(SKT)을 액면분할 이전 기준으로 4만 원대부터 줄기차게 사 모아 큰 부를 일궜다. 그 주식이 불과 10년도 안돼 500만 원까지 올랐으니 최초 투자 시점 대비 125배나 오른 것이다.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그 주식을 사기 위해 주가가 폭락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그리고 그 주식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어떤 날은 단 1주를 산 날도 있었다고 한다.

주가가 오르는 날은 쳐다보지도 않다가 어떤 이유로 주가가 크게 하락하는 날은 콧노래를 부르며 저렴한 가격에 더 많은 수량을 거둬들인 것이다.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도 코카콜라와 제너럴일렉트릭(GE) 같은 주식을 40년 이상 보유해 왔다. 그 끈질긴 뚝심과 인내로 미국의 2대 갑부가 됐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뱅가드(Vanguard)의 창립자 존 보글(John Bogle)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성공 투자의 노하우를 이렇게 설파했다.

“젊어서부터 펀드에 투자하고 은퇴할 무렵에 그 뚜껑을 열어 보라. 그러면 부자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가슴 깊이 큰 공명을 일으키는 명언이 아닐 수 없다.

5년 만에 7배 번 L 사장의 비결

지난 5월 12일 상장한 삼성생명에 관한 숨겨진 일화를 소개한다. 지난 3~4년 전만 하더라도 장외에서 10만 원대에 불과한 주식이었다. 필자의 지인 중에 장외 주식거래를 전문으로 하는 L 사장이 있다.

그의 고객 가운데 한 분이 유독 삼성생명 주식을 선호한다고 들었다. 강남에서 음식점을 크게 경영하는 분인데 틈만 나면 삼성생명 주식을 구해 달라고 요구해 온다는 것이다.

어느 날 L 사장이 필자에게 부탁해 왔다. 삼성생명의 주식을 도저히 구할 수 없으니 혹시 삼성생명 직원 가운데 아는 사람이 있으면 우리사주라도 살 수 있는지 알아봐 달라는 간절한 부탁이었다.

사실 당시만 하더라도 조선주와 조선기자재 주식들이 주도주로 자리 잡고 오르는 국면이었다. 왜 유독 거래도 잘 되지 않는 장외 주식에 그토록 집착할까, 참으로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참으로 고지식한 투자자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 후 필자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지난 5월 삼성생명 주식 공모에 20조 원이 몰리고 공모가가 11만 원(액면분할 이전 기준으로 110만 원)으로 형성되는 것을 보면서 필자의 뇌리에 그간 잊고 지냈던 강남 음식점 주인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평균 15만 원대에 삼성생명 주식 수십만 주를 사 모았으니 불과 5년 남짓한 기간에 7배 가까운 수익을 거둔 것이다. 대단한 혜안과 뚝심, 그리고 인내를 지닌 투자자가 아닐 수 없다. 존경 받아야 마땅한 투자자다.

동시에 펀드매니저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고 자고(自高)했던 필자에게 큰 부끄러움과 깨우침을 주었다. 그가 그토록 삼성생명에 집착할 때 필자는 그 이유라도 알아보려는 노력은커녕 그의 우직한 아집과 집착을 폄훼하고 비웃지 않았던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한국에서 장기 투자를 하다간 낭패를 본다는 반론도 자주 접하곤 한다. 일견 일리 있고 맞는 지적일 수 있다. 지난 30년간 우리 주식시장에서 숱한 기업들이 퇴출됐으니 이들 기업에 장기 투자한 분들은 막대한 손실을 봤을 것이다. 무조건적인 ‘묻지 마 장기 투자’가 불러온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투자 대상을 잘 골라야 한다. 우리가 배우자를 고를 때 요모조모 따져보고 나와 평생을 같이할 수 있는 대상인지 심사숙고하듯이 주식 투자도 이런 자세로 임해야 실수를 줄일 수 있다. 그렇게 따지고 고르고 골라 결혼해도 중간에 헤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이 현실이다.

하물며 수많은 돌발 변수와 예기치 못한 경제·사회 환경을 뚫고 지속 가능한 성장 모델을 구축해 살아남는 기업, 그리고 오늘날의 삼성전자처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기업에 몇십 년 주주로 남아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아니 하늘에서 뚝 떨어진 행운이라기보다 좋은 기업을 내다볼 줄 아는 혜안과 중간에 변심하지 않고 그 기업과 끝까지 동고동락하면서 신뢰를 키워 온 믿음과 의리에 대한 보상이라고 보아야 한다.

참으로 아름답고 가슴 뭉클한 감동 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투자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참’투자인 것이다.

‘차트’는 과거의 실적일 뿐이다

오늘날 투자라는 미명을 뒤집어쓴 투기가 범람하고 있는 세태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단타로 대박을 일궜다는 사이비 고수들의 신화와 수익률 몇천%의 환상으로 유혹하는 이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투자자가 아닌 주식 투기꾼들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주식을 샀다 팔았다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기업의 장기 성장 과실에 동참할 수 있겠는가. 5일, 10일 이동평균선 매매를 하는 사람들이 기업의 가치와 수익을 논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도대체 어떤 기업의 가치가 5일, 10일 단위로 수시로 바뀔 수 있는가. 한국처럼 차트 전문가가 범람하는 곳도 드물다. 필자가 월가에서 만나 본 기술적 분석가, 즉 차티스트(Chartist)들의 입지나 보수는 기업의 가치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기본적 분석가(Analyst)에 비해 형편없었다.

그리고 기술적 분석은 주식 투자에서 보조적인 수단에 그치고 있었다. 한국처럼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차트로 시작해 차트로 마감하는 일부 보도 채널과 거기에 등장하는 자칭 전문가들도 스스로 자성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비정상적인 상황이 연출되도록 방치한 우리 모두는 어쩌면 투자의 허울을 뒤집어쓴 투기꾼들이 아니었는지 냉정하게 뒤돌아봐야 한다.

물론 주식시장에 참여하는 모두가 장기 투자자가 되고 가치 투자자가 될 수는 없다. 또 그렇게 된다면 주식시장의 메커니즘이 유지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데이트레이더(day trader)나 스캘퍼(scalper)와 같은 단기 매매자가 주식시장의 윤활유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문제는 우리 투자 사회가 너무도 많이 단타와 투기 쪽으로 경도돼 있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그간 주식 투자가 5% 게임이라고 배워 왔고 믿어 왔다. 다시 말하면 주식 투자에서 5%만이 성공하고 나머지 95%는 돈을 잃게 되어 있다는 것인데, 필자가 강연회에서 투자자들을 만나본 결과 5%는 고사하고 투자에 성공하는 비율이 1%에도 크게 못 미치고 있었다.

특히 20년, 30년 장기 투자에 성공했다는 케이스는 가물에 콩 나듯 매우 드문 것이 현실이다. 그동안 우리 경제의 발전과 기업의 성장 신화를 돌아보면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는 달라져야 하고 바뀌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 투기를 접고 투자를 해보자. 차트와 거래량 분석에 매달리는 시간의 반의반만이라도 기업의 가치를 분석하고 연구하는 데 쏟아보자. 우량 기업 가운데 미래의 성장성과 수익성이 탁월한 기업을 찾아내 5년, 10년 장기 투자해 보자.

적금을 붓듯이 적립식으로 그런 기업의 주식을 꾸준히 사 모아 나가자. 그 주식을 보다 싼 가격에 사 모으기 위해 주식시장이 폭락하기를 학수고대해 보자.

무엇이 그리도 무섭고 두려워 밤잠을 설쳐가며 미국의 나스닥 선물시장의 등락에 목을 매는가. 대한민국의 투기꾼들이여, 이제 진정한 투자자로 거듭나자. 품위 있고 존경받는 아름다운 부자를 꿈꾸어 보자.


최남철 증권 칼럼니스트

‘꿈의 기울기에 투자하라’의 저자. 1988년 국민투자신탁 펀드매니저를 시작으로 푸르덴셜자산운용, 마이애셋자산운용 거쳐 현재 새로다시투자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최남철 증권 칼럼니스트 serodas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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