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효찬의 문사철(文史哲) 콘서트] 아버지의 사랑에는 조건이 있다

어머니와는 다른 아버지의 ‘사랑의 기술’

“아버지는 인공적 사물, 법률과 질서, 훈련, 여행과 모험 등의 세계를 대표하고 있다. 아버지는 어린이를 가르치는 사람이고 어린이에게 세계로 들어서는 길을 지시해 주는 사람이다.”

이는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 나오는데 자녀, 특히 아들이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는 이유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프롬은 그러나 어머니는 아버지와 다른 존재로 분석한다.

먼저 어머니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무조건적’이라고 강조한다. 어머니가 갓난애를 사랑하는 것은 이 애가 어떤 특수한 조건을 만족시켜 주었거나 특별한 기대를 충족시켜 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애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우리를 탄생시킨 고향이고 어머니는 자연이고 대지이고 대양이다.


반면에 아버지의 사랑은 ‘조건’이 있는 사랑이다. 부성애의 원칙은 ‘너는 나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기 때문에, 너는 네 의무를 다하고 있기 때문에, 너는 나를 닮았기 때문에,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프롬은 이러한 기능이 사회적·경제적 발달과 관련된 기능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사유재산이 성립되고 사유재산이 아들에게 상속될 수 있게 되었을 때 아버지는 재산을 남겨줄 만한 아들을 원하기 시작한다.

프롬은 이어 어머니는 때로는 사랑이라는 구실로, 때로는 의무라는 구실로, 어른이 된 자녀까지도 자기 자신 속에 묶어 두려고 한다고 지적한다. 이를 프롬은 어머니의 아이에 대한 파괴적이고 흡입하는 측면이라고 한다.

이때 어머니는 자녀에게 생명을 줄 수도 있고 생명을 빼앗을 수도 있다. 프롬은 이를 자궁과의 관계로 비유한다. “정상적인 정신의 본질이 자궁으로부터 세계 속으로 성장하는 것이라면 심각한 정신질환의 본질은 자궁에 끌려서 자궁 속으로 흡입되는 것이고 따라서 생활로부터 제외되는 것이다.” 늘 어머니 곁을 맴도는 이른바 ‘마마보이’의 기질과 행태를 들추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아버지는 멘토이자 경쟁 상대

프롬은 아버지의 사랑의 본성에는 ‘복종’이 주요한 덕목이 된다고 강조한다. 복종하지 않으면 그 벌은 아버지의 ‘사랑의 철회’다. 아버지의 사랑은 조건부이기 때문에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얻기 위해 무슨 일인가 할 수 있고 또 노력해야 한다. 아버지의 사랑, 아버지의 권위와 지도를 요구하기 시작하는 시기는 6세 이후라고 한다.

말하자면 어린아이, 특히 아들은 이제 막 한 인간으로서 ‘기억의 인생’이 시작되는 시기부터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한 ‘투쟁’을 한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아이에게 육체적으로 홀로 서게 할 수 있게 해 주는 존재라면 아버지는 아이가 사회적으로 홀로 서게 할 수 있게 해 주는 멘토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녀가 성장하면 아버지를 잠재적인 경쟁 상대로 인식하기도 한다.

“아버지 필립이 주요 지역을 점령했다거나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알렉산더는 기뻐하는 대신 친구들에게 아버지가 많은 업적을 계획해 자신과 친구들 세대에서 위대하고 훌륭한 공훈을 쌓을 기회를 남겨 놓지 않을 것이라고 불평하곤 했다.

쾌락이나 부보다 업적과 명예를 더 소중히 여긴 그였기에 아버지에 의해 자신이 미래에 성취할 목표들이 줄어들고 방해 받는다고 생각했다.”

세계적인 ‘정복왕’ 알렉산더 대왕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성공(영토 확장)이 상대적으로 자신의 중요성을 감소시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아시아를 정복해 대제국을 만든 것은 어쩌면 아버지를 넘어서겠다는 심리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아이는 무의식중에 아버지를 이겨보겠다는 심리가 내재해 있다고 한다. 어려서는 아버지를 존경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아버지를 뛰어넘어야 할 존재로 여긴다는 얘기다.

여기에 피카소의 사례가 회자된다. 화가였던 피카소의 아버지는 아들의 교육을 위해 헌신했지만 자신의 생업이나 인생의 목표를 팽개칠 정도였다. 피카소는 화가로 명성을 얻자 아버지를 적대시하기 시작했다.

결국 피카소는 자신의 성마저 어머니 성인 ‘피카소’로 바꿨다. 피카소 아버지의 이름은 호세 루이즈 블라스코인데, 원래 성은 ‘블라스코’다.

아이들은 커서 자신만의 세계를 갖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아버지의 품을 벗어나려고 한다. 이때 두 가지 유형이 나타난다.

한 아이는 아버지를 증오하고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하는 유형이고, 다른 유형은 아버지를 존경하며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하려는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과 피카소가 전자에 해당한다면 후자에는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을 들 수 있다.

빌 게이츠는 강연 중 “자신의 역할 모델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서슴없이 “부모님”이라고 대답한다. 그는 “편안한 일에만 안주하지 않도록 해 준 부모님 덕분에 리더십을 기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워런 버핏도 오늘날 자신을 ‘투자가의 전설’로 있게 한 사람은 아버지 하워드 버핏이라고 주저 없이 말한다. 하워드 버핏은 주식 중개업을 하다 국회의원(하원)이 되어 1942년부터 1952년까지 4번이나 하원의원을 지낸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하워드 버핏은 진지한 성격에다 강직한 성품을 지닌 인물이었다. 하원 의원 세비가 연간 1만 달러에서 1만2000달러로 인상되자 인상분 2000달러를 재무부에 반납한 적도 있었다. 워런 버핏이 ‘검소한 부자’의 대명사가 된 것은 검소하고 강직한 아버지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식구가 넷이라면 가족의 성격은 다섯 개다. 왜냐하면 집합으로서의 가족도 하나의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가족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생각하라.”

아버지의 존재감은 자녀의 일생을 좌우한다

‘위대한 가족을 만드는 7가지 원칙(원제 Family first)’의 저자 필립 맥그로는 가족을 전체로 묶는 하나의 시스템이 있다면 위대한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작 맥그로는 알코올 중독자였던 아버지 때문에 어린 시절 많은 상처를 받았다고 고백한다.

“아버지가 술 마시는 모습 자체도 싫었을 뿐만 아니라 나와 가족들을 대하는 술 취한 아버지의 행동이 지독하게 혐오스러웠다.

그런 아버지 앞에서 나는 소극적이고 조심스러우며 냉소적이 되었다. 나는 그러한 내 성격이나 태도, 두려움이 지금 내 가족에게 전이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옛날의 그 기억들을 머릿속에 따로 묶어 두고 현재의 나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조심해 왔다.”

맥그로는 아버지는 ‘나쁜 아버지’였지만 동시에 훌륭한 직업 윤리의 모범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위험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헌신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훌륭한 면을 보고 자란 덕분에, 또 그의 부정적인 면을 닮지 않으려고 노력한 덕분에 카운슬러로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맥그로는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부부·연인·가족 간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라이프 카운슬러로 명성을 얻기 시작해 미국 최고 인기 토크쇼인 ‘닥터 필 쇼’의 진행을 맡고 있다. 그의 성공은 ‘두 얼굴’의 아버지 덕분(?)인 셈이다.

아버지는 죽어서도 자녀에게 영향을 미치는 그런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 요인(Father Factor)’의 저자 스테판 폴터는 지금 성인이 된 자녀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는 문제의 근원을 추적해 보면 아버지의 영향이 아주 크다면서 이를 ‘아버지 요인’이라고 설명한다.

인간관계나 직장에서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말조차 아버지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말 중에는 특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이 유독 많다. 프롬의 지적처럼 아버지는 어린애에게 세계로 들어서는 길을 지시해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자녀들을 늘 가르치려고 한다.

아프리카 야생동물 서식지 세렝게티의 동물학자들은 짐승들의 우두머리의 특징을 연구한 끝에 우두머리는 자신의 무리와 강한 동물 사이에 서서 무리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동물의 세계에서도 “리더는 항상 ‘위험’으로 향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아버지도 동물의 세계에서처럼 언제나 가족을 위해 위험으로 향하고 있는 존재가 아닐까(그런데 철이 들 때쯤이면 아버지는 세상에 없다).

약력 :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동 대학원 비교문학 박사. 경향신문 기자를 거쳐 현재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강의를 하는 한편 자녀경영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 / 문학박사 roma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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