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자금 마련보다 ‘평생 일거리’ 찾아라

40대 명퇴 바람…인생 2모작 빨라진다

대한민국의 ‘40대 가장’은 슬프다. 아내와 자식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지는 이미 오래.
회사에서의 형편도 녹록지 않다.

각종 스펙으로 무장한 후배들이 언제 내 자리를 차지하고 앉을지 불안하기만 하고 선배들도 제 자리 챙기기에만 급급할 뿐 후배의 고민 같은 걸 들어줄 시간은 없다. 이래저래 치이는 삶에 늘어나는 건 빈 소주병 수와 허리띠 구멍뿐이다.

한줄기 빛이 쏟아져도 시원치 않을 판에 서글픈 40대의 삶을 더욱 주눅 들게 하는 뉴스가 들려온다. ‘40대 명퇴’ 바람이다.

‘오륙도(50~60대에도 계속 근무하면 도둑놈)’나 ‘사오정(40~50대면 정년퇴직)’ 같은 말들이 횡횡했던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시절이 아니더라도 이제 명퇴는 흰머리 희끗한 중년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국세청이 지난 2008년 근로소득 연말정산 지급명세서 신고 현황을 분석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30대의 경우 절반이 넘는 52.4%가 근로소득자, 즉 직장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828만 명 중 434만 명이 정기적으로 월급을 받는 샐러리맨이란 뜻이다. 하지만 40대로 오면 사정이 달라진다. 전체(836만 명)의 40.3%(337만 명)로 근로소득자 비율이 급감한 것.

50대로 오면 근로소득자의 비중이 30.1%(602만 명 중 181만 명)에 불과하다. 명퇴와 정년퇴직이 이뤄지는 50대의 경우 이런 분석 결과가 이해되지만 문제는 40대에 있다.

특히 전체 인구수를 보면 문제의 심각함이 더 잘 드러난다. 40대의 전체 인구수가 30대보다 많음에도 불구하고 직장에 다니는 사람의 수는 30대가 오히려 97만 명이나 많았다.

샐러리맨에게는 거의 해당 사항이 없는 ‘종합소득세’ 현황을 보면 40대의 경우 120만 명이 신고 대상이었다. 30대의 88만 명에 비해 32만 명이나 많다. 30대보다 40대에 자영업을 하는 사람이 급증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통계다. 전체 40대 인구 중 종합소득세를 납부하는 비율은 14.3%였다. 30대(10.6%)는 물론 50대(12.8%)보다 높다.

근로소득세를 내는 사람의 수가 줄고 반대로 종합소득세를 내는 비율이 높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직장을 그만두고 개인 사업 전선에 뛰어드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40대 명퇴 바람이 태풍 수준이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생 2모작’에 나선 40대들의 소득수준은 어떨까. ‘김 과장’에서 ‘김 사장’으로 승진했지만 주머니에 든 돈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2008년 근로소득자 평균 소득은 2580만 원이다.

하지만 종합소득세 신고자의 평균 소득은 2370만 원에 그쳤다. 이런 경향은 30~50대가 모두 비슷했다. 특히 40대의 경우 근로소득자와 종합소득세 신고자의 평균 소득이 각각 3400만 원과 2460만 원으로 940만 원 차이가 났다.

이는 30~50대 연령층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종합소득세 신고자의 평균 소득은 60대 이후가 돼야 근로소득자보다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직장을 떠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는 게 나쁠 건 없다. 문제는 제대로 준비가 된 퇴직 사례가 드문 데 있다. 대부분의 40대 명퇴는 단기간에 걸쳐 이뤄진다. 퇴직 보름 전, 길어야 한 달 전쯤 통고를 받는 게 일반적이다.

말이 명퇴지 이미 가이드라인이 정해진 경우도 많다. 나이, 인사고과, 과거의 징계 사유 등 감점 요소가 많으면 많을수록 명퇴에 가깝게 다가섰다고 보면 된다. ‘자발적 퇴직’도 회사에서 나가라고 하기 전에 스스로 판단해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눈치를 살피며 자리를 계속 차지했다가는 조직 전체가 불이익을 봐 마지못해 퇴직하는 사례도 있다.

‘준비 없는 명퇴’ 대부분

기업의 입장에서도 준비 안 된 퇴직은 마찬가지다. 경력이나 노하우 관리보다 단순한 다운사이징, 즉 비용 절감의 효과만을 바라기 때문에 길게 보면 경쟁력을 갉아먹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특히 금융 위기 같은 사회적 배경이 마련되면 과감한 명퇴로 이어지는 것이 요즘의 풍토다.

사실 40대 명퇴에 대비해 콕 집어 ‘이것을, 이렇게 준비하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고, 인생 2모작에 필요한 자금도 다르며, 각자의 인성이나 취향도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사업 아이템 선정이나 재취업에 뛰어들기 전에 ‘사고의 전환’이 우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행복한은퇴연구소’ 전기보 대표는 ‘평생 직업’이 아니라 ‘평생의 일’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자신이 생명보험사 이사였던 전 대표는 “임원인 나조차도 내 운명을 몰랐다”며 “하물며 평직원들은 명퇴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흔히 생애 설계를 말할 때 10~40(50)대까지는 나름의 구체적인 계획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50(60)대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같은 수준의 준비를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은퇴 후를 편안하게 보내려면 얼마가 들고, 이를 위해 어떤 사업을 해야 한다’는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 유흥가의 경우 운영 사이클이 6개월에 불과한 프랜차이즈 사업에 은퇴자들이 몰리는 이유다.

하지만 은퇴 이후의 삶이 직장에 다니는 지금보다 훨씬 더 다이내믹할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선 사고의 획기적인 변화가 필수다. 전 대표는 자기 계발을 위해 과감히 투자하라고 조언했다.

한 달에 50만 원씩 적금을 들 게 아니라 이를 자기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배우라는 것. 어떤 분야든 이렇게 10년만 하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은퇴 후 필요한 생활 자금도 달리 보는 게 좋다. 흔히 10억 원 정도가 있어야 은퇴 후를 여유 있게 보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금융자산으로 이 정도 여유가 있는 사람은 10만 명 남짓에 불과하다. 하지만 현실은 모든 퇴직자들이 10억 원을 꿈꾸고 있다. 답은 하나다. 평생 일거리를 찾으면 된다.

퇴직 후 적당한 아이템을 찾아 사업을 시작하려면 초기 고정비용을 최대한 줄이는 게 우선이다. 최악의 결과를 염두에 두고 감당할 수 있는 적은 비용을 들이라는 얘기다. 최근에 트렌드가 된 ‘귀농’도 마찬가지다.

땅 사고 집 짓는 게 귀농의 시작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빈 집이나 셋집을 얻어 살림을 시작하고 놀리는 땅을 임대받아 농사일에 적응하다 보면 마을 사람들과의 유대감도 자연스럽게 쌓을 수 있다고 한다.

먼저 있던 직장을 떠나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보는 것도 인생 2모작의 한 방법이다. 정리해고 부작용을 호소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도 노련함을 갖춘 재취업자는 매력적인 인적자원이 될 수 있다.

다만 재취업은 첫 취업만큼이나 신중해야 한다. 눈높이를 낮춘 ‘하향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하향 지원은 일반적으로 직급이 예전에 비해 높고 좀더 다양한 실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또 다른 이직의 디딤돌로 활용할 수도 있다.

재취업 역시 새로운 사업만큼이나 적성과 능력 등을 꼼꼼하게 고려해 이뤄져야 한다. 재취업마저 실패로 돌아섰을 경우의 패배감은 명퇴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부작용이 크기 때문이다.

KT·삼성전기·포스코 등의 대기업과 신한은행·우리은행 등의 금융권은 비교적 퇴직자를 위한 전직 프로그램이 잘 갖춰진 곳들이다. 이 밖에 노사공동고용지원사업단(www.newjob.or.kr), 각 지자체의 소상공인지원센터·여성능력개발원 등에서도 재취업 정보·교육 등을 받을 수 있다.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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