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고수의 비밀노트] "약점을 기회로 돌려야 진정한 마케터"
입력 2010-06-16 16:01:37
수정 2010-06-16 16:01:37
한경비즈니스·MASOK 공동기획② - 위규성 CJ 라이온 사장
위규성 CJ 라이온 사장의 첫 직장은 CJ제일제당(당시 제일제당) 마케팅실이다. 984년 삼성그룹 공채로 입사한 위 사장의 첫 보직은 마케터였다.
1994년 음료본부 기획팀장으로 1년, 2005년 두산식품 해외사업본부장으로 1년 6개월 등 2년 6개월을 제외한 24년간 마케터로 일했다. 자칭 ‘마케팅 지향적 경영자’로 살고 있는 그만의 비밀노트를 들춰봤다.
‘남자의 첫사랑은 무덤까지 간다’는 말이 있다. ‘마케팅에 죽고 마케팅에 사는’ 마케터에게도 첫사랑 같은 브랜드가 있다. 위규성 CJ 라이온 사장의 ‘첫사랑’은 ‘식물나라’다. ‘식물나라’는 CJ제일제당이 1992년 론칭한 비누 브랜드다.
‘식물나라’는 1994년 기초화장품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며 성공 가도를 질주했다. 하지만 무리하게 색조화장품에까지 진출하다가 그만 좌초하고 말았다.
위 사장은 1995년 음료사업본부에서 생활화학사업본부 마케팅 팀장으로 자리를 옮기며 ‘식물나라’를 맡았다. ‘식물나라’는 슈퍼마켓(마트)용 브랜드였다. 당시만 해도 화장품의 주된 판로는 화장품 전문점이었다. 제일제당에는 화장품 유통 노하우가 전혀 없었다.
이는 화장품 사업 진출에 치명적 약점으로 작용했다. 따라서 ‘식물나라’의 성공은 약점을 기회로 반전시킨 ‘마케팅의 승리’로 볼 수 있다. 반전의 기폭제는 ‘순하고 깨끗한 피부를 위한 식물성 화장품, 슈퍼에 있습니다’라는 제품 콘셉트였다.
위 사장은 초창기 프로젝트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식물나라’ 브랜드 론칭 과정에서 몇 가지 교훈을 얻었다. 우선 “약점을 약점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인식을 바꾸지 않고서는 절대로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없다는 당연한 명제를 새삼 깨달았다”고 그는 고백했다.
브랜드 네임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가 ‘콘셉트를 잘 표현해 주는 쉬운 이름’이라는 원칙도 가슴속에 새겨 넣었다. 그는 ‘식물나라’라는 브랜드 덕분에 ‘식물성’, ‘슈퍼용’이라는 2가지 콘셉트 중 ‘식물성’에 관련한 부분은 각종 광고에서 굳이 표현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모든 마케팅 비용을 ‘슈퍼용’ 설명과 설득에만 할애했다. 그는 광고 대행사에도 ‘식물성’을 알리기보다 ‘슈퍼용’에 초점을 맞춰 달라고 요청했다. 그로부터 나온 게 ‘피부 필수품’이라는 카피였다. 광고는 대성공이었다.
“오만은 실패의 지름길”
1996년 3월 조사한 기초화장품 브랜드 최초 인지도에서 ‘식물나라’는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화장품뿐만 아니라 같은 브랜드를 사용하는 샴푸와 보디샴푸, 비누 등의 판매도 늘어난 덕분에 ‘식물나라’ 연간 매출이 400억 원을 넘어서는 대성공을 거뒀다. 그는 “브랜드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하지만 성공은 오만을 낳게 마련이며, 오만은 실패의 지름길이다. 동서양에 걸쳐 대제국을 건설했던 칭기즈칸의 몽골이 무너진 것도,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인정받던 도요타가 품질 문제로 휘청거리는 것도 ‘오만’의 결과물이다.
‘식물나라’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은 당시 제일제당 경영진은 기존 생활 용품 사업보다 화장품 사업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고 색조화장품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그는 “그때부터 일상이 갈등으로 뒤범벅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같은 화장품이지만 기초와 색조는 소비자의 니즈와 구매 의사결정 과정, 사용 습관 등이 너무나 달라 동일한 콘셉트로는 소화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낙담”하고 “미칠 노릇”이었지만 그는 경영진의 결정을 되돌릴 수 없었다고 했다. 그 결과 브랜드의 정체성은 산산조각이 났고 1997년 470억 원의 연간 매출로 정점을 찍은 ‘식물나라’는 2001년 100억 원 밑으로 추락했다.
생활화학사업본부에서 화장품본부가 분리됐고 세제밖에 남지 않은 생활 용품 사업도 CJ 내부에서 부진 사업군으로 찍혀 2004년 말 일본 라이온(LION)사에 81%의 지분을 매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CJ 라이온이다.
그는 2006년부터 CJ 라이온의 대표이사 사장을 맡고 있다. CJ 라이온은 생활 용품 전문 기업이다. 세탁 세제 ‘비트’를 비롯해 주방 세제 ‘참그린’, 구강용품 ‘덴터시스템’, 보디 케어 제품인 ‘아이! 깨끗해’ 등이 있다.
사실 생활 용품 비즈니스는 양적으로는 이미 포화 상태나 다름없다. 더구나 대형 마트의 유통 파워가 워낙 강하기 때문에 제조업체의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형편이다. 하지만 그는 시장의 성장 속도가 느려도 개선될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중소 슈퍼마켓 영업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와 함께 새로운 시장 개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일본 라이온사에서 들여온 ‘덴터시스템’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덴터시스템’은 일반적인 양치질로는 닦을 수 없는 입속 사각지대까지 관리해 각종 구강 질환 예방에 효과적인 4단계 구강 건강 시스템이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치주병 같은 구강 질환에 대체로 무관심하다”며 “전국 치과병원 및 지역 보건소와 함께 치주병 예방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위 사장의 좌우명은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다. 매일 매일 변하지 않으면 변화하는 환경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의미다. 그는 독서를 통해 변화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