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국들, ‘민족주의’ 촉각 곤두세워

중도 우파 신정부 수립된 헝가리

최근 헝가리에 중도 우파 신정부가 수립돼 민족주의적 성향을 강하게 내비치면서 주변국들의 우려가 심화되고 있다. 특히 헝가리 신정부가 이웃 국가들에 거주하는 헝가리계 주민들에게 ‘헝가리 여권’을 발급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주변국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5월 29일 헝가리에선 중도 우파 정당인 피데스(청년민주동맹)의 오르반 빅토르 총재가 헝가리 신임 총리로 선출됐다. 빅토르 총리는 지난 1998~2002년에 이어 8년 만에 총리직에 복귀한 것이다. 특히 빅토르 총리가 국내적으로는 헌법 개정과 건강보험 개혁, 경제성장 및 일자리 창출에 중점을 두면서 대외적으로는 ‘대(大)헝가리(Greater Hungary)’ 정책을 표방하면서 주변국들과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YONHAP PHOTO-1950> General view of the Hungarian parliament assembly hall during the inaugural session of the new legislature in Budapest May 14, 2010. REUTERS/Laszlo Balogh (HUNGARY - Tags: POLITICS)/2010-05-14 21:15:58/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이와 관련, 체코 일간 리도베노비니는 ‘눈앞에 닥친 위협, 대헝가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헝가리의 민족주의적·국수주의적 팽창 정책에 대한 견제의 시선을 던졌다.

리도베노비니에 따르면 최근 헝가리 신정부의 등장은 헝가리계 주민이 다수 살고 있는 이웃 슬로바키아 남부 지역에 적지 않은 고민거리를 안기고 있다.

빅토르 신임 총리가 취임 직후 헝가리 의회에 서둘러 제출한 여권법은 헝가리 이외의 다른 국가에 거주하고 있는 헝가리계 사람들에게 헝가리 국적 여권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헝가리 국내 정치의 투표권을 부여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리도베노비니에 따르면 이 같은 헝가리 정부의 조치 자체는 다른 상당수의 유럽 국가들도 시행하고 있는 국제 표준과 큰 차이가 없는 것이어서 법안 자체만 놓고 볼 때는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이 법안이 타깃으로 삼고 있는 헝가리 주변국들엔 정치적으로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어 문제라는 지적이다.

실제 헝가리의 새 여권 법안은 하나의 ‘통합된 민족 공간(unified national space)’을 창출한 뒤 전 헝가리인들이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을 증대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 같은 헝가리 신정부의 야심찬 구상은 헝가리계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슬로바키아 남부 지역을 비롯해 카르파티아 분지, 멀리는 유럽연합(EU) 전체의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게 주변국들의 시선이다.

전문가들, ‘헝가리 공격적 행보 견제해야’

유럽 각국 접경지대에 거주하고 있는 1500만 명의 헝가리계 주민들 중 상당수가 헝가리 국적을 취득하고 헝가리 국내 투표에 참여하면서 헝가리 본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 자연스럽게 현재의 헝가리와 남부 슬로바키아, 세르비아의 보이보디나 지역, 트란실바니아 지역 등이 사실상의 헝가리 지배권역으로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동부 유럽 상당수 지역에서 특정 국가의 독점적 지배력이 약화되는 결과가 초래되고 헝가리·슬로바키아·세르비아·루마니아 등의 주권 다툼이 커질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하다는 게 주변국의 우려다.

실제 현재의 헝가리인들과 비슷한 케이스인 남부 오세티아와 아프카즈 지역에 사는 러시아인들이 갑작스레 러시아 여권을 획득하게 되면서 불붙은 러시아와 그루지야 간 대립은 무력 분쟁으로까지 이어졌던 전례도 있다. 이에 따라 헝가리의 공격적 행보를 견제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동유럽 문제 전문가들은 “헝가리 국내 정치에선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이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시도가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며 “EU와 나토 등 범유럽 기구 차원에서 자칫 인종 문제와 군사 충돌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는 노력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하고 있다.

한편 헝가리 신정부는 대외 정책 외에도 경제 정책 등에서도 공격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어 주목된다. 유럽 전역이 그리스발 재정 적자 위험에 직면해 잇따라 긴축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헝가리 정부는 경제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빅토르 총리는 기존의 사회당 정부가 5년째 지속해 온 재정긴축은 신정부 정책의 우선순위에 있지 않다고 확인하며 긴축 기조 완화를 시사하기도 했다. 헝가리 경제는 지난해 마이너스 6.3% 성장해 체제 전환 직후인 지난 1991년 이후 최악의 침체를 겪었고 올해도 0.5% 성장에 그치는 부진한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게 이전 정부의 전망이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4.0%를 기록한 재정 적자를 올해 3.8%로 묶을 것을 주문하고 있다.

김동욱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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