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개치는 증권가 루머 '진실이냐 거짓이냐'] 특정 회사 ‘타깃’…우량 기업도 ‘먹잇감’

‘루머’에 상처 입는 자본시장

증시 변동성이 커지면서 악성 루머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메신저나 인터넷 게시판 등으로 이 같은 루머가 실시간으로 퍼지면서 루머의 효과가 증폭되고 있기 때문에 투자자들을 더욱 불안하게 하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한국 경제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상황은 루머의 위력을 더욱 크게 키우고 있다. 남유럽발 금융 위기에다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겹쳐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17일 지수가 떨어지는 와중에 유포돼 하락세를 더 부채질한 일본 신용 등급 강등설은 단적인 사례다. 그리스 사태로 국가 부채가 이슈로 떠오르자 국제 신용 평가사들이 국가 부채가 많은 일본의 신용 등급을 내릴 것이라는 게 루머의 핵심이었다.

특히 4월 22일 피치가 이미 과중한 일본의 정부 부채가 계속 늘어날 경우 현재 ‘AA-’인 국가 신용 등급을 하향 조정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어 이 루머는 더 빠르게 확산됐다. 루머의 내용은 피치가 경고 때 밝힌 “지속적인 경기 회복과 재정 강화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정부 부채는 계속 늘어날 것이고 중기 일본 국가 신용 등급을 하향 조정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종합주가지수가 폭락한 25일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한직원이 주가그래프를 주시하고 있다. /허문찬기자 sweat@ 20100525

이에 따라 현재 일본의 국가 신용 등급을 ‘AA-’에서 ‘A-’로 세 단계 하향 조정을 확정했고 1주일 내에 특별보고서와 함께 공식적으로 발표한 예정이라며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또한 총부채, 이자비용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와 일본이 ‘디폴트’ 수준이라는 점, 유럽발 금융 위기에 이어 아시아 금융 위기로 확산되는 분위기라는 눈에 확 뜨이는 문구도 포함됐다.

투기 세력이 퍼뜨린 ‘미사일 발사설’

하지만 이 같은 루머는 피치가 한 외신을 통해 일본의 신용 등급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한 적이 없다고 밝히면서 일단락됐다. 피치의 국가 신용 등급 애널리스트인 빈센트 호는 “우리는 오늘 오전에 일본의 신용 등급과 관련해 아무런 조치를 취한 적이 없으며 일본의 현재 등급은 ‘AA-’이고 전망은 안정적”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일본의 신용 등급 강등설은 사실무근으로 판명됐지만 이날 코스피지수는 무려 44포인트나 급락했다.

5월 24일에는 또 난데없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설이 증시를 뒤흔들었다. 이날 오후 1시 반쯤에는 북한이 동해상에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루머가 메신저를 타고 퍼졌다. 메신저를 타고 전파된 기사에는 ‘북한, 단거리 미사일 동해로 발사’라는 제목도 붙어 있었으며 일본 교도통신이 이를 보도한 것으로 돼 있었다.

종합주가지수가 폭락한 25일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한직원이 주가그래프를 주시하고 있다. /허문찬기자 sweat@ 20100525
증시는 요동쳤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전날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 증시가 반등한 영향으로 한때 1630선까지 치솟으며 1620선을 오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 루머가 돈 10여 분 사이 코스피지수는 10포인트 넘게 빠진 1606.76으로 곤두박칠쳤다.

기관의 순매도가 한때 1600억 원까지 늘어났던 것. 하지만 이 기사는 이미 오래전에 나온 기사였다. 퍼진 내용 맨 하단에 2007년 5월 25일 기사라고 명시돼 있었다. 투자자들의 심리가 워낙 불안해진 틈을 타 메신저를 타고 들어온 엉뚱한 정보가 시장을 흔든 것이다. 이후 기관의 순매도 물량이 1086억 원까지 줄고 장 마감 직전 외국인도 순매수로 돌아서면서 코스피지수는 전날 대비 15.28포인트(0.95%) 오른 1622.78에 마감했다.

증시는 몇십 분도 지나지 않아 안정을 찾았다. 한 증권사 시황 담당 애널리스트는 “이 루머는 파생상품 거래를 통해 단기 차익을 노리는 작전 세력이 유포했을 확률이 크다”며 “선물 매도→허위 루머 유포로 현물 가격 급락→선물가격 동반 하락→선물 저가 환·매수 등의 과정을 통해 단기 차익을 노렸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날 현물가격이 급락하는 시점에 선물거래가 일시적으로 늘어난 것을 볼 때 이 같은 가능성이 더욱 높다는 분석이다.

악성 루머에 대기업도 ‘쩔쩔’

증시를 흔드는 루머들은 이처럼 거시경제 혹은 정치적 이슈를 다룰 때도 있지만 사실은 개별 기업에 대한 것들이 훨씬 많다. 루머를 통해 시장을 움직이는 것보다 개별 기업들의 주가를 움직이는 게 훨씬 효율적이며 개별 기업의 이슈들은 확인 과정을 거치는 데 시간이 보다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4월 말부터 5월 중순까지 두산그룹은 자금 압박 관련 루머에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시작은 두산건설이었다. 시장에 두산건설이 지은 미분양 아파트가 늘어나면서 그룹 전체에 유동성 위기로 파급될 수 있다는 루머가 나돌았던 것.

이에 따라 5월의 첫 월요일인 3일 두산그룹주 전반이 급락 마감했다. 두산은 하한가에 육박한 12.65% 하락하며 10만7000원에 장을 마감했다.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중공업도 각각 8.52%, 8.65% 급락했으며 루머의 진원지인 두산건설도 8.76% 하락 마감했다.

멈춰선 크레인 (서울=연합뉴스) 김현태 기자 = 5일 주택건설 전문업체인 세종건설이 지방 미분양과 저조한 입주에 따른 유동성 위기로 인해 부도처리되면서 중소 건설사의 줄도산 우려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서울 성북구 돈암동 세종그랑시아 신축현장의 크레인이 멈춰서 있다. mtkht@yna.co.kr (끝)
두산건설 관련 루머를 이어 퍼진 루머는 밥캣의 증자설이었다. 두산이 기업설명회를 통해 밥캣 증자 계획을 발표한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주가가 하루 만에 7.59% 떨어지며 9만8000원을 기록했다.

특히 두산건설 자금 악화설에 당한 후 루머를 잠재우기 위한 두산그룹의 노력도 허사였다. 두산그룹 오너 일가와 임원들은 회사 경영과 기업 가치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자사주를 추가 매입했던 것.

결국 박용현 두산그룹 회장이 5월 12일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서 “루머의 근원을 반드시 찾아내겠다”며 강력 대응 방침을 밝힌 데 이어 13일 두산·두산건설·두산중공업·두산인프라코어 등 4개 기업이 “악성 루머의 유포자를 찾아 처벌해 달라”고 요청하고 나서야 사태가 안정됐다.

이 밖에 올해 초엔 GS그룹과 한화그룹이 하이닉스 인수를 위해 물밑 작업을 하고 있다는 루머에 각 기업의 주가가 출렁였다. 이 소문이 퍼진 2월 2일 GS와 한화의 주가는 장중 한때 각각 마이너스 4.06%, 마이너스 7.93%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결국 이 소문은 다음날 양 기업이 “하이닉스 인수 계획이 없다”고 공시한 이후에야 일단락됐다.

또 건설 업계 역시 루머의 희생양이 됐다. 진흥기업과 남광토건이 그 대상들이었다. 각각 자금 악화설과 워크아웃 추진설이 쏟아져 해당 기업은 물론 모기업인 효성과 대한전선 등의 주가까지 끌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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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해외서도 ‘루머’

증시 폭락이 ‘오타’ 때문이라고?

증시 관련 루머는 단지 국내에서만 생겨나는 건 아니다. 선진 시장인 월스트리트에서도 확인되지 않은 루머들이 끊임없이 생겨난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 5월 6일 뉴욕의 다우존스지수가 오후 한때 1000포인트나 급락해 1만 선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린 것에 대해서도 각종 루머가 나돌았다.

가장 대표적인 게 ‘오타설’이다. P&G의 주식을 거래한 한 트레이더가 컴퓨터 키보드 M(밀리언·100만) 대신 B(빌리언·10억)를 잘못 누른 거래 실수가 발생하자 다른 트레이더도 덩달아 주식을 대량 매각하며 증시가 폭락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사고(?)는 이따금 발생해 금융사에 큰 손해를 끼치기도 한다.

이 밖에 외계인의 침입으로 일어난 것이라느니, 테러 조직의 사이버 공격 등이라는 것 등 여러 소문들이 돌고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북한 관련설’도 있다는 것. 북한의 특수부대가 미국에 침입해 해저 석유 시설을 공격해 대량의 오일 유출 사태가 발생했으며 이에 따라 증시도 휘청댔다는 ‘음모론’도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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