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스타, 연예 산업 판 바꾸다] 사법시험보다 어려운 하늘의 ‘별’ 따기

아이돌 스타 어떻게 키워지나

연예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요즘 청소년의 장래 희망 가운데 연예인이 1, 2위를 다툰다는 데 그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연예인이 되는 방법’은 말 그대로 묘연하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일반적인 논리를 가지고선 연예인 데뷔를 설명할 수 없고 ‘자신의 끼와 장점을 개발하면 된다’는 논리는 뜬구름 잡는 듯한 얘기일 뿐 방법론은 아니다.

과거에는 방송사 탤런트와 개그맨 공채, 대학가요제 등의 가요 관련 대회에서의 수상, 미스코리아와 슈퍼모델 등의 대회에서의 수상 등 공식적인 루트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방법들 역시 요즘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상 연예인 데뷔 통로를 연예 기획사들이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좋은 연예 기획사를 만나 전속 계약을 맺는 것’이 연예인 데뷔의 유일무이한 방법으로 인식되고 있다.

문제는 어느 회사가 좋은 연예 기획사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연예인 데뷔를 핑계로 연습비 등 금품만 요구하는 업체가 있는가 하면 성폭행, 성상납 강요, 술자리 강요 등을 하는 악덕 업체들도 있다고 한다.

가장 검증된 방법은 유명 연예 기획사에 연습생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가요계를 3분하고 있는 대형 연예 기획사인 SM엔터테인먼트·YG엔터테인먼트·JYP엔터테인먼트를 비롯해 요즘 한창 활동 중인 인기 걸그룹이나 아이돌 그룹이 소속된 연예 기획사들 대다수가 연습생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물론 이런 검증된 연예 기획사 연습생이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이들 연예 기획사의 공개 오디션에는 늘 수백 명의 응시생들이 몰려든다.

연예인 데뷔, 기획사가 완전히 장악

기자는 지난해 한 대형 연예 기획사의 공개 오디션 현장을 취재한 바 있다. 600여 명이 몰려들어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지망생들은 10대 초반부터 20대 초반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외국인도 눈에 띄었다.

어머니나 할머니와 같이 온 지망생들도 여럿 있었고 지방에서 아예 서울로 올라와 대형 연예 기획사의 오디션이 열릴 때마다 지원하고 있다는 지망생도 있었다.

한 번에 10명 씩 한 줄로 심사 위원 앞에 서서 오디션을 보는 데 한 지망생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1분가량에 불과하다. 그 짧은 시간에 뭔가를 확실히 보여줘야 연습생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연습생이 되면 일단 연예계 초입까지는 다다르게 된다. 고지가 눈앞에 다가온 셈인데, 본래 전투라는 것이 고지가 눈앞에 보이는 시점부터 더욱 치열해지게 마련이다.

연습생으로 발탁된 이들 가운데 실제로 연예인이 될 수 있는 이의 수는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한 가요 관계자는 “100명의 연습생 가운데 10명이 연예인으로 데뷔하고 그 가운데 한 명 정도가 인기를 얻는 스타가 될 수 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한다.

연습생이 되면 해당 연예 기획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연예인이 되기 위한 연습에 들어간다. 연습생들은 대학 교육처럼 각자의 시간표가 주어지는데 보컬 트레이닝에서부터 안무, 연기, 액션 트레이닝 등의 다양한 수업을 받는다. 해외 진출을 위해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 등의 외국어 수업을 받기도 한다.

연예 기획사가 짜 주는 일정은 하루 한두 과목만 수업을 받으면 되는 수준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연습생들은 거의 하루 종일 연예 기획사 사무실에서 지낸다.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연습실에서 연습하며 연예인 데뷔를 향한 열정을 불태우는 것.

지금은 최정상의 자리에 서 있는 비(정지훈) 역시 연습생 시절에는 1주일 동안 사무실에서 먹고 자며 연습에만 매달렸는데 박진영이 흘리고 간 동전 500원을 주워 그 돈으로 1주일 식비를 해결했다고 회상할 정도다. 요즘 활동하고 있는 아이돌 그룹들이 과거에 비해 월등한 실력을 갖추고 있는 까닭 역시 이처럼 치열한 연습생 시절을 거쳤기 때문이다.

연습생으로 지내며 어느 정도 실력을 인정받으면 프로젝트 그룹의 일원이 되는 영광이 주어진다. 프로젝트 그룹이란 정식 데뷔 이전 형태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5인조 남성 아이돌 그룹을 준비한다면 해당 연예 기획사는 먼저 연습생들로 꾸려진 7인조가량의 프로젝트 그룹을 만든다.

연습생에서 프로젝트 그룹의 일원으로 발탁됐다는 점은 비로소 고지를 점령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고지에 도달했다고 해도 전투는 깃발을 꽂아야 끝이 난다.

한두 명의 탈락자가 되는 것을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쟁률은 5~6대 1. 이미 수백 대 일, 수천 대 일의 경쟁을 뚫고 여기까지 온 역전의 용사들이지만 5~6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하는 마지막 관문이 가장 힘들다.

‘연습생 시스템’ 문제 있지만 대안 없어

요즘 절정의 인기를 자랑하는 빅뱅은 이런 치열한 경쟁의 순간들을 방송을 통해 리얼하게 보여준 바 있다. 데뷔를 앞두고 프로젝트 그룹이던 시절의 빅뱅의 모습이 케이블 채널의 ‘빅뱅 더 비기닝’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리얼하게 방영된 것.

이 프로그램이 시작될 당시 멤버는 모두 여섯 명이었지만 방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결국 한 명의 탈락자가 생긴다. 그는 장현승으로 이후 비스트라는 그룹을 통해 결국 가수 데뷔의 꿈을 이뤘다.

프로젝트 그룹 단계를 지나 멤버가 확정되면 비로소 본격적인 데뷔 준비에 들어간다. 데뷔곡이 나오면 수없이 많은 연습을 거쳐 녹음에 들어가고 이와 동시에 안무 준비를 비롯한 무대 연습에 몰입한다. 그렇지만 이렇게 데뷔한다고 누구나 인기 스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붐(이민호)의 경우 본래는 지난 1997년 키(Key)라는 그룹의 멤버로 데뷔했지만 연예계에서 금세 사라지고 말았다. 이후 10년가량 무명으로 절치부심한 끝에 리포터로 주목받기 시작해 예능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이처럼 데뷔했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해 몇달 만에 사라져 버리는 그룹이 상당수다.

이런 시스템이 연습생 입장에서도 가혹하지만 연예 기획사 입장에서도 버겁긴 매한가지다. 연습생의 교육에 들어가는 일체의 비용은 모두 연예 기획사가 부담한다.

결국 100명의 연습생 가운데 한 명 정도가 회사의 수입을 가져다주는 스타로 발돋움하는 비율이라면 연예 기획사는 한 명의 스타를 위해 100명의 연습생에게 들어가는 연습 비용을 투자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음반 제작비까지 들여 데뷔시킨 그룹이 인기를 얻지 못하면 그 손해 역시 고스란히 연예 기획사의 몫이 된다.

그렇지만 그렇게 탄생한 한 명의 스타가 벌어들이는 수익은 상상을 초월하고 이 수익을 통해 투자액을 채워 가는 것이다. 결국 성공한 아이돌 그룹이나 걸그룹이 벌어들이는 수익이 연습생에게 투자되고 거기서 다시 스타가 탄생하는 시스템이 바로 요즘 한국 연예계의 연습생 시스템이다. 이를 두고 ‘인큐베이팅 시스템’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연예 기획사 입장에선 어렵게 만든 인기 그룹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 오랫동안 더 많은 수익을 올리려고 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연예인에게 상당히 불리한 전속계약서가 나오게 되는데, 데뷔를 앞둔 연습생 입장에선 연예계 데뷔의 꿈이 바로 눈앞에 다가온 상황에서 전속계약서의 내용이 불리하다는 부분까지 고려할 틈이 없다. 그러다 보니 데뷔해서 스타의 반열에 오른 연예인들이 전속계약이 불합리하다며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사실상 해체 기로에 들어선 ‘동방신기’다. 동방신기의 불공정한 전속계약을 두고 비난 여론이 거셌지만 가요계는 이를 숨죽이고 바라봤다.

동방신기 해체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점들로 인해 자칫 지금의 인큐베이팅 시스템이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문제점이 많은 방식이지만 아직까지는 이를 대체할 다른 방법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신민섭 일요신문 연예부 기자 lead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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