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pan] 자녀 수당 지급 강행…재원 마련 ‘글쎄’

포퓰리즘 공약에 발목 잡힌 민주당 정부

얼마 전 기자가 살고 있는 도쿄도 세타가야구로부터 엽서 한 장을 받았다. ‘신설된 자녀 수당 4, 5월분을 6월에 지급하겠다’는 통지였다. 자녀 수당은 민주당 정부가 지난해 선거에서 공약한 것으로 올 4월부터 시행됐다.

일반 가정에 대한 교육비 지원 명목으로 중학생 자녀까지 1인당 한 달에 1만3000엔(약 17만 원)씩 현금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나는 초등학생 자녀가 2명 있으니 매달 일본 정부로부터 2만6000엔, 한국 돈으로 34만 원씩 꼬박꼬박 받게 됐다.

일본의 민주당 정권이 핵심 정책으로 내건 자녀 수당과 고교 무상화 법안이 확정돼 시행됐다. 민주당은 자녀 수당과 고교 수업료를 걷지 않는다는 무상화 정책을 오는 7월 참의원 선거에서 단독 과반수를 확보하기 위한 비책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하지만 외국인과 일본인 간 역차별 논란이나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한 우려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다분히 선거를 의식한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정책으로 부작용이 클 것이란 지적이 많다.

◇ 역차별 비판 초래 = 일본에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첫째와 둘째 자녀에게는 매달 5000엔씩, 셋째 자녀에게는 1만 엔을 주는 아동 수당 제도가 있었다. 일본 정부는 이 아동 수당을 자녀 수당으로 전환해 지급 금액을 늘렸다.

참의원 선거 직전인 6월과 10월, 내년 2월과 6월 네 차례에 걸쳐 지급한 뒤 법을 고쳐 2011년 이후에는 지급액을 매달 2만6000엔으로 늘릴 계획이다.

자녀 수당의 문제점 중 하나는 소득 구분 없이 자녀만 있으면 누구에게나 똑같은 금액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연봉 1억 엔이 넘는 금융사 펀드매니저나 소득이 전혀 없는 실업자나 모두 자녀 한 명에 1만3000엔씩 받는다.

복지성 현금 지원이라면 저소득층에 한정해 지급하는 게 합리적이다. 가계의 소비 촉진까지 겨냥한 것이라면 소득에 따른 소비 탄력성이 큰 저소득층에만 주는 게 효과가 높다. 하지만 일본의 자녀 수당은 아무 생각 없이 뿌리는 돈이다.

또 내·외국인 간 역차별 논쟁도 뜨겁다. 일본 정부는 일본에 1년 이상 체류할 예정이고 외국인 등록을 마쳤으면 외국인에게도 원칙적으로 수당을 지급하기로 했다. 문제는 외국인 근로자의 본국 자녀에까지 수당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자녀 수당은 부모의 주소지를 기준으로 지급한다.

따라서 일본에 장기 체류하는 외국인 근로자는 설령 자녀가 본국에 있더라도 수당을 받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일본에 사는 한 외국 남성이 태국의 고아원 아동 554명을 양자로 입양했다며 연간 8642만 엔(약 11억 원)의 자녀 수당을 신청하는 코미디 같은 일도 발생한다. 서둘러 제도를 마련하다 보니 지급 대상인 외국인의 아동 숫자조차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도 지적된다.

부모 주소지 기준으로 지급한다는 규정 때문에 정작 자녀를 일본에 남겨두고 해외에 근무 중인 일본인들은 자녀 수당을 한 푼도 받지 못한다. 일본에선 말도 안 되는 역차별이란 지적이 비등하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예정대로 시행할 계획이다.

다분히 행정 편의적인 처리다. 일본 정부는 2011년 이후 이런 문제점을 고려해 법을 고치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법안에 반대한 자민당은 “참의원 선거 전에 서둘러 돈을 뿌리려다 보니 이런 일이 일어난 것 아니냐”고 비판하고 있다.

◇ 고교 무상화도 논란 = 고교 무상화 법안은 연립여당과 공명당, 공산당 등 다수의 찬성으로 법안이 가결돼 지난 4월 1일부터 시행됐다. 이에 따라 4월부터 공립학교의 수업료는 전액 면제됐고 사립고교에 다니는 학생을 둔 가구에는 가구 소득별로 수업료와 비슷한 금액의 취학지원금(연 11만8800∼23만7600엔)이 지급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공립 고교의 수업료를 걷는 나라는 일본·한국·이탈리아·포르투갈뿐이라는 사정을 고려해 법안 통과를 서둘렀다.

일본 정부는 2010 회계연도(2010년 4월~2011년 3월) 예산에 이를 위한 비용 약 4000억 엔을 편성해 놓고, 학생들을 대신해 수업료를 학교에 일괄 지급할 예정이다. 민주당 정권은 6월에 지급하는 자녀 수당과 함께 고교 무상화를 정권 교체의 성과로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 법안 때문에 오히려 학력 격차가 확대될 것이라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법안에 찬성한 의원조차 “지원을 받지 않아도 곤란하지 않은 가구는 (무상화 덕에 내지 않아도 되는 돈을) 학원비에 사용해 오히려 학력 격차가 커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취학지원금을 주더라도 사립고교에는 수업료 부담이 남는 만큼 할 수 없이 사립고교를 선택한 학생들에게는 불공평한 제도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또 조총련계 조선학교 등 각종 학교는 이 지원 제도에서 배제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한국 학교나 독일 학교 등 일본의 고교에 상응하는 학교나 국제학교(인터내셔널스쿨)처럼 교육과정이 국제기관의 인정을 받은 학교는 무상화 대상에 포함됐다.

그러나 조총련계 조선학교는 일단 제외됐다. 조선학교에 대해서는 문부과학성이 교육전문가위원회를 구성해 일본 고교와 비슷한 교육을 하는지 검증한 뒤 올여름 무상화 대상 포함 여부를 최종적으로 판단할 방침이다.

◇ 재원 마련 어떻게 = 자녀 수당이나 고교 무상화는 정책 합리성을 떠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재원 조달 방안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자녀 수당의 경우 올해 지급을 위해선 2조6500억 엔의 예산이 든다.

민주당의 선거 공약대로라면 자녀 수당은 내년부터 자녀 1명당 월 2만6000엔씩 두 배로 올라간다. 그러려면 5조3000억 엔의 돈이 필요하다. 일본의 연간 방위비(2009년 기준 4조7740억 엔)보다 많은 액수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일본의 재정 적자는 선진국 중 최악이다. 올해 92조2992억 엔의 정부 예산도 세수(37조3900억 엔)보다 더 많은 국채(44조3000억 엔)를 찍어서 조달한다. 올 연말 970조 엔을 넘어설 일본의 나랏빚은 내년 말엔 1000조 엔을 웃돌 전망이다.

200%가 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은 최근 재정 위기를 맞은 그리스(125%)보다 훨씬 높다. 그나마 일본이 큰 탈 없이 지내는 비결은 국채의 95%를 내국인이 갖고 있다는 마지막 ‘안전장치’가 그나마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하토야마 정부는 자민당 정권 시절의 낭비 예산을 9조 엔 정도 줄여 자녀 수당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실제 낭비 예산으로 깎은 돈은 1조 엔에 그쳤다.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역 예산을 대폭 깎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세금을 인상하기는 더욱 어렵다. 일본은 현행 5% 세율의 소비세를 도입하는데 10년이 걸렸고, 그 과정에서 세 명의 총리가 바뀌었다.

재정 전문가들은 소비세율을 10%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민들이 싫어하는 세금 인상을 실행할 만한 리더십을 민주당 정권은 갖고 있지 않다.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작년 8월 중의원 선거에서 “정권을 잡으면 향후 4년간은 소비세 인상을 논의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설령 소비세 인상을 추진하더라도 딜레마는 있다. 소비세와 같은 간접세 인상은 물가 상승을 유발해 소비를 더욱 위축시킬 수 있다.

일각에서는 현금 지원에 치우친 까닭에 보육소 확충 등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환경 만들기에는 눈을 돌리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그렇다고 자녀 수당을 없앨 수도 없다. 한 일본 방송사가 주부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벌인 결과 절반 이상이 ‘자녀 수당을 계속 받을 수 있을지’, ‘금액은 깎이지 않을지’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가 자녀 수당을 폐지하거나 금액을 낮추면 당장 불만이 터져 나올 게 뻔하다. 주기는 쉬워도 빼앗기는 어려운 게 공짜 지원이다.

하토야마 정부는 앞으로 이 문제로 골치 좀 썩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누구도 탓할 수 없다. 오직 선거를 위해 타당성 없는 포퓰리즘 공약을 내건 것이 자신이기 때문이다.

차병석 한국경제 도쿄 특파원 chab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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