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량주 IPO·증권사 참여로 ‘백조’ 변신

왜 장외시장인가?

시중 자금 20조 원이 몰린 삼성생명 상장을 계기로 장외시장이 주목받고 있다. 삼성생명이 상장 후 주가가 공모가 밑으로 떨어지면서 장외 주식에 대한 투자자들의 열기가 식은 듯했다.

하지만 지난 5월 19일 상장한 만도가 상장 첫날 상한가를 치며 꺼져가던 불씨를 되살리고 있다. 삼성생명과 만도에 이어 투자자들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고 있는 삼성SDS도 이달 들어 급등하면서 장외시장의 투자 열기를 견인하고 있다.

장외시장은 상장되지 않은 주식을 사고파는 비제도권 시장이다. 그동안 거래가 소규모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사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믿지 못할 시장’이라는 이미지가 만만치 않았다. 더구나 투자 기업의 정보가 부족하고 단기 매매도 쉽지 않은 까닭에 개미들이 뛰어들기가 쉽지 않았다.

이처럼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미운오리새끼’로 취급받던 장외 주식시장이 투자시장의 ‘백조’로 거듭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먼저 기업공개(IPO:Initial Public Offering)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IPO 전문 기업 38커뮤니케이션에 따르면 올 들어 5월 19일 현재까지 27개 기업이 상장했다. 이는 2009년 1월부터 5월 말까지 18개 기업, 2008년 같은 기간 3개 기업이 상장한 것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수치다.

무조건 위험하다는 인식 깨져

특히 최근 법률적 문제 해소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 등 삼성그룹 비상장 계열사들의 상장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이들 기업의 IPO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도 장외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을 지속시킬 것으로 보인다.

한국투자증권은 최근 아이마켓코리아가 상장을 밝힌 데 이어 비상장 삼성 계열사인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 등의 추가 IPO 시 수혜주로 삼성카드·삼성물산·제일모직·삼성전기 등을 꼽았다.

이 밖에 인천공항공사·현대홈쇼핑 등 대어급 새내기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어 올 하반기 사상 최대 규모의 IPO 시장이 열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단기간에 기업공개를 할 가능성은 없지만 포스코건설·SK텔레시스·휠라코리아·현대삼호중공업·현대카드 등 실적이 뛰어나지만 미상장인 대형 우량주들이 투자자들의 레이더에 포착된 것도 장외시장 열풍에 한몫했다는 평이다.

IPO 전문 기업인 피스탁의 차원식 기업분석팀장은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장외시장은 일반인들이 거의 모르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며 “2007년 4월 생명보험사의 상장이 결정되면서 장외시장의 진가가 제대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숨은 진주(대형 우량주)’들이 투자자들의 눈에 띄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장외시장은 무조건 위험하다’는 인식이 깨진 것도 장외시장이 부각된 이유다. 사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장외 주식은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 특히 1990년대 초·중반 벤처 붐이 꺼지면서 수많은 벤처기업들이 무너진 까닭에 비상장사에 대한 불안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게다가 한국거래소에 상장하는 기업들이 엄격한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 것은 물론 기업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는 것에 비해 비상장 시장은 철저하게 일대일의 사적 거래로 이뤄지는 데다 기업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불신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실제로 코스피 상장의 경우 규모는 자기자본 100억 원 이상(또는 기준시가총액 2000억 원 이상)이어야 하고 경영 성과는 직전연도 매출액이 300억 원(또는 3년 평균 200억 원 이상)을 넘어야 한다.

안전성과 건전성도 별도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에 비해 비상장 시장은 매도자와 매수자가 있으면 거래가 이뤄진다. 모든 판단과 책임은 매도자와 매수자가 져야 하기 때문에 위험하기 짝이 없는 투자로 여겨졌던 것이다.

하지만 장외시장에서 실적이나 업종 대표주만 따져 보면 부실한 상장사보다 오히려 덜 위험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정인식 프리스닥 대표는“ 장외시장 우량주들은 거래소 종목과 비교해 리스크가 훨씬 작다”며 “실적이나 업종 대표주 중심으로 투자 포트폴리오를 짠다면 ‘저위험 고수익’을 거둘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시중 부동자금 장외시장 유입

정 대표는 ‘저위험’의 근거로 장외시장의 대형 우량주들이 경기의 여파를 받지 않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정 사장은 “실제 주식 시장이 깊은 불황에 빠졌던 시기에도 장외 우량주들의 주가는 큰 변동이 없었다”며 “대주주 지분율이 높은 종목이 많아 배당률이 높다는 점도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장외시장의 투자 절차가 번거롭다는 점도 일반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은 이유 중 하나였지만 이 또한 공신력 있는 증권사의 참여로 거래의 안전성과 편의성이 이전보다 훨씬 높아졌다는 평가다. 지난 4월 동양종합금융증권이 선보인 장외 주식 중개 서비스는 일반적인 증권사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통해 매수·매도 의뢰 등 거래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예컨대 매수 의뢰를 하면 전문 컨설턴트가 실시간으로 주문 내역을 점검한 뒤 매수자와 매도자 사이에서 직접 중개를 협의하는 구조다. 최일구 동양증권 리테일전략팀 차장은 “장외주는 결제 불이행 위험이나 거래의 어려움으로 일반인에겐 그림의 떡”이라며 “하지만 증권사가 거래의 안정성과 편의성을 제공해 장외주의 대중화를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장외 주식을 중개하는 업체의 한 관계자는 “조만간 또 다른 대형 증권사가 장외 주식 거래에 나서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부동산 시장 침체 등으로 묶여 있던 시중의 부동자금이 장외시장에 유입되고 있는 것도 장외시장이 인기를 끄는 원인 중 하나다. 지난 5월 초 한국은행에 따르면 단기 부동자금은 2월 말 현재 614조3600억 원을 기록했다.

단기 부동자금은 금융 위기가 닥친 2008년 10월 500조 원을 넘어서고 1년 만인 지난해 10월 600조 원을 돌파한 뒤 5개월째 600조 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장기화된 저금리로 은행의 예금금리가 떨어진 데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 국면에 빠지면서 갈 곳을 잃었기 때문이다.

엄기섭 38커뮤니케이션 운영팀장은 “시중금리 하락 및 부동산 시장 침체 등으로 마땅한 투자처가 없는 시기에 비상장 주식은새로운 투자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장외시장에 ‘큰손’이 많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바다. 장외시장은 호가가 맞아야만 거래가 성사되기 때문에 현금화가 급하지 않아야 투자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여유 있는 ‘큰손’들이 중·장기적으로 투자하던 장외시장이 대중화되면서 이제는 개미들의 주요 투자처로 변신하고 있다. 동양종합금융증권의 뒤를 이어 몇몇 대형 증권사가 참여할 경우 투자시장에서 장외시장의 위상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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