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도세 할인 통해 물꼬 터 주어야

‘부실의 덫’ 미분양 해결할 묘수는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2010년 3월 말 기준으로 전국의 미분양 아파트 수는 11만2910채에 달한다. 이는 역사상 미분양이 가장 많았던 작년 3월의 16만5641채에 비해 32% 정도 감소한 물량이다.

올해 2월까지 시행된 미분양 주택에 대한 양도세 비과세 조치가 어느 정도 효과를 본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11만 채가 넘는 미분양 물량은 아직도 과도한 물량임에 틀림없다. 지난 2000년 이후 미분양 아파트 수는 평균 5만 채 정도 수준을 유지해 왔다.

그러다 분양가 상한제를 피하려는 밀어내기 분양이 극심하던 2007년 말에 이르러 10만 채를 돌파한 이후 지금까지 그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과거보다 두 배 이상 미분양 물량이 적체돼 있는 것이다.

더구나 아파트를 다 지었는데도 분양이 안 된 악성 미분양 물량을 보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2000년도부터 2006년까지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은 평균 1만874채에 불과하지만 현재는 5만788채로 무려 4.7배에 달하고 있다.

수도권도 미분양 공포

이렇게 미분양 물량이 많이 늘어난 데는 건설사들의 지역별 수요 예측 실패와 무리한 분양 경쟁, 과도한 분양가 인상도 있지만 2007년 이후 주택 경기의 침체도 한몫하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보금자리주택 분양에 따른 실수요자들의 대기 심리에 따라 민간 분양이 타격을 입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작년 동기와 비교해 지방은 미분양 물량이 37%나 줄었지만 수도권은 9% 줄어든 데 그치고 있다. 과거에는 지방의 미분양이 문제가 되었지만 앞으로는 수도권의 미분양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수치다.

이렇게 미분양 물량이 많아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첫째는 자금을 회수하지 못한 건설사들의 부실이 누적되면서 연쇄 부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둘째는 이러한 분양들이 대부분 프로젝트 파이낸싱으로 자금을 조달해 왔으므로 건설사들의 연쇄 부도는 금융권 전체의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건설업계가 지난 2월 끝난 미분양 주택에 대한 한시적 양도세 비과세 조치를 연장해 달라고 건의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실제로 그동안 계속 증가만 하던 미분양 물량이 작년 4월 이후 양도세 비과세 조치에 힘입어 크게 줄었기 때문에 미분양 물량을 줄이는 데는 가장 확실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양도세 비과세 조치 연장에는 현실적 제약이 많다. 우선 정부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첫 번째 문제는 세수의 감소다. 지금도 세수보다 지출이 많은 재정 적자 문제는 정부의 큰 골칫거리다. 특히 이번 유럽 사태의 본질이 각국 정부의 과도한 재정 적자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로서도 세금을 깎아주는 정책을 쉽게 결정하기는 어렵다.

두 번째, 형평성의 문제다. 어떤 지역에 뼈를 깎는 노력으로 낮은 분양가를 책정한 A기업과 높은 분양가를 책정한 B기업이 있다고 하자. A기업은 이윤은 적지만 100% 분양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B기업의 경우 상당수의 미분양이 발생됐다.

이럴 경우 정부가 미분양 주택에 대한 양도세 비과세 조치를 연장한다면 어떤 결과가 될까. 자신의 노력으로 100% 분양에 성공한 A기업에는 한 푼의 혜택도 돌아가지 않는 한편 자구 노력 없이 고분양가를 유지했던 B기업에는 막대한 이익이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일부 민간 기업의 고분양가에 따른 미분양을 국민의 세금으로 채워 줘야 하느냐 하는 데에 이르면 형평성 문제가 나오게 되고, 더 나아가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문제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이번에는 분양 업체(건설사)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미분양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경우지만 일단 미분양되면 건설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그렇게 많지 않다. 분양가를 현실에 맞게 내려서 미분양을 처리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백화점에 가면 속칭 ‘땡처리’ 세일이 있다. 전년도에 팔고 남은 상품을 할인해 파는 행사다. 옷과 같은 유행 상품은 제철이 지나면 그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땡처리 세일이 가능하다.

하지만 내구재인 주택은 작년에 분양을 받으나 올해 분양을 받으나 그 본질 가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렇기 때문에 미분양 아파트를 땡처리 세일할 경우 이미 분양을 받은 계약자로부터 환불 또는 같은 수준의 분양가 인하를 요구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가구 수가 5000가구에 이르는 단지가 있는데 미분양이 500채 정도 났다고 하자. 이 500채를 분양하기 위해 분양가를 낮추면 나머지 4500가구의 기존 분양 계약자에게 그 차액을 환불해 줘야 하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미분양 물량의 분양가가 인하되는 것은 기존 계약자들에게 심각한 재산권 침해가 될 수도 있다. 어떤 단지에 기존 계약자들이 5억 원에 분양을 받았는데 미분양 물량에 대해 4억 원으로 할인해 분양했다고 하면 입주 후 이 단지의 시세는 그 중간선인 4억5000만 원 정도에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경우 “남이 나보다 싸게 분양받았으니 배가 아프다”는 차원이 아닌 재산권 침해로까지 문제가 번지게 되는 것이다.

이해 당사자 진지한 논의 필요

그러면 세수 감소나 형평성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정부의 입장과 미분양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건설 업체 입장, 그리고 재산권을 지켜야 하는 기존 계약자의 입장을 모두 고려한 해결책은 없을까. 있다. 그 해결책을 살펴보자.

미분양 물량 해결을 원하는 업체가 있다면 해당 지방자치단체에서 특수세 명목으로 일정액을 징수하는 것이다. 세금 납부일을 분양 아파트의 잔금일 기준으로 하면 업체의 자금 부담도 없을 것이다.

그런 후 중앙정부는 세금을 거둘 물량에 한해 양도세 비과세 혜택을 부여하고 지방자치단체는 업체로부터 직접 거둔 그 세금을 그 단지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다. 미분양 해소를 위해 분양가를 직접 할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 지방세 납부와 양도세 할인이라는 우회적인 방법을 쓰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조치의 효과는 무엇일까.

우선 해당 기업의 입장에서는 분양가를 인하한 것이 아니라 그에 해당하는 세금을 납부한 것이기 때문에 기존에 분양을 받았던 계약자들의 반발을 피하면서 미분양 물량을 처리할 수 있다.

미분양 물량을 분양받는 신규 계약자의 입장에서는 향후 얻어질 양도 차익에 대해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는 지난 1년 동안 미분양 물량이 크게 줄었던 것처럼 효과를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

과거에 이미 분양을 받았던 기존 계약자의 입장에서는 잔여 미분양 물량에 대해 업체의 추가 인하가 없으므로 기존 분양가를 보호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더구나 업체가 낸 세금이 나중에 그 단지를 위해 쓰이게 될 것이므로 단지 전체의 가치가 올라간다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중앙정부의 입장에서는 업체로부터 거둬지는 세금이 지방세의 성격이므로 지방세 수입은 늘지만 향후 국세인 양도세가 줄어든다는 단점은 있다. 하지만 국가 경제 차원에서 미분양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더 큰 장점이 있다. 더욱이 국민의 세금으로 일부 기업의 미분양 문제를 해결한다는 형평성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입장에서는 그 지역(업체)에서 거둔 세금을 그 지역(해당 단지)을 위해 쓴다는 점에서 명분상이나 실리 면에서 손해될 것이 없다. 자기 지역의 미분양 물량이 해소도 되고 추가로 거둔 세금을 투하해 그 지역의 도시 미관을 아름답게 만드는 효과도 거둘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각자가 처한 입장 차이로 풀리지 않는 미분양 아파트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해 보았다. 한마디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건설 경기가 침체되면서 내수 경기 전체가 어렵다고 한다. 이해 당사자들이 모여 진지하게 논의하는 것이 필요할 때다.



아기곰 부동산 칼럼니스트

국내 최대 부동산 동호회인 ‘아기곰동호회’의 운영자, 부동산 칼럼니스트. 객관적인 사고, 통계적 근거에 의한 과학적 분석으로 부동산 투자 이론을 업그레이드시켰다는 평을 듣고 있다.


아기곰 a-cute-bea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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