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감하라! 당신 재능이 팍팍 살아난다

최고수의 비결, ‘둔후흑(鈍厚黑)’

<YONHAP PHOTO-1184> 湖巖 탄생 100년..삼성, 대대적 기념행사 (서울=연합뉴스) 삼성그룹은 오는 2월12일 창업주 호암(湖巖) 이병철 회장 탄생 100년을 기념해 각종 공연과 학술포럼, 기념식, 회고록 발간 등의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사진은 1982년 호암미술관 개관식에서의 모습. 2010.1.20 << 삼성그룹 >> photo@yna.co.kr/2010-01-20 13:49:52/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대학 병원에서 교수에게 늘 야단맞던 의사가 있었다. 그 의사는 야단맞을 때마다 거의 반사적으로 “예, 예”라는 한마디로 웃어넘겼다. 꺼벙이 스타일인 그는 상사들에게 야단맞기 좋은 타입이었다. 교수에게 야단맞을 때면 동료들에게 불쌍해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교수의 그 어떤 잔소리도 쇠귀에 경 읽기 식으로 처리했다. 동료들과 눈을 마주치면 싱긋 웃기도 했다. 또다시 잔소리를 해도 즉시 “예, 예”라고 잔소리와 대답이 일정한 리듬을 타고 반복되곤 했다. 이게 그 의사 특유의 ‘야단맞는 기술’이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때로는 망각도 필요한 법이다. 특히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신경을 거스르게 하는 것들은 잊어버리는 게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그 의사는 교수에게 잔소리를 들어도 수술이 끝나면 씻은 듯이 잊어버렸다. 언제 야단맞았나 싶을 정도로 조금 전에 끝난 수술 이야기나 잡담으로 동료 후배들과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둔감함은 정신을 건강하게 만든다

이 내용은 와타나베 준이치가 쓴 ‘둔감력’에 소개되고 있다. 와타나베는 의사 출신인데 그가 병원에 근무할 때 동료의 이야기라고 한다. 그는 후일 최고의 명의가 되었는데, 야단맞을 때마다 그때그때 “예, 예”라고 한쪽 귀로 흘려 넘긴 게 비결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나이가 들어도 건강을 유지하고 병치레를 하지 않았다. 잔소리를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것이 바로 최고 명의가 된 비결이자 건강을 유지한 비결이었던 것이다.

이 책의 핵심은 “좋은 의미의 둔감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와타나베는 “때로 둔감함은 정신을 안정시키고 좋은 기분을 유도하며 신체적으로는 피의 흐름을 원활하게 유지해 준다”고 강조한다. 건강은 온몸의 피를 잘 흐르게 하는 게 중요한데 이를 위해 먼저 신경을 편안하게 안정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고 명의가 된 그 의사는 교수가 아무리 야단을 쳐도 의도적으로 둔감력을 발휘해 언제나 혈액이 원활하게 잘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거인은 둔감하다!” 즉, 성공한 사람들에게 볼 수 있는 공통적인 지혜가 둔감력이라고 한다. 너무 예민하고 순수한 것은 성공의 가도에서는 때로 함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민함으로 자신의 재능을 스스로 닫은 작가도 있다. ‘테스’로 유명한 소설가 토마스 하디는 영국 문학을 풍부하게 만든 최고의 소설가로 꼽힌다. 그러나 하디는 뜻하지 않은 혹평을 받고 다시는 소설을 쓰지 않았다.

하디는 19세기 말 영국 사회의 인습, 편협한 종교인의 태도를 용감히 공격하고 남녀 간의 사랑을 성적인 면에서 대담하게 폭로했다. 그 때문에 당시의 도덕가들로부터 맹렬한 비난을 받고 55세 때 ‘미천한 사람 주드’를 끝으로 장편소설 집필을 그만뒀다.

또한 영국의 시인 토머스 채터턴을 자살로 몰고 간 것도 그에 대한 비난이었다. 지난해 이즈음 온 나라를 슬픔에 젖게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도 어쩌면 그의 예민하고 순수한 성격에 기인하는 것으로, 달리 말하면 둔감력이 부족한 성격 탓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와타나베 준이치 역시 둔감력을 뼈저리게 경험하고 의식적으로 둔감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그는 성형외과 의사로 있으면서 소설에 도전했고 결국 작가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한때는 원고를 들고 찾아간 출판사로부터 수없이 거절당했지만 그때마다 둔감력을 발휘했다.

언젠가는 자신의 글이 출판될 수 있다는 믿음과 자기 확신을 갖고 둔하게 기다린 결과 소설이 출간될 수 있었다. 결국 1970년 ‘빛과 그림자’로 일본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나오키상(63회)을 수상했다.

와타나베는 “둔감하라, 당신의 재능이 팍팍 살아난다!”고 조언한다. 직장에서뿐만 아니라 연애, 사업이나 인간관계에서도 꼭 필요한 게 ‘둔감력’이라는 것이다. 비유하면 ‘귀가 얇은 사람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이른바 ‘운둔근(運鈍根)’은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의 경영 철학이다. 운은 우둔하면서도 끈기 있게 기다리는 사람에게 온다는 말이다. 운을 잘 타고 나가려면 역시 운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일종의 둔한 맛이 있어야 하고 운이 트일 때까지 버티어 내는 끈기와 근성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때 귀가 얇으면 결코 기다리지 못한다. 둔함은 때로 부정적인 요인으로 비판받지만 성공의 필수 요소인 셈이다.

처세의 재능으로서 둔감력은 중국에서는 ‘후흑학’으로 정립되기도 했다. 이종오(李宗吾)의 ‘후흑학(厚黑學)’이란 책이 바로 그것이다. 난세를 평정한 중국의 통치술은 ‘후흑’이란 말로 집약한다. 영웅호걸들의 성공 비결이 ‘후(厚)’와 ‘흑(黑)’ 두 글자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후는 바로 낯가죽이 두껍다는 것이고, 흑은 바로 마음이 검다는 의미다. 이 세상에 성공하려면 두 글자를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철두철미 낯가죽이 두껍고, 마음속이 시커멓지 않으면 위대한 간웅이 될 수 없다”는 문장으로 요약된다.

후의 전형은 ‘삼국지’에서 유비를 꼽는다. 유비는 늘 전투에 패했으며 그 패배는 그의 무능을 보여준다. 그러나 유비는 패전할 때마다 고향 사람들 앞에서 미안하다고 크게 울곤 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유비가 인의롭다고 여겼고, 그래서 유비가 패전할 때마다 사람들은 오히려 그를 높이 받들었다. 후흑으로 표현하면 유비도 낯가죽이 두꺼운 인물이다. 다만 인의로운 면에서 내공을 발휘했던 것이다.

영웅들은 낯이 두껍고 속이 검었다

흑의 전형은 조조가 꼽힌다. 어느 날 조조는 난을 피해 친구 집에 들렀다. 친구는 돼지를 잡아다 조조에게 대접하라고 집안사람들을 불러 이야기했다. 이를 엿듣던 조조는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줄 알고 식솔들을 모조리 죽였다. 발을 동여맨 돼지를 발견했을 때에야 자신의 잘못을 알았다. 서둘러 도망가다가 집으로 돌아오던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마저 죽였다.

천하의 기재로 불리는 제갈량은 낯가죽이 두꺼운 사마의를 만나게 된다. 사마의는 성을 지킬 뿐 한 번도 출정하지 않는다. 제갈량은 여섯 번이나 기산에 출정해 위나라를 정벌하려고 하지만 결국 아무런 공로도 세우지 못한 채 돌아간다. 기산에서 제갈량은 격장법을 썼다.

그는 연지 한 통과 여인의 옷 한 벌을 사마의에 보내면서 이런 말을 전한다. “당신이 아녀자처럼 감히 출정하지 못한다면 이 연지를 바르고 아녀자의 옷을 입으시오.”

그래도 사마의는 출전을 거부한다. 결국 제갈량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이종오는 후흑에 대해 “낯가죽이 두꺼우려면 마치 담벼락처럼 두꺼워야 한다. 마음은 솥 밑처럼 검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손인이기(損人利己)’, 즉 타인에게 해를 끼치면서 자신의 이익만 도모하다는 의미다. 후흑학에서도 손인이기는 금물로 여긴다. 그래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할 속셈이라면 겉으로는 많은 사람의 이익을 수호한다는 깃발을 내걸어야 한다.

또한 혼자 독자치할 생각이라면 겉으로는 너도 좋고 나도 좋은 일이라는 인상을 풍겨야 한다. 나의 이익은 나와 다른 사람의 관계 속에서 실현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후흑의 대가라고 할지라도 혼자서는 이익을 남길 수 없다. 술수나 부리면서 아무 거리낌 없이 타인의 이익을 해친다면 자신의 이익을 챙길 수 없다는 것이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면서 자신만의 이익만 도모하는 행위는 후흑의 대가에게도 금기 사항인 것이다.

“후흑의 술수를 이용해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낯가죽이 두껍고 마음속이 시커멀수록 실패한다. 반면에 후흑의 술수를 이용해 공익을 도모하면 낯가죽이 두껍고 마음속이 시커멀수록 성공한다.”

흔히 성공하려면 뻔뻔함과 ‘맷집’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때에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되 타인의 이익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는 전제 조건을 잊어서는 안 된다. 후흑의 술수에도 상생의 철학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 금기를 어기고 자신의 이익만 추구할 때에는 반드시 고독·공허·고통에 빠진다.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 / 문학박사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동 대학원 비교문학 박사. 경향신문 기자를 거쳐 현재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강의를 하는 한편 자녀경영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 / 문학박사 roma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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