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업 후광 ‘굿’…공격적 영업 ‘쨍’

대기업 계열 증권사 약진

지난 4월 13일 국회 정무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고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날 여야 합의로 처리된 개정안은 일반 지주회사가 금융 자회사를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 때문에 일반 지주회사가 금융 자회사를 소유하는 게 가능해졌다. 다만 보험사를 포함해 자회사가 3개 이상이거나 총자산 합계가 20조 원 이상일 때는 중간 지주회사를 설립할 것을 의무화했다. 조건부 허용안에 따르면 삼성·현대자동차·롯데·한화·동양·동부그룹 등 6곳이 중간 지주회사 설립 대상 기업이 된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후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곳은 대기업들이다. 그동안 지주회사 전환의 걸림돌이 돼 왔던 금융 자회사들이 오히려 금융 사업 확대·진출의 첨병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규제에 막혀 순환 출자 등 비정상적인 지배구조를 보였던 대기업들은 이번 개정안을 계기로 지주회사 전환 준비를 서두를 것으로 보인다.


금산분리 완화 최대 수혜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핵심은 제조업 등 전통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소유할 수 있도록 금산분리를 완화했다는 데 있다. 이에 따라 대기업의 본격적인 금융업 강화가 이어질 전망이다. 가장 먼저 발 벗고 나선 곳은 계열 증권사들이다. 지주회사 전환의 걸림돌로 ‘매각 대상’에까지 오르던 ‘미운오리새끼’가 단숨에 화려한 ‘백조’로 변신하게 된 것. 최근 대기업 계열 증권사들이 너도나도 공격적인 경영을 앞세우며 시장의 강자로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대기업 계열 증권사 중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곳은 ‘한화증권’이다. 지난 2월 12일 미국 푸르덴셜금융의 자회사인 ‘푸르덴셜증권’을 인수했기 때문. 한화증권은 또 ‘푸르덴셜 인터내셔널 인베스트먼트’와 ‘푸르덴셜 자산운용’도 함께 인수했다.

전국 지점 수 49개로 업계 중위권이던 한화증권은 푸르덴셜증권 인수로 단숨에 업계 상위권으로 뛰어올랐다. 지점 수 132개로 업계 3위, 연간 펀드 판매 수익 5위(630억 원), 펀드 판매 잔액 5위(13조 원)의 대형 증권사로 탈바꿈한 것. 한화그룹은 앞으로 한화증권의 성장을 발판으로 한 ‘한화금융네트워크’를 확고히 정착시킨다는 계획이다.

지난 2002년 대한생명보험 인수로 시작된 금융 네트워크 강화는 2009년 한화손해보험과 제일화재의 합병, 올해 대한생명의 기업공개(IPO)에 이어 푸르덴셜증권 인수로 이어졌다. 보험·증권·자산운용의 3대 축을 기반으로 업계 1위 삼성을 따라잡겠다는 야심찬 청사진이다. 이를 위해 한화그룹은 대한생명·한화손해보험·한화증권으로 이어지는 ‘삼각편대’ 공동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대한생명 창구를 통한 종합자산관리계좌(CMA) 개설, 한화손해보험 고객 네트워크를 활용한 CMA 개설 등이 좋은 예다.

이와 함께 대기업 계열 증권사들이 상대적으로 강점을 보이는 투자은행(IB) 부문에서도 기존의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것은 물론 전문 인력을 추가로 확보해 영업 조직을 강화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3월에는 대한생명의 IPO에 참여했다. 회사채 인수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예정인데, 당분간은 역시 모기업인 한화그룹의 자금 조달 및 IB 창구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SK증권’도 공정거래법 개정안 통과로 빛을 본 경우다. SK그룹의 지주회사 전환을 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사라진 셈이다. SK증권의 최대주주는 22.7%의 지분을 보유한 SK네트웍스이고 SK네트웍스의 최대주주는 40.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SK(주)다.

결국 SK증권은 그룹 지주사인 SK(주)의 손자회사인 셈. 그동안 그룹이 지주회사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SK증권을 팔아야만 했다. 하지만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오히려 통신과 에너지 등 그룹 중점 사업과 금융업을 연계하는 교두보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독립 증권사 영업 환경 저해 비판도

SK증권은 지난 2월 3일 대대적인 인사 개편을 단행했다. 뉴스의 중심은 단연 이동섭 신임 리서치센터장이다. 2009년 10월까지 대신증권에서 애널리스트로 활동한 비공채 출신에다가 업계 최연소(1973년생) 센터장이라는 것도 주목받았다.

최고경영자인 이현승 사장 역시 1966년생으로 업계 최연소다. 대대적인 조직 혁신과 함께 지난해 말 최태원 그룹 회장이 SK증권을 다녀가는 등 자본시장 교두보로서의 그룹 내 위상이 달라졌다는 평가다.

SK증권의 메리트는 최근의 스마트폰 열풍에 힘입은 모바일 트레이딩 시장이다. 계열사인 SK텔레콤과의 시너지가 절묘하게 발휘되는 부문이다. 지난 2001년 모바일 증권 프로그램인 ‘모바일로(Mobilo)’를 출시하면서 시작된 모바일 트레이딩 사업은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거의 홈트레이딩 수준의 콘텐츠를 제공하게 됐다.

SK텔레콤은 월정액 5000원의 무선통신 증권 요금제를 출시해 모바일 트레이딩 성장의 촉진제 역할을 했다. 지난해 12월에는 SK텔레콤이 하나카드 지분 49%를 인수했다. 업계에선 우리투자증권·하나대투증권 등의 증권사 추가 인수설도 꾸준히 돌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인 ‘HMC투자증권’의 단기간 성장세도 괄목할 만하다. 올해로 2년 차에 불과한 HMC증권은 2009년 33개였던 지점을 올해 50개, 2012년 80개, 2013년에는 90개까지 늘릴 예정이다.

이와 함께 고객관계관리(CRM) 시스템 등 정보기술(IT) 관련 인프라도 대형 증권사 수준으로 완료할 계획이다. 무리한 인수·합병보다 전통적인 IB 영업 강화, 지점 및 법인 영업 확대 전략이 성공했다는 평이다. 지난 2월에는 한국신용평가로부터 장기 신용 등급 ‘A+’를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HMC투자증권은 차세대 성장 동력 확보를 목표로 지난 3월 장내·외 파생상품 인가를 취득했다. 신탁업·퇴직연금 사업 등 기존 주력 업종 외에 금리선물·통화선물·상품선물 등의 중개업에도 나설 예정이다. 다양한 주식워런트증권(ELW)과 ELS 상품의 운용·판매도 가능해졌다.

공격적인 점포망 확대로 대표되는 HMC투자증권의 성장세는 지난 4월 15일 공시된 실적으로 잘 나타난다. 영업수익 2791억 원, 영업이익 280억 원, 당기순이익 256억 원 등은 대형 증권사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지만 전년도에 비해서는 각각 43.8%, 8934.8%, 1683.0% 증가라는 엄청난 수치를 기록했다.

대기업 계열 증권사가 잘나가는 이유는 모기업의 든든한 지원 덕분이라는 분석이 많다. 실제로 각 증권사 사업 전략의 핵심인 IB 등에서 계열사의 회사채 인수가 두드러졌다. HMC투자증권(현대·기아차 계열), SK증권(SK 계열사), 삼성증권(삼성 계열사), 하이투자증권(현대중공업 계열)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독립 증권사들의 영업 환경 저해와 시장 왜곡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모기업 및 계열사의 든든한 지원과 공격적인 영업 등을 통한 대기업 계열 증권사들의 약진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장진원 기자 jjw@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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