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력·정보력 무장…틈새 투자 ‘짭짤’

PB들이 말하는 요즘 강남 부자들 재테크

‘재테크는 잠깐 접어두고 꽃놀이를 즐겨라.’ 예금·주식·부동산 등 그 어느 곳에도 마땅한 투자처가 없는 지금 강남 부자들은 대기 자금에 돈을 묻어두고 기회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러나 대기 자금이라고 해도 일반인과 관리 방법이 다르다.

초저금리 시대지만 희귀 금융상품을 찾아내 은행 금리 이상의 고수익을 챙긴다. 자금력과 정보력으로 꾸준히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부자 재테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서초동·역삼동·도곡동·대치동의 프라이빗뱅커(PB) 5명을 통해 저금리 시대의 부자 재테크 노하우를 들어보았다.

부자들의 재테크라고 해서 엄청난 고수익을 올리는 특별한 비결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은행의 정기예금보다 조금 더 높은 금리, 세금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절세 상품을 찾는다. 금융회사마다 다르지만 PB(Private Banker:고액 자산가를 위한 개인 맞춤식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의 최소 단위는 5억 원, 대개는 10억 원이 넘는다.

금융자산이 이 정도라면 부동산은 금융자산의 3~4배에 달하는 것이 보통이다. 한 PB는 “자산 50억 원은 넘어야 부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고 얘기했다.

부자 재테크의 특징은 △안정 추구 △금리 민감 △절세 상품 선호로 정리할 수 있다. 1억 원을 가진 사람은 빨리 10억 원으로 늘리고 싶어 공격적인 투자를 하지만, 100억 원을 가진 사람은 자산의 1%의 손실도 1억 원의 손해로 이어지기 때문에 자산을 ‘지키는’ 투자를 원한다. 대개 주식형 상품보다 채권형 상품의 비중이 높다.

금융회사들도 부자들만을 위한 상품을 PB 고객들에게만 한정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똑같은 구조로 설계된 상품이라면 굳이 마케팅 비용을 들이지 않고 소수의 멤버십 고객들에게 판매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PB 고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DLS (Derivative Linked Security:파생결합증권)의 경우 100억 원의 공급 물량을 PB센터를 통해 100명에게 판매하면 금방 소진되지만 100만 원 단위로 1만 명에게 팔려면 마케팅·홍보비와 지점 인력이 동원돼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부자들만의 자금력과 금융회사의 정보력이 합쳐져 부자들은 더욱더 부자가 될 수 있다.

PB들도 금융회사에 따라 성향이 천차만별이다. 대개 증권사 PB는 공격적, 은행계 PB센터는 안정적, 생명보험사 PB는 더욱 보수적이다. 이는 각 회사들이 판매하는 상품들 때문이다. 최근에는 금융회사들이 증권사·은행·생보사를 아우르는 ‘금융그룹’화돼 있기 때문에 다양한 상품을 권유하는 편이다. 인터뷰에 응한 PB들은 금융회사 소속이다 보니 아무래도 부동산 투자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편이었다.

◇김동욱 과장(삼성생명 강남FP센터)= 김동욱 과장에 따르면 부자들은 저금리 시대가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출구전략과 인플레, 금리 인상이 머지않아 올 것에 대비해 3개월·6개월짜리 정기예금 또는 단기로 나온 채권형 펀드에 돈을 묻어두고 있다는 것이다.

은행계 PB센터가 자사 예금에 안전 자금을 예치하도록 하는 것과 달리 삼성생명 FP센터는 저축은행 이용도 추천한다. 고객들은 시중은행보다 연 1~2% 금리가 더 높은 저축은행에 5000만 원씩 쪼개서 3~4군데에 정기예금을 든다. 5000만 원씩 쪼개는 것은 1인당 예금자보호 한도가 5000만 원이기 때문이다.

김 과장은 “요즘 머니마켓펀드(MMF)도 수익률이 연 2%대에 그치다 보니, 채권형 펀드 중에서도 단기어음을 통해 연 3~4%의 수익률을 보이는 펀드가 안정적이면서도 시중금리보다 높은 수익률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주식시장이 몇 개월 사이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고객들은 주식 또는 주식형 펀드도 단기로 운용하며 오래 묻어두지 않고 있다.

김 과장은 “지난해에는 올해 초 출구전략이 시행될 줄 알았는데, 이것이 하반기로 미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인플레 악재가 하반기로 넘어간 것이다. 주가 1700대가 조금 더 갈 수는 있겠지만, 오래갈 것 같지는 않고, 다만 하락하더라도 조정의 폭이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지난해부터 코스피 1700을 3~4번 찍을 때마다 펀드 환매가 이뤄져 이제는 고객들의 펀드 환매도 마무리되는 시점으로 보고 있다.

부동산의 경우 PB 고객들은 아파트와 토지보다 꾸준히 수익이 나는 수익형 상가(임대료 수익 목적)에 관심을 갖고 있다. 또 금년 말까지만 1가구 2주택 일반과세 혜택이 유지되기 때문에 2주택 이상의 경우 아파트를 팔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이흥두 팀장(KB 골드&와이즈 강남 PB센터)= “최근 동향을 보면 부자들은 자산관리에 관심이 없습니다. 여가 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이흥두 팀장에 따르면 고객들은 최근 마땅한 투자처가 없다 보니 재테크를 잠시 쉬고 꽃놀이를 갔다는 것이다.

코스피가 1700을 넘은 이후부터는 고객들의 매도가 꾸준히 이어졌고 적립식 펀드 개념으로 유입되는 자금 규모도 평소의 3분의 1에서 5분의 1로 떨어졌다. 안전 자금인 정기예금에 대부분의 돈을 묻어두면서 기회를 엿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저금리와 횡보장에서도 틈새상품 투자는 꾸준한 인기다. 채권(CP) 중에서도 3~6개월 정도 단기로 운용하는 ‘ABCP(매입보증부 유동화채권)’가 최근 잘 팔리는 상품이다. 건설사 ABCP는 특수목적회사(SPC)의 모회사(시공사)가 지급보증을 하거나 시공 중인 부동산이 담보로 잡히는 것으로 리스크가 낮으면서도 연 6%의 고수익을 챙길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ABCP 판매에 자금이 상당히 몰렸지만 건설사들로부터 나오는 물량이 적은 편이다. 최근 건설 경기가 좋지 않아 건설사들이 채권을 발행하지 않기 때문에 나오는 족족 금융회사들이 매입해 PB 고객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이 팀장은 “신용도 ‘A-’ 이상이면서 연 6%짜리가 나오면 바로 투자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 번 나올 때마다 5억~10억 원의 소규모로만 발행되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소문을 듣고 올 때쯤엔 이미 물량이 소진된 상태다.

거액 자산가인 PB 고객들을 위한 맞춤형 사모 펀드(PEF)도 활발하다. 최근에는 삼성생명 비상장 주식에 투자하는 PEF로 최근 평가이익률이 70~80%에 이르고 있다. 또 미국의 콘도에 투자하는 PEF를 결성해 단지 전체를 분양가의 60%까지 할인받아 매입한 뒤 상당한 수익을 거두고 있다.

◇이상도 팀장(우리은행 투 체어스 대치중앙센터)= “고객들의 상담이 많이 줄었습니다. 지금은 움직여 봐야 수익은 작고 리스크만 커집니다. 그러나 이럴 때가 자산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좋은 시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상도 팀장(부지점장)은 “한창 오르고 있는 자산을 팔기는 어렵지만 횡보하고 있을 때는 팔고 다른 것을 사기가 좋은 시기다. 투자자산에 올인하고 있다면 안전 자산 비중을 늘리고 안전 자산에 올인하고 있다면 성향에 따라 투자자산을 늘려 밸런스를 맞춰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또 투자자산 내의 포트폴리오 재조정도 필요하다. 이 팀장은 “중국 투자 상품이 너무 겹쳐 있다. 차이나펀드, 미래에셋 인사이트 펀드, 브릭스 펀드가 모두 중국에 투자하고 있는데, 이런 것들도 조정이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특히 2007년 비과세 혜택으로 해외 펀드 가입이 크게 늘었는데, 잘 모르는 해외보다 잘 아는 국내 주식에 투자할 것을 권유했다.

“가족 간의 포트폴리오도 조정해야 합니다.” 향후 상속에 대비해 부모와 자식 간의 자산 배분을 미리 설계해 두면 좋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전 재산을 한꺼번에 상속하면 최대 35%까지 세금을 물어야 하지만 일부를 증여하면 증여분에 한해 25%로 세금을 줄일 수 있다.

증여 후 10년이 넘으면 상속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자녀 결혼 때 주택을 사 줄 계획이 있다면 미리 증여해 두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그러나 부모가 재산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하고 부모에 대한 충성도를 잃을 정도로 전 재산을 넘겨주는 것은 피해야 한다.

이 팀장은 고객들이 10년 이상 장기 자금은 저축보험을 이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기예금 금리는 연 3%대지만 저축보험은 연 4.7%까지 가능하다는 것. 최근 저축보험은 변동금리를 취하기 때문에 향후 금리 인상에도 대비할 수 있다.

단기 자금은 주로 수시입출식저축성예금(MMDA)을 이용하는데, MMDA는 기업용으로 거액 예치할 때에만 하루 치 이자를 챙겨주지만, 5억 원 이상을 예치할 경우 정기예금에 준하는 금리를 하루씩 계산해 제공하고 있다.


◇김명신 팀장(신한은행 PB 도곡센터)= “투자보다 이익 실현 후 다음 투자를 기다리는 대기성 자금이 많습니다.” 김명신 팀장은 코스피 1650, 1560 등 원하는 지수대를 기다리다가 기회를 놓칠 수 있기 때문에 하락 시 분할 매수를 권유하고 있다. 거치식도 3번에 걸쳐 나눠 매입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김 팀장이 최근 많이 판매한 상품은 저축보험으로 절세 효과가 있는 10년 만기짜리다. 수익률은 연 4.9~5.0%로 정기예금으로 따지면 세금(이자소득세 등 15.4%)을 감안해 금리가 연 7%에 해당한다. 그러나 저축보험도 ‘보험’이기 때문에 중간에 해약하면 원금에 못 미치는 금액을 받는다.

그런데 최근 저축보험은 중도 인출 기능이 있어 해약 환급금 한도 내에서 필요한 만큼 찾아 쓸 수 있다. 또 변동금리형 상품이다. 김 팀장은 “고객들이 절세, 안정형, 금리 대응, 유동성 활용 차원에서 저축보험을 활용하고 있다. 저금리 속에서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보였다. 주로 거치식으로 1억 원에서 많게는 수십 억 원까지 가입했다”고 전했다.

사모 펀드도 활발하다. 앞서의 KB 골드&와이즈의 이흥두 팀장이 얘기한 것과 같은 ABCP에 투자하는 사모 펀드가 인기가 높지만 물량이 별로 없는 편이다. “신용 등급이 좋은 회사는 자금 사정도 좋기 때문에 채권 발행이 그리 많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원금 보장형 ELS(은행에서는 ELD로 판매)도 꾸준히 팔리고 있다. 일반 펀드는 상승 때만 수익을 거두지만 ELS는 박스권 내에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지난해 말 개시된 주가지수연동신탁(ELD)이 4개월 만에 조기 상환되고 다시 들어간 경우가 많다”고 김 팀장은 전했다. DLD(DLS를 기초로 한 금전신탁)도 PB센터에서 많이 팔리는 상품 중 하나다.

◇이보훈 팀장(하나은행 도곡PB센터)= 하나은행 도곡PB센터에서는 채권, 하이일드 펀드, DLS 등 틈새상품을 적극적으로 판매하고 있다. 이보훈 팀장이 보여준 ‘SK텔레시스 CP 특전금전신탁’ 상품은 외부 신용 등급 ‘A3+’, 내부(하나은행) 신용 등급 ‘B1+’인 SK텔레시스 채권에 투자하는 것으로 100억 한도 중에서 1억 원이 남은 상태였다. 1년 만기로 연 4.8%의 확정금리, 신탁보수는 연 0.35% 내외였다. 저금리 시대지만 이처럼 한정 물량의 채권 투자 상품이 꾸준히 팔리고 있다.

주가지수와 연동된 ELS처럼 금리·신용·실물자산에 연동된 것을 DLS라고 하는데, DLS 상품도 꾸준히 팔리고 있다. ELS가 정해진 기간 동안 주가가 정해진 하한선보다 내려가지 않으면 수익이 나는 것처럼, DLS는 연계된 지수가 일정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면 수익을 주는 상품이다.

금리 연계 DLS는 원금 보장형으로 ‘정기예금+α’의 수익률을 보장하고 있다. 신용 연계 DLS는 매입한 채권이 만기까지 신용부도가 나지 않을 경우 표시금리 이상의 수익률을 얻을 수 있는 상품이다. 이 팀장은 “DLS가 아직 활성화돼 있지 않은데, 하나은행 PB가 1년째 판매하고 있고 씨티은행은 펀드형 상품을 활발히 판매하는 정도”라고 전했다.

이 팀장은 투자를 좀 쉬어갈 때 적합한 상품으로 하이일드 펀드를 추천했다. 2009년 7월부터 판매가 시작된 하이일드 펀드는 투기 등급 채권과 주식형 상품의 중간적 성격으로 ‘채권의 평균금리+추가수익’을 기대하는 상품이다. 사모 펀드도 꾸준히 판매되는 상품으로 삼성생명처럼 상장하는 회사, 최근 출시된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 홍콩에 상장되는 회사 등에 투자한 상품을 꼽았다.

이 팀장은 “고객들이 전체적으로 50%는 안전 자산, 50%는 투자자산에 투자하고 있다. 여기(도곡동)는 부자들이 다른 곳에 비해 새로운 금융상품을 잘 알고 있고 또 오픈 마인드를 갖고 있어 안전하면서도 고수익을 내는 틈새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했다.

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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