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반 토막’…도덕성도 ‘흔들’

‘반세기 만의 정권 교체’ 하토야마 내각 6개월

관료들이 차지했던 정책 권력을 대체할 정치권의 리더십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다. 하토야마 정권은 선거라는 '무혈혁명'을 통해 나라 안을 대청소하겠다는 의욕으로 출범했지만 항로를 잡기도 전에 리더십 붕괴로 큰 위기를 맞았다.

“일본은 결코 타이타닉호가 아니다. 새로운 엔진을 달고 재출발하고 있다.”

일본의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지난 3월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경제 운용에 대한 상당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그러나 ‘예산 낭비를 줄여 재원을 확보한 뒤 아동 수당 등으로 가계소득을 늘려 내수를 확대한다’는 정권 발족 당시의 경영 회생 시나리오는 아직 작동하지 않고 있다. 작동할 전망도 보이지 않는다는 게 중론이다.

일본의 하토야마 유키오 정권이 3월 16일로 출범 6개월을 맞았다. 반세기 만의 정권 교체로 변화에 대한 큰 기대 속에 출발했지만 지난 6개월은 결코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 무기력증에 빠진 듯한 일본의 회생에 대한 분명한 비전과 전략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출범 초 70%대에 달했던 지지율이 반 토막인 30%대로 떨어진 것이 단적인 예다.

<YONHAP PHOTO-0700> TO GO WITH STORY "JAPAN-POLITICS-HATOYAMA" BY HARUMI OZAWA (files) picture taken on November 2, 2009 shows Japanese Prime Minister Yukio Hatoyama scratching his nose at the end of a session of the House of Representatives Budget Committee at the Diet in Tokyo. Just months after Japan's biggest political shake-up in half a century, Prime Minister Yukio Hatoyama's honeymoon with voters is fading as he struggles to match revolutionary rhetoric with action. He approaches his 100th day in office this week, Hatoyama is battling to dispel the perception that he is indecisive and lacks leadership. AFP PHOTO/FILES-Kazuhiro NOGI /2009-12-23 13:08:17/ <저작권자 ⓒ 1980-200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경제는 성장 전략 못 보여줘 = 하토야마 정권에 대한 일본 국민의 실망감이 가장 큰 부분은 역시 경제다.

일본 경제는 올해 1월까지 11개월째 소비자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에 빠져 있다.

소비가 극도로 침체된 가운데 설비 투자 등도 부진해 탄력 있는 경기 회복을 보여주기 못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작년에 마이너스 5.3%로 선진국 가운데 최악의 수준을 기록한데 이어 올해도 1.7% 성장에 머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토야마 정부는 작년 회계연도에 7조2000억 엔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경기 부양에 나섰다.

그러나 이는 자민당 정권이 예정했던 14조7000억 엔에 비해 턱없이 작아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지적을 받았다.

정부는 ‘콘크리트 예산을 사람에게 돌린다’는 구호 아래 댐과 도로 등 각종 사회간접시설(SOC) 예산을 아동 수당 등 복지 예산으로 돌림으로써 지방의 건설 경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오는 6월부터 중학생 이하 자녀 1인당 월 1만3000엔씩을 지급해 이를 소비로 연결할 경우 내수가 어느 정도 살아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정부의 의도대로 이 돈이 소비로 풀릴지는 지켜봐야 한다.

재정 건전성이 악화돼 빚(국채)을 내서 경기 부양을 할 수 있는 수단도 사라졌다. 일본의 국가 채무는 825조 엔으로 GDP 대비 174%에 달한다. 올해 말에는 이 비율이 181%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선진국 최악 수준이다.

◇미·일 동맹은 균열 = 하토야마 정부가 내세운 외교 노선의 두 축은 동아시아공동체 구상과 대등한 미·일 관계였다.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은 한국·중국 등 아시아 이웃 국가들과의 과거사 문제로 인한 대립 관계에서 벗어나 공통의 이익을 위해 사이좋게 지내자는 것으로 아시아 여러 나라들로부터 환영받았다.

하토야마 총리는 한국과 중국을 잇달아 방문해 일본의 과거 침략 전쟁을 반성하고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겠다는 입장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한·일 관계는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양국의 관광 교류는 활짝 꽃을 피웠고 경제와 문화 등 민간 교류도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해지고 있다. 야당인 자민당과 우익의 반발로 무산되긴 했지만 재일동포 등 영주 외국인의 지방 참정권 부여도 하토야마 총리와 오자와 간사장이 관심을 갖고 노력해 온 사안이다.

하지만 미국과의 외교 관계에는 냉기가 흐르고 있다. 하토야마 총리는 효율성과 이익만을 추구하는 미국식 신자유주의 정책에 부정적이다. 글로벌 경제를 뒤흔든 리먼브러더스 사태도 미국식 자본주의 정책의 산물이라는 시각이다.

일본의 급속한 중국 접근도 미국의 신경을 거스르고 있다. 민주당 정권의 실력자인 오자와 간사장은 미국과 중국 가운데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은 ‘등거리 외교’를 주장하고 있다.

특히 오자와 간사장은 작년 12월 민주당 의원 140여 명 등 600여 명의 ‘의원 사절단’을 이끌고 중국을 찾아 미국에 충격을 줬다. 여기에 하토야마 정부가 기존 미·일 합의를 뒤엎고 주일미군 후텐마 비행장의 이전 문제를 재검토하겠다고 나서면서 미국과 일본의 동맹 관계는 크게 균열이 갔다.

◇탈관료 이후 정치적 리더십 없어 = 하토야마 정권이 관료정치, 낙하산 인사, 방만한 예산 등 자민당 정권이 장기간에 걸쳐 쌓아 놓은 적폐를 청소하는데 성과를 거두고 있는 건 사실이다. 자민당 정권에서 정치인들은 ‘얼굴 마담’이었을 뿐 실제 국정은 사무차관을 정점으로 한 관료 집단이 좌지우지했다.

그러나 민주당 정권은 이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관료정치의 산실이었던 사무차관회의를 폐지하는 한편 모든 정책 결정은 공무원을 배제하고 현역 의원인 대신(장관)·부대신(차관)·정무관 등 ‘정무 3역’만 할 수 있도록 했다.

관료의 기자회견과 국회 답변도 금지했다. 정책 아이디어는 공무원들에게서 얻고 있지만 채택 여부는 정치인들이 국민의 눈높이를 감안해 결정하고 있다.

이런 탈관료 정책이 국민 입장에서 어느 정도 이익이 되는 것인지 불투명하긴 하지만 정책과 인사·예산을 끈으로 한 공무원-재계-정치인의 유착이 상당 부분 사라졌다는 평가다.

예산을 체육관에서 공개적으로 심사함으로써 공무원과 정치인이 밀실에서 결정하던 관행도 없앴다. 휘발유 잠정세율 폐지, 고속도로 무료화 등 중요 공약들이 포기 또는 후퇴했으나 핵심 공약인 자녀 수당은 6월부터 지급할 예정이다.

그러나 관료들이 차지했던 정책 권력을 대체할 정치권의 리더십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다. 하토야마 정권은 선거라는 ‘무혈혁명’을 통해 나라 안을 대청소하겠다는 의욕으로 출범했지만 항로를 잡기도 전에 리더십 붕괴로 큰 위기를 맞았다.

검찰 수사 결과 두 사람이 직접 위장 정치헌금이나 정치자금 허위 기재에 가담하지는 않은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비서들이 기소되면서 도덕성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다. 이는 하토야마 총리와 오자와 간사장의 국정 장악력 약화로 이어졌다. 특히 민주당 정권의 최고 실력자인 오자와 간사장에 대한 여론이 극도로 악화되면서 사퇴 압력이 가중되고 있다.

◇7월 참의원 선거 암운 = 민주당이 총력을 쏟고 있는 올여름 참의원 선거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참의원 의석(정수 242명)의 절반을 바꾸는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은 단독 과반수를 확보해 사민당이나 국민신당 등 연립여당의 도움을 받지 않고 안정적으로 국회를 운영하겠다는 목표를 정했다. 하지만 내각 지지율과 정당 지지율 추락으로 갈수록 국면이 악화되고 있다.

이미 2월 22일 민주당 아성인 나가사키 지사 선거에서 참패하면서 민의가 드러났다. 최근 언론 여론조사에서는 이런 분위기가 더욱 확실해졌다.

요미우리신문이 3월 초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하겠다는 응답은 25%로 자민당(22%)을 앞서긴 했지만 오차 범위 이내다. 교도통신 조사에서는 민주당 후보를 찍겠다는 응답이 26.9%로 자민당(26.3%)과 거의 비슷했다. 유권자들은 민주당 정권에 염증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로 하토야마 총리와 오자와 간사장의 정치자금 문제를 들었다.

선거의 귀재라는 오자와 간사장은 직접 후보들을 고르고 지역구를 돌며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러나 승리한다는 전망은 보이지 않고 있다. 참의원 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하토야마 총리와 오자와 간사장은 설 땅이 없어진다.

하토야마 총리도 오자와 간사장이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데다 스스로 위장 정치헌금의 ‘원죄’가 있기 때문에 오자와 간사장의 사표를 받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 정권의 투 톱이 모두 딜레마에 빠져 있는 셈이다.

차병석 한국경제 도쿄 특파원 chab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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