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육성으로 소비 붐…세계 업체 ‘각축’

중원에서 불붙은 가전 전쟁

세계의 가정에 있는 가전제품은 거의 모두 중국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세계 주요 가전제품의 대부분이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다. 그동안 중국 가전산업은 외국인 투자 기업들의 기술이전을 통해 꾸준히 기술력을 향상시켜 왔다.

내수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 과정을 거치면서 기업 규모 확대, 품질 개선, 제조 기술 축적 등의 성과도 거두었다. 매년 높은 가전 생산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는 중국은 이미 2001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대 가전 생산국으로 올라섰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컴퓨터와 냉장고 등 가전 부문에서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시장으로 부상했다. 중국 국가통계국과 JD파워 등의 통계에 따르면 컴퓨터는 지난해 3분기까지 720만 대가 팔려 미국(660만 대)을 제쳤다. 냉장고와 세탁기 등 가전제품 역시 지난해 1억8500만 대가 판매돼 미국(1억3700만 대)을 추월했다.

소비 광풍으로 구매력 폭증

중국 가전 시장의 가파른 성장에 힘입어 글로벌 가전 시장에서 아시아 시장 비중이 사상 처음으로 북미 및 서유럽 시장과 대등해질 것이라고 미국가전협회(CEA)가 지난 1월 전망했다.

글로벌 가전 시장은 2010년 6810억 달러로 예상된다. 이 중 아시아 시장과 북미·서유럽 시장은 각각 세계 전체 시장의 36%로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지난해 아시아 시장은 34%, 북미·서유럽 시장은 39%였다.

올해 북미는 3%, 유럽 시장은 시장 규모가 9% 축소될 것으로 보이지만 중국의 가전 시장은 10%의 급격한 성장이 예고되고 있다. 그동안 단순 생산 거점에 불과했던 중국이 금융 위기 이후 세계 가전 기업들이 적극 공략해야 할 소비 시장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중국인들은 그동안 지갑을 닫고 돈을 모으기에만 급급했다. 그래서 서구인들은 세계 최고의 저축률을 자랑하는 중국인들을 향해 ‘돈을 벌기만 하고 쓸 줄 모르는 구두쇠’라고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씀씀이에 인색했던 중국인들이 정부의 소비 증진 정책에 따라 작심하고 지갑을 열면서 지난 한 해 동안 대륙 전체가 소비로 흥청거렸다. 글로벌 금융 위기 속에서 평가절상된 위안화의 위력으로 수입 가전의 매출이 크게 늘었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지난해 3500달러를 넘어 4000달러에 근접하면서 고급 소비재의 수요도 급증했다.

중국 재정부는 내수 부양과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유지하기 위해 가전산업 육성 정책을 지속적으로 내놨다.

2009년 2월 ‘가전제품 하향(家電下鄕)’정책이 전국 단위로 확산된 데 이어 5월에는 ‘가전제품 보조 정책’을 내놓아 가전제품의 교체 구매를 장려했다.

‘가전하향’ 정책은 농촌 지역에서 가전제품 하향 제품을 구입할 경우 정부가 13%의 재정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소비가 큰 도시를 넘어 농촌 지역까지 기존의 TV·냉장고·휴대전화·세탁기 등 4대 가전은 물론 컴퓨터·온수기·에어컨 등 제품을 대거 교체하며 수요를 급격히 끌어올렸다.

중국 재정부가 집계한 가전하향 제품 판매량은 총 3430만 대이며 지원된 보조금만 모두 62억9000만 위안이었다. 중국의 가전하향 정책은 그동안 가전업체의 공급과잉 문제를 해결했으며 심각하던 도시와 농촌 간 불균형 문제 해결에도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동안 중국 가전업체는 연평균 15~40%씩 생산량이 증가한 나머지 공급과잉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됐었다. 한편 공급과잉의 타개책으로 중국 가전업체들은 수출 확대에 적극 나서고 있다.

중국산 가전제품은 하이얼·TCL 등 일부 기업을 제외하고 외자 기업과 제휴해 생산되고 있다.

중국 가전은 세계를 석권하고 있지만 아직 독자적인 개발력은 키우지 못한 상태다.

중국 정부는 가전업체의 국제 경쟁력 확보를 위해 6년 안에 세계시장에서 자체 브랜드 비중을 30%로 높인다는 ‘6·30 프로젝트’를 지난해 12월 발표했다.

중국 공업정보부는 “중국산 제품이 세계 냉장고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세탁기와 에어컨은 각각 40%에 달하지만 중국 자체 브랜드 제품의 비중은 많이 낮다”며 2015년까지 자체 브랜드 비중을 30%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하이얼 등 중국 자체 브랜드 비중은 약 15%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정부는 이를 위해 기업들이 매출의 3%를 연구·개발에 투입하도록 하고 국가 인증 기관 20곳을 설립, 해외 생산 기지 확충 등의 노력을 펼치고 있다.

한국 가전업체와 경합 심화

중국 가전업체들은 지난 2007년 말부터 북미와 유럽의 수요 감소, 위안화의 평가절상, 노동 원가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수출 규모가 둔화되자 대응이 시급해졌었다. 그래서 전격적인 체질 개선에 나섰다. 기술 향상, 신규 제품 개발, 해외 공략 등을 통해 부가가치를 제고함으로써 원가 상승 압력을 해소하고 있다.

중국 가전업체들이 신흥시장에서는 가격 경쟁이 통하지만 유럽과 북미 등 성숙한 시장에서는 브랜드력을 기반으로 한 고부가가치 경쟁이 수익과 직결되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하이얼·메이디·갈란츠·창훙 등 중국 자체 가전 브랜드들은 해외 생산 기지를 설립했다. 하이얼은 태국 등 해외에 13개 산업 거점을 보유하고 있고 창훙은 체코, 메이디는 베트남과 러시아, 하이센스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헝가리에 생산 기지를 설립했다.

중국 토종 브랜드가 급성장함에 따라 일단 내수시장에서 강세로 나섰다. 이는 곧 외국 브랜드의 진입 공간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 자체 브랜드들은 저가 공세와 그들에 대한 중국 정부의 편애로 내수시장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한·중·일 3국은 중국 내수시장뿐만 아니라 세계시장에서도 수출 품목이 유사해져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TV 등 영상기기는 수출 경쟁이 가장 치열한 품목이다.

지난 2005년 소니와 삼성전자가 중국 시장에 진출한 이후 해외 액정표시장치(LCD) TV 제조업체들은 한동안 중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여 왔다. 하지만 2008년 2분기 60%를 정점으로 급격한 하락세를 나타내며 시장을 중국 브랜드에 내줬다.

중국 시장에서 맥을 추지 못하던 우리 가전업체들은 앞서 언급한 가전하향 정책 확대를 큰 기회로 보고 올해 중국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처음 평판TV와 에어컨 공급 업체 자격을 획득해 각각 5개, 26개 모델을 공급할 계획이다.

또한 제조 경쟁력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는 양문형 냉장고와 매스 프리미엄 드럼 세탁기의 라인업을 보강해 성장이 큰 도시를 중심으로 유통망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특히 올해는 중국 내 삼성 생활 가전 이미지 제고를 위해 TV 광고와 각종 캠페인을 통해 가전 신뢰도 및 인지도를 향상시키는데 주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LG전자 역시 TV·냉장고·세탁기·에어컨 등 공급 모델 수를 지난해 17개에서 올해 36개로 갑절 이상 확대했다. 산업연구원의 이경숙 연구위원은 “중국은 지속적인 경제성장으로 중산층이 확대되면서 고급 가전제품 수요가 늘어나고 있으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시장이 될 것”이라며 “우리는 프리미엄 가전제품 개발로 중국 고소득층의 수요를 확보하고 차별화된 핵심 부품 생산으로 중국 부품 업계와의 경쟁에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방향을 짚었다.

이진원 기자 zinone@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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