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표결 처리’압박…마지막 ‘승부수’

막바지 기로에 선 의료개혁법

지난해 3월 5일.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첫 ‘헬스케어 서밋(healthcare summit)’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내로라하는 상·하원 양당 지도자들과 보험사 및 제약사 최고경영자(CEO), 의료계 전문가들이 모두 모였다. 갓 취임한 오바마는 의기양양했다. 그는 의료보험 개혁의 정당성과 성공 가능성에 대해 유머를 섞어가며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은 ‘해리와 루이스’를 논할 때가 아니다. ‘델마와 루이스’를 얘기할 때다. 그녀들은 벼랑 끝으로 차를 몰고 가고 있다. 우리는 지금 당장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오바마가 말한 ‘해리와 루이스’는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의료보험 개혁을 추진할 때 반대파들이 낸 TV 광고 주인공들로, 이들이 출연한 광고는 당시 클린턴 개혁을 좌초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때 등장했던 배우들이 나중에 오바마 의료보험 개혁을 찬성하는 쪽으로 돌아서면서 오바마에게 큰 힘이 됐다. 오바마는 이런 작은 성공을 논할 때가 아니라 의료보험 문제로 나라가 결딴나는 상황을 막는데 신경 써야 한다는 주장을 영화 ‘델마와 루이스’를 인용해 말함으로써 좌중의 웃음을 이끌어냈었다.

분위기는 매우 낙관적이고 호의적이었다. 공화당 일부 의원들은 개혁에 참여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오바마가 말하는 초당적 협조가 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며칠 후 오바마는 의료보험 개혁안이 수개월 내 처리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로부터 약 1년 후인 지난 2월 25일. 백악관 영빈관 블레어하우스에서 똑같은 행사가 열렸다. 그러나 1년 전에 비해 분위기는 영 달랐다. 오바마의 표정은 더 이상 여유 있지도, 낙관적이지도 않았다. 화려한 언변과 토론 솜씨는 여전했지만 얼굴은 시종일관 굳어 있었다. 여유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전국에 생방송된 7시간의 지루한 논쟁 끝에 오바마는 협박조의 멘트로 행사를 마무리 지었다.

“그래서 선거가 필요한 것이다(And that’s what elections are for).” 의료보험 개혁 문제에서의 초당적 협조는 있을 수 없고 오직 표 대결만 가능하다고 선언한 것이다.

<YONHAP PHOTO-0053> President Barack Obama, accompanied by Vice President Joe Biden, speaks in the Eisenhower Executive Office Building on the White House campus in Washington, Wednesday, Jan. 20, 2010, before signing a Presidential Directive ordering a new crackdown on federal contractors who don't pay their taxes. (AP Photo/Charles Dharapak)/2010-01-21 01:16:17/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 다급해진 오바마 = 오바마가 급해졌다. 의료보험 개혁에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미 언론들은 오바마가 의료보험 개혁에 ‘마지막 스퍼트’를 내고 있다고 표현한다. 사실이 그렇다. 그의 일정은 의료보험 개혁에 올인해 있다.

오바마는 지난 2월 25일 미 전역에 생방송된 7시간짜리 ‘맞짱 토론’인 ‘헬스케어 서밋’을 진행한 후 2월 27일 다시 의료보험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주례 라디오 연설을 했다. 3월 3일엔 백악관에 의료계 종사자들을 초청해 연설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공화당의 비협조를 거론하면서 의회 지도자들에게 “의료 개혁 법안을 앞으로 수 주 안에 가부 표결 처리를 통해 매듭지어 달라”고 요구했다. 공화당에 표결 처리 강행이라는 최후통첩을 보낸 것이다.

그는 3월 5일엔 보험사 사장들을 불러놓고 ‘왜 보험료를 30∼40%씩 올려야 하는지 구체적인 이유를 대라’고 다그쳤고 이튿날 다시 주례 라디오 연설을 통해 의료보험 개혁과 관련해 의료계와 공화당에 “미국을 위해 일하자”고 일갈했다.

그리고 지방 순회 연설. 그는 3월 8일 필라델피아(펜실베이니아 주)와 10일 세인트루이스(미주리 주)에서 대선 캠페인에 버금가는, 격렬하고 열정적인 어조로 의료보험 개혁법의 의회 통과 필요성을 역설했다. 필라델피아와 세인트루이스는 의료보험 개혁에 가장 부정적인 여론이 많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의석을 잃을 가능성이 가장 큰 곳 중 두 곳이다.

오바마는 민주당 의회 지도부에 구체적인 개혁 법안 처리 일정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원에서는 3월 19일까지, 상원은 26일까지 법안 처리를 마쳐야 한다는 것이다. 부활절은 4월 4일로, 그 전 휴가 시즌(부활절 직전인 3월 27일부터 4월 3일까지 학교 봄방학이나 회사들의 휴가 기간이 집중돼 있음)이 시작되기 전에 법안 처리를 마쳐 달라는 주문인 셈이다.

◇ 왜 서두르나 = 미 언론들은 오바마가 2월 말부터 이렇게 의료보험 개혁에 바짝 올인하는 까닭을 이때가 아니면 임기 중 의료보험 개혁을 추진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3월 이후엔 곧바로 중간선거 시즌으로 넘어간다. 아무래도 의료보험 개혁 이슈는 선거에 불리하게 작용할 공산이 크다. 그렇다고 중간선거 이후로 넘길 수도 없다. 워싱턴포스트지는 미국에서 남북전쟁 이후 중간선거에서 성공한 대통령은 딱 두 명에 불과하다고 보도했다.

어차피 중간선거 후엔 임기 중반이 되는데다 의회 장악이 힘들기 때문에 힘 있게 자신의 정책을 추진하기 힘들다. 빌 클린턴 대통령도 중간선거 후 의료보험 개혁 이슈를 꺼냈다가 반대에 부닥쳐 개혁이 흐지부지됐었다

한마디로 의료보험 개혁은 오바마에게 그냥 놔두고 볼 수도, 계속 끌고 갈 수도 없는 ‘계륵(鷄肋)’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오바마로서는 어떻게든 이 짐을 3월 내 털고 가고 싶은 생각이다.

그렇다고 협상의 여지가 남아 있는 것도 아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협상 가능성이 있다면 공화당과 절차를 밟는 게 좋다. 그러나 공화당 측은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주도해 만든 의료보험 개혁 법안을 폐기하고 초당적인 합의로 새 법안을 다시 만들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른바 점진적 개혁 법안이다. 대통령이 개혁 법안을 초당적으로 처리하길 원한다면 꼭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 언론들은 그러나 공화당의 본심이 법안의 처리보다 법안 폐기에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오바마도 그것을 모를 리 없다. 지난 1년 동안 어렵사리 하원과 상원을 통과시켜 만든 법안(약간의 손질이 더 필요하지만)을 다시 원점으로 되돌릴 수 없는 처지다. 그렇다고 공화당의 협조가 가능한 상태도 아니다. 결국 남은 카드는 의회에서 다수석을 차지하고 있을 때 표결 처리를 통해서라도 법안을 매듭짓는 것이다.

오바마는 “또다시 1년이 넘는 협상이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지 알 수 없고, 보험회사들이 새 출발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점진적 개혁에 대한 거부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대신 오바마는 공화당에서 나온 몇 가지 구상들을 법안에 수용하기로 했다. △빈곤층을 위한 의료 지원 프로그램인 메디케이드에 대한 재정 지원 확대 △허위 보험금 청구를 적발하기 위해 환자를 가장한 조사관들의 활동 허용 방안 △의료사고 관련 이슈에 대한 연구 프로그램 지원 확대 △의료보험료 저축 계정 활용 확대 방안 등이다.

◇ 성공 가능성은 = 미 언론들은 오마바가 표결 처리 강행 의지를 밝힘에 따라 그 어느 때보다 개혁 법안의 의회 통과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걸림돌이 적지 않다. 우선 오바마가 제시한 일정(부활절 연휴 전 처리)을 맞추기에 시간이 빡빡하다.

오바마와 민주당 지도부는 의회 표결에 들어갈 경우 화해·조정 절차를 통해 공화당의 방해 전략에 대응한다는 전술을 짜놓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1월 매사추세츠 보궐선거에서 공화당에 뜻하지 않은 참패를 당해 상원에서 필리버스터(filibuster:의사진행 방해연설)를 봉쇄할 수 있는 ‘슈퍼 60석’을 상실한 상태다.

공화당이 마음먹으면 다수석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의 표결 처리를 얼마든지 방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민주당은 50표 이상만 얻으면 바로 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 조정 절차를 밟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절차를 밟기 위해서는 상원에서 이미 통과된 의료보험 개혁 법안을 하원에서 다시 통과시키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민주당이 하원에서 표결 처리에 필요한 찬성 216표 이상을 얻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신문은 지난해 말 찬성표를 던졌던 220명 가운데 1∼2명이 이번에는 반대표를 던질 것을 시사하고 있지만 민주당 내 온건파에서 쏟아졌던 반대표 39개 가운데 6개가 부동표로 바뀌었고 지지표로 돌아설 수도 있어 가결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워싱턴 일대는 의료보험 개혁 법안 표결 처리를 앞두고 폭풍 전야에 휩싸여 있는 모습이다.

채플힐(미 노스캐롤라이나 주)= 박수진 한국경제 기자 notwom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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